연극 < 20세기 블루스 > 포스터
연극 < 20세기 블루스 > 포스터20세기 블루스
 
연극은 TED강연 중인 2017년의 대니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역사 교수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옳지 않은 방법으로 애쓰던 대학 신입생 대니는 이제 담담하고 당당하게 현실을 기록하는 60대의 유명 사진작가가 됐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열릴 개인 회고전을 앞둔 작가는 전시할 사진들을 선택해야 한다.

1970년대 미국 젊은이가 구치소를 드나드는 일은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구치소에서 만나 친구가 된 대니와 개비, 맥과 실은 매해 만나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사진에 담겼다.

그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시대가 지나갔고 케네디 대통령은 사망했으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왔다 사라졌다. 마틴 루터 킹이 기가 막힌 연설을 했고 베트남 전쟁과 반전 운동, 9.11 테러가 벌어졌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무려 40년이다. 이 시간은 친구들의 몸에 지문처럼 새겨졌고 사진으로 남았다. 대니는 자신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친구들의 사진을 전시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사진들을 대중에게 내놓기 전에 넘어야 할 허들이 있다. 초상권이다. 대니는 친구들에게 서약서를 요구한다. 하지만 가볍게 생각했던 대니와 달리 친구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하고 친절한 성격의 수의사 개비는 대니의 요청을 들어주자는 쪽이다. 그러나 외모에 신경 쓰는 부동산 중개인인 실의 생각은 다르다. 대니가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름난 기자인 맥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은 얼굴이 아닌 기사로만 평가받고 싶다고 주장한다.

"나한테는 너희들이 역사의 시간표니까. 너희들이 로큰롤이고 우주선 발사고, 시민 평등권이라고. 가장 엄청난 변화들이 기록된 수십 년 역사가 바로 너희들이야."

대니는 사진을 그냥 '시간과 역사'로 생각하자고 말한다. 말이 쉽지, 그게 잘 될 리가 없다. 아침에도 거울을 봤고, 그 안에 늙어 있는 나를 봤기 때문이다.

"팬티만 입은 채 온 집안을 휘저으며 신나게 춤추고 있었거든. 근데 어느 순간 늦은 오후가 돼 버린 거야."

젊음이 사라져 버리고 어느덧 낡은 채 남아 버린 자신을 보는 기분을 맥은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이유를 말하고 있든 간에 이들이 회고전에 전시되기 거부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늙음'을 확인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대 위 4명의 여자들은 '나이 듦' 또는 '늙음'에 대해 말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노화'로 바꿔도 의미는 그대로다. 우리는 모두 늙는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노화' 혹은 '늙음'은 사고처럼 다가온다. 매일,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변화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닫고 놀라고 당황하고 부정하고 분개한다. 성형 수술을 하거나 과도한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패션 스타일을 바꾸기도 한다. 

자기 개발서가 삶의 지침서로 여겨지는 지금, 노년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은퇴 세대가 밀려온다' 류의 담론이다. 늙고 병들어 연금과 의료보험에 의존해야 하는 세대들이 젊은이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때의 '늙음'은 회피하고 싶은 짐이다. 다른 하나는 '노년도 괜찮다' 류의 이야기다. 적절한 자본과 사회적 인프라가 받쳐 준다면 노년을 보내는 일이 생각한 것보다 지독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이다. 안전한 노년을 위해 이러저러한 준비를 하라는 가이드북도 여기 속한다. 이미 자본은 '늙음'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의견의 바탕에는 '늙음'이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며 멀찍이 떼어놔야 할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인간은 모두 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늙음'을 제대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1955년생인 네 명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며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 백인이니 완벽하게 소수자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백인 주류 남성은 아니다. 당연히 이 연극에는 젠더와 소수자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인사 2023.05.30
인사2023.05.30안정인
 
네 명의 친구 대니, 개비, 맥, 실 역의 우미화, 이지현, 성여진, 박명신 배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개비 역의 이지현 배우 때문에 연극 내내 낄낄거리며 즐거운 마음이 되었다. 대니의 91세 노모 베스를 연기한 이주실 배우와 아들 사이먼을 연기한 류원준 배우에게도 감사하다. 근래 만나지 못했던 따뜻하고 뭉클한 무대였다. 너무 곱고 포근해서 판타지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늙음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다.

이 연극은 미국의 극작가 수잔 밀러(Susan Miller)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내용 중에 미국의 역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래도 우리나라 역사 다음으로는 친근한 것이 미국 역사이니 대사를 이해하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늙음'은 나와는 다른 어떤 형태로 바뀌는 그런 것일까? 나 역시 아직 나의 나이 듦을, 노화를, 늙음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침침해지는 시력과 이따금 우두둑 거리는 관절, 1년에 한 번 건강검진 때마다 수치로 환산되는 쇠락은 침울함을 더해준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늙는다. 그렇다면 이제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올 시간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닐는지. 늙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들의 무대는 6월 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안의 브런치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20세기블루스 두산아트센터 연극리뷰 우미화 이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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