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포쉬커튼콜
안정인
무대는 시골의 한 식당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비밀 사교 조직인 '라이언 클럽' 멤버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열 예정이다. 굳이 이렇게 먼 식당까지 온 이유는 몇 년 전 친 사고 때문이다. 클럽 회원들은 학교 근처 가게에서 모임을 한 후 그곳을 테러 수준으로 망가뜨렸다. 언론의 추격이나 법적인 문제는 돈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학교 당국의 조치는 받아들여야 했다. 학교는 이들에게 학교 반경 25Km 안에서의 모임을 금지시켰다.
멤버들이 모이고 파티가 시작되지만 분위기는 의도치 않은 곳으로 흐른다. 와인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서빙되고, 음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에스코트 전문인 찰리는 멤버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라며 가게를 떠나 버린다. 술을 먹고 고함을 치는 이들에게 급기야 주인은 나가라는 요구를 한다.
가게 주인을 향하던 이들의 불만은 곧이어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게로 향한다. 자신들의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나머지 계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분노를 표출한다. 이들은 점차 거칠어지고 원래도 별로 갖고 있지 않던 사회적 껍데기마저 벗어버린다. 서빙하기 위해 들어온 가게 주인의 딸 레이첼을 성추행하지만 이 정도로 풀릴 분노가 아니다. 말로만 끝나는 분노는 의미가 없다. 이들은 보기 싫은 것들을 향해 본보기를 날린다. 1987년의 불링턴 클럽 모임에서 있었을 법할 풍경이다.
영국 극작가 로라 웨이드(Laura Wade)가 쓴 이 작품은 2010년 런던에서 초연되었고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왜일까. 영국의 한 학교에서 발생한 일탈이 여러 나라 관객들에게 일종의 기시감을 주었기 때문 아닐까.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의 안하무인 캐릭터 조태오는 돈 많은 '재벌 3세'일 지언정 법을 만들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권력의 상층부는 아니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법조인 아버지를 둔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이 반성이나 불이익 없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오히려 피해 학생들이 침묵해야 하는 사회가 연극 <포쉬>가 상연되고 있는 현재의 이곳이다. 정부 고위 관료를 지낸 아버지를 둔 누군가는 6년간 근무한 회사를 그만두며 퇴직금으로 50억을 받는 곳이 연극 <포쉬>가 상연되는 이 땅이다. 어떤 인성과 사회적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는지 지금보다 극명하게 보였던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