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너머 동시대 아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EBS 다큐멘터리영화 <길 위의 인생>은 꿋꿋하게 삶의 가치를 지켜내는 아시아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냅니다.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삶의 무늬를 엮어가는 사람들.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면, 잊고 있었던 그 무엇과 마주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 느낌을 짧은 글로 남겨봅니다. [편집자말]
처음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었을 때, 동화 속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프로방스 알프스 산악지대에서 나무를 심은 노인의 삶은 환상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황량한 고원지대에 도토리 씨앗을 심었던 노인은 30년 뒤의 울창한 숲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젊은 여행객은 오직 '나와 관계된 일이나 행복'만을 쫓아다녔던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았다.

지난 28일 방영된 EBS 다큐영화 <나무와 두 남자>를 보는 내내 떠오른 생각 역시 소설 속 젊은 여행객과 비슷했다. 저 두 남자는 왜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 것일까. 두 팔이 없는 쟈원치(54)씨와 앞을 못 보는 쟈하이샤(55)씨는 매일 나무를 심기 위해 길을 나선다. 삽과 낫을 들고 함께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째다. 숲에 다다르는 길은 험난하다. 큰 도로나 좁은 밭두렁을 지날 때면, 하이샤씨는 원치씨의 팔 없는 소매 자락을 지팡이로 삼는다. 개울을 건너가기 위해, 원치씨가 하이샤씨를 등에 업는다.

가혹한 운명 앞, 두 남자의 사연

다리를 건너가는 두 남자 나무를 심는 두 남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면 어느덧 마음이 따뜻해진다.

▲ 다리를 건너가는 두 남자 나무를 심는 두 남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면 어느덧 마음이 따뜻해진다. ⓒ EBS


허베이성 쉬자정 예리촌에는 원치씨와 하이샤씨가 일궈낸 '숲'이 있다. 일터인양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곳이다. 초여름으로 접어든 나무는 한껏 푸르른 잎사귀를 키워내는 중이다. '숲'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까지, 이곳은 돌투성이의 황무지였다. 사람들에게 버려진 척박한 땅에 처음 나무를 심자고 제안한 사람은 원치씨였다. 원치씨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었다. 돌이 많아 척박한 고향에 울창한 숲을 만드는 꿈.

원치씨는 세 살 무렵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원치씨는 장애가 있다고 주눅 들지 않았다. 두 팔 대신 두 발로 살았다. 원치씨의 뭉툭한 발가락은 기다란 손가락 못지않았다. 나무를 심을 때도, 청소나 요리를 할 때도 열 개의 발가락은 요긴했다. 1994년 '중국장애인장기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원치씨는 장애인예술단에 입단하여 예술단 단장까지 역임했다. 원치씨의 주특기는 필력 좋은 붓글씨 '서예'다. 공연활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병 든 아버지를 두고 낯선 타지로 떠돌 수만은 없었다.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 원치씨는 희미해진 꿈을 기억해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같은 마을에 사는 하이샤씨가 떠올랐다. 원치씨는 하이샤씨를 찾았다. 일 년 전, 하이샤씨는 마을 채석장 폭파사고로 실명한 상태였다. 수당이 많다는 이유로 위험한 폭파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하이샤씨에게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들이 4살이었고, 가족에게는 가장이 가장 필요할 때였다. 눈을 잃게 되자, 하이샤씨의 앞날이 깜깜해졌다. 마흔 문턱이 코앞이었다. 아내와 헤어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떠나지 않았다. 사고가 나기 전,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편이었음을 잊지 않았다.

그 후로 하이샤씨의 아내, 짜앤핑(55)씨는 남편 대신 가장 노릇을 했다. 얼마 전까지 공장을 다녔다. 지금은 오토바이 수레를 몰며 마을 입구에서 꼬치 장사를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 받아들이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짜앤핑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해요." 아내는 부지런히 숲을 가꾸는 남편을 지지하는 든든한 후원자다. 사는 즐거움과 보람을  숲에서 찾을 수 있다면 남편에게 바랄 것이 없다.

버려진 땅에 생명을 심는 일이란

원치씨와 하이샤씨는 처음 황무지에 8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살아남은 나무는 단 두 그루 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안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원치씨는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불과했던 나무들이 어느새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마을 숲을 이루었다. 그러는 동안 낫질에 손이 베이고, 삽질에 발등이 찍혔다. 하이샤씨는 말한다.

"원치는 저의 눈이고, 저는 원치의 두 손입니다. 둘이서 함께 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어요."

몸이 성치 않지만 각자 잘 하는 역할은 따로 있는 법. 하이샤씨가 원치씨의 어깨를 딛고 나무에 오른다. 나무 아래에서 원치씨가 쓸 만한 묘목이 될 나뭇가지를 일러준다. 허리춤에 찬 낫으로 하이샤씨는 나뭇가지를 자른다.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사시나무는 가지만 땅에 꽂아둬도 뿌리를 내린다. 묘목 살 돈이 없는 그들의 가난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나무에 오를 수밖에 없다. 나무에서 내려와 가지 손질을 하다 하이샤씨의 손에 상처가 났다. 천 조각을 발견한 원치씨는 천을 잘라 하이샤씨의 손가락에 묶어준다. 원치씨의 새까만 발가락이 묶어놓은 엉성한 매듭이 꼭 노란 풀꽃 반지 같다.

개울을 건너가는 두 남자 나무를 심으러 길은 위험하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다.

▲ 개울을 건너가는 두 남자 나무를 심으러 길은 위험하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다. ⓒ EBS


혼자 사는 원치씨에게도 못하는 일이 있다.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갈 때, 원치씨는 하이샤씨의 도움을 받는다. 원치씨가 방향을 일러주면, 하이샤씨가 도르래를 움직여 물을 긷는다. 팔이 없는 원치씨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도 하이샤씨의 차지다.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그들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형이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꺾어오지 않으면 나무를 심을 수 없어요."
"제가 나무에 올라가지만, 원치가 저를 이끌어주지 않으면 나무를 심을 수 없어요."

언제나 한몸처럼 손발을 맞춰 일을 하는 원치씨와 하이샤씨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맨땅이 훤히 보이는 뒷산을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 계획이다. 벌써 한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저수조를 마련해놓았다. 우물을 파고 농수로를 따라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는 시설만 갖추면, 벌거숭이 같은 뒷산에도 때깔 고운 초록색 옷이 입혀질 것이다. 현장을 둘러본 한 사회적 기업에서는 별다른 답이 없다. 하지만 원치씨와 하이샤씨는 뒷산 어귀에 앉아 싱글벙글 웃는다. 뒷산에 심어질 나무 이름이 그들의 이야기를 촉촉이 적셔준다. 꽃향기가 일품인 복숭아나무와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잎이 노란 관상용 나무와 백양나무 등등.

여전히,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가

"방법은 고난보다 많다. 방법은 늘 생긴다."

원치씨와 하이샤씨가 자주 하는 말이다. 모든 일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씨앗을 뿌린 만큼 싹이 나지 않는다는 자연의 이치도 잊지 않는다. 비바람에 쓸려가고 벌레의 먹이가 되는 씨앗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땅을 믿는다. 땅이 지켜준 것에 다른 불만은 없다. 매일 들러 수로를 확인하고, 잡초를 뽑아 땅의 기운을 북돋운다.

지심(地心)은 인심(人心)을 모르지 않는다. 언젠가는 푸르른 뒷동산의 꿈에 물꼬를 터줄 것이다. 십 년 넘게 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던 원치씨와 하이샤씨에게 푸르른 숲을 만들어준 것도 땅의 힘 덕분이었다. 그 푸르름이 사람들의 웃음이 되고, 위로가 되리라.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황무지를 푸른 녹색으로 수놓았던 그들의 이야기 말이다.

마을 뒷산의 푸른빛은 어떤 풍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새가 둥지를 틀고, 벌레가 알을 까고, 토끼가 뛰어다니는 숲에 사람들이 찾아들 것이다. 듬직한 나무 기둥에 기대어 숨바꼭질 하는 어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숲이 주는 맑은 공기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깊어지게 할 것이다. 서로에게 눈과 손이 되어줬던 죽마고우의 이야기가 나뭇잎 사이로 흩어질 것이다. 눈앞의 이익과 행복에만 맞춰진 삶의 리듬에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선율'을 띄워줄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우리 삶은 숲속을 거니는 것과 같을 게다.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노인 역시 실제 장 지오노가 만났던 사람이었다. 과거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삶이 바다 건너 중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다. 여전히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저멀리 어느 시골 마을 돌투성이 뒷산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소리가 윙윙 귓가를 맴돈다.

<길 위의 인생> <나무와 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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