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박경완과 조규제가 팔려간 1998년, 김기태와 김현욱은 쌍방울의 마지막 기둥이었고 그 기둥에 의지해 레이더스는 6위로 버텨내며 작은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남은 두 기둥마저 뽑혀나간 1999년에 역대 최다패 신기록의 멍에를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쌍방울 레이더스
1998년 12월 25일, 쌍방울 레이더스가 타격왕과 홈런왕을 지낸 4번 타자 김기태와 3관왕 경력의 투수 김현욱을 삼성 라이온즈에 내주고 양용모, 이계성이라는 무명의 선수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와 투수를 받게 된 삼성이 내놓은 실질적인 트레이드카드는 현금 20억 원이었다.
한 해 전 역시 쌍방울 레이더스가 15억 원을 받고 넘긴 박경완과 조규제는 그대로 1998년 현대 유니콘스의 첫 우승을 이끌며 프로야구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그러자 재계 라이벌 삼성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해태의 조계현, 이강철, 그리고 임창용을 데려가며 맞불을 놓고 있었다.
그렇게 직전 두 해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해태와 3위권을 지켰던 쌍방울은 1997년 겨울에 터져 나온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추락하기 시작했고, 그 유산을 흡수한 두 마리의 공룡 현대와 삼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떠오르며 '라이거스 vs 레이콘스'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돈으로 남의 집 기둥뿌리를 빼가는' 것을 한국야구위원회 역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 벗고 나서서 흐름을 바꾸고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용오 KBO 총재는 박효수 쌍방울 레이더스 사장을 불러들여 각서 한 장을 쓰게 했고,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식상한 다짐을 곁들여 트레이드를 승인했다.
각서의 내용은 A급 선수에 대한 추가 트레이드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이듬해 전반기 중 무슨 일이 있어도 승률 3할을 넘긴다는 것이었다. 각서의 내용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쌍방울 문제를 이사회에서 논의한다'는 애매한 조항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넉넉하게 내려잡은 '3할 승률'이라는 목표치 역시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죽을힘을 다하지 않고는 야구장에서 1승이라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껴보지 못한 책상물림의 한가한 망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1승도 거져 주어지지는 않는다
당시 쌍방울의 사령탑은 없는 전력에서 성적을 뽑아내기로 자타공인 역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해온 '김성근 감독'이었다. 1989년과 1996년, 나란히 전년도 꼴찌 팀 태평양 돌핀스와 쌍방울 레이더스를 맡아 플레이오프까지 올려놓은 것은 그런 그의 실증적인 업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굴하고 고쳐 쓸 선수의 공급마저 차단된 상황에서 단 한 장의 필승카드도 남기지 않고 털어낸 전력으로도 뭔가를 만들어낼 마력까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99 시즌, 쌍방울은 철저한 동네북이었고 승수 쌓기의 제물이었다. 시즌 초반 현대에서 폐기처분된 김성근 감독의 옛 제자 박정현이 4연승을 달리는 오기를 보이며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지만, 곧 팀 승률은 정해진 듯 2할 대 중반으로 맞춰졌다. 그리고 양대리그제가 시행된 그 해, 개막 한 달여가 지난 시점부터 매직리그 선두 LG에 10게임차로 벌어지기 시작했고 리그 1위 팀이 서너 차례나 자리바꿈을 하는 사이에도 변함없이 승차는 꾸준히 늘어만 갔다.
그 사이 선수단과 프런트의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고, 2군이 해산되며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그리고 1군 선수단 역시 원정경기 숙소가 3급 호텔로 하향조정되었고 광주와 대전 원정경기는 매일 전주에서 출퇴근을 하며 치러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선수를 구해달라는 감독의 다급한 목소리는 늘 메아리없는 독백으로 끝이 났고, 오히려 구단 수뇌부에는 감독이 전력보강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승부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불신의 분위기마저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전반기를 마쳤을 때 쌍방울이 기록하고 있던 승률은 각서에 명시한 3할에 한참 못 미치는 .224(17승 5무 59패)였다. 물론 당장 KBO가 쌍방울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구단주와 사장의 발언권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올스타전이 끝나던 7월 14일 밤 박효수 사장은 '구단주와 사장의 현실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쓴소리를 서슴없이 해대던 김성근 감독을 만나 해임을 통보하게 된다. 명분은 슬프게도 '성적 부진의 책임'이었다. 박 사장은 그 자리에서 김 감독에게 '구단 고문직'을 제안했지만, 바로 전날까지도 '지금이라도 선수를 보내주면 반전이 가능하다'며 집념을 버리지 않았던 김성근 감독은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살을 베려던 칼에 뼈를 꺾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