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한 옛날에 다섯 아이가 우주 멀리 아주 멀리 사라졌다네' 로 시작하는 '후레쉬맨'의 주제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장난감 로보트를 이용한 어설픈 합체장면에, 극도로 과장된 특수효과와 와이어 액션이 사용되고, 모든 내용은 거의 변함없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훈련된 특수 용사들이 외계에서 날아온 적과 맞서 싸운다는 뻔뻔한 컨벤션을 가지고 있는 이 장르를 가리켜 전대물(戰隊物)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대물' 이라는 공식 용어보다 '특촬물'이라는 정체불명의 줄임말이 더 익숙하고, 또 특촬물이라고 불러야지 이런 시리즈를 봤을 때 느껴지는 다찌마리 스타일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촬물은 1975년 일본에서 '비밀전대 고레인저'로 처음 시작되었고,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후레쉬맨이나 마스크맨도 모두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후속 시리즈였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미 유치하다고 사장된 이 특촬물은 예전처럼 인기를 누리지는 못해도 여전히 일본에서 제작되고 있다.

특촬물에 대해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바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신작 <제브라맨>이 특촬물의 세계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웃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주임선생인 이치카와(아이카와 쇼)는 인기가 없어서 서둘러 종영한 특촬물 <제브라맨>의 팬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제브라맨의 의상을 만들어 입고는 '이 옷을 입고 쥬스를 사러 나가면 누가 볼까?'를 걱정하는 소심한 남자이다. 그런데 이치카와가 사는 일본 요코하마의 야치요구에 외계인이 등장하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고, 이치카와는 우연히 제브라맨의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진짜로 제브라맨이 되어서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외계인들과 겨루게 된다.

 제브라맨의 모습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공인받은 괴짜감독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가 겨우 저런 내용으로 끝날리는 없다. <제브라맨>의 곳곳에는 상상력의 극한을 실험하는 장면이 끼어있다. 영화 중간에 <제브라맨> 시리즈의 예고편을 느닷없이 소개하고, 가면을 뒤집어쓴 외계인도 무섭다기 보다 조악하다.

앞부분의 이치카와를 둘러싼 이야기도 재밌지만, 역시 <제브라맨>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거대 외계인과 제브라맨이 일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극도로 과장된 액션연출과 황당한 미이케 다카시의 상상력이 관객들을 포복절도의 세계로 이끈다.

다만, 설명이 길어지며 늘어지는 인상을 주는 영화의 중반은 좀 아쉽다. 과거의 미이케 다카시라면, 영화의 흐름을 끊으면서까지 내용 설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근작 <착신아리>에서도 그랬듯이 최근의 미이케 다카시는 예전에 비해 상당히 대중적으로 변했다. 과거의 용감무쌍했던 미이케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제브라맨>의 중반부에는 약간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브라맨>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일본 '특촬물'에 대해 미이케 다카시가 바치는 헌사이다. 어쩌면 그의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황당한 상상력의 원천은 그가 어린 시절 보아오던 특촬물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면,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나는 한국에서 제작된 유명한 특촬물인 <우뢰매> 시리즈가 새삼 생각이 났다. 2010년이 되면 우뢰매가 나타나 외계인으로부터 서울 종로를 지킬 것이라는 황당한 상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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