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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은 엄마가 만들어 줬다며 집에서 많이 먹었던 '국민간식'인 떡볶이를 나는 자주 먹지 않았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떼를 지어 간 문방구에서도 친구들은 떡볶이를 사 먹었지만 나는 과자를 사먹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쫀득거리는 식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떡볶이가 맛있다고 느끼고 좋아하게 된 적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과 신혼 때이다. 남편은 떡볶이를 좋아하고 자주 먹고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남자친구였던 그의 집에 한 번씩 놀러 가면 그는 항상 떡볶이를 만들어 내게 대접했다. 결혼하고 신혼 때도 남편은 특식으로 떡볶이를 만들곤 했다. 그때는 요리하는 그의 모습이 예뻐 보여 흐뭇했고 떡볶이도 맛있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그가 만든 떡볶이를 먹고 나서 이렇게 오글거리는 연애편지를 썼다니.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그가 만든 떡볶이를 먹고 나서 이렇게 오글거리는 연애편지를 썼다니.
ⓒ 최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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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설탕을 넣어 달달했고 윤기가 흘렀다. 강렬한 빨간 양념에 싱그러운 초록 대파가 대비되는 듯 조화롭게 어울렸다. 적당히 깨를 뿌려 고소하기까지 했다. 떡볶이의 달달함과 윤기, 조화, 고소함은 마치 나와 그의 미래 같아 보였다.

출산을 하고 육아 전쟁이 시작되면서 남편과의 다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내 몸이 힘드니 남편에게 더 예민하게 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은 육아와 가사에 최선을 다했지만 내 성에 차지 않아 그를 닦달했던 것 같다.

남편이 미워 보이니 그가 만든 떡볶이가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고추장은 왜 그리 텁텁하고 멸치 육수는 왜 또 그리 비릿한지. 이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떡에도 짜증이 났다. 짜증은 곧 가스레인지 뒤 흰 타일에 튄 빨간 양념과 싱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짓거리를 보고 폭발해버렸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니 남편은 아이의 간식을 위해 더 자주 떡볶이를 만들었다. 그는 아이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떡볶이를 만들었다. 간장 떡볶이, 궁중 떡볶이, 짜장 떡볶이, 치즈 떡볶이.... 그 즈음 육아도 한결 수월해지고 여유가 생겨 남편과 다툴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 덩달아 떡볶이가 다시 맛있게 느껴졌다.

남편은 떡볶이를 만들 때 언제나 맛있게 만들려고 했을 것이고 정성을 다했을 것이다. 같은 떡볶이를 두고도 남편과의 관계가 좋을 때는 그의 요리에 감동하고 맛있게 먹었지만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그의 요리가 달갑지 않았고 맛 또한 느끼지 못했다.

내가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그의 떡볶이가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마치 밤하늘의 달도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달을 두고도 북반구에서 보는 초승달은 오른쪽으로 볼록하고, 남반구에서 보는 초승달은 왼쪽으로 볼록하고, 적도에서 보는 초승달은 아래쪽으로 볼록하지 않은가.
 
남반구에서 보는 초승달은 왼쪽으로 볼록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결국 우리가 규정한 것.
 남반구에서 보는 초승달은 왼쪽으로 볼록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결국 우리가 규정한 것.
ⓒ 픽사베이(Lynn Grey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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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연애할 때나 신혼 때나 지금이나 같은 사람이다. 단지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내 눈이 달라져서 남편이 은인 같아 보일 때도 원수 같아 보일 때도 있었던 것이다. 남편도 남편이 만든 떡볶이도 밤하늘의 달도, 우리가 보는 세상은 결국 우리가 규정한 것이다. 이왕이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열린 마음을 내어 규정해야겠다.

떡볶이는 단맛, 짠맛, 매운맛이 한데 섞여 있는 것이 꼭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으며 살아가는 부부 같다. 여러 가지 맛이 묘하게 섞여 한 접시의 떡볶이가 되듯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나누는 다정한 부부이고 싶다.

오늘은 남편이 라볶이를 만들어 보겠단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을 것이다.
 
여러 가지 맛이 묘하게 섞여 있는 떡볶이
 여러 가지 맛이 묘하게 섞여 있는 떡볶이
ⓒ 최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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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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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으로 성장하다. 책에서 힘을 얻습니다. 어쨌든 읽고 무작정 쓰고 아무것이라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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