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이집트의 경기. 손흥민이 4대1로 이긴 뒤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이집트의 경기. 손흥민이 4대1로 이긴 뒤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때로는 너무 잘하는 것도 탈이다.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에이스이자 주장인 손흥민은 비시즌에도 쉴틈이 없다. 손흥민은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골든부츠(득점왕, 23골)를 차지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유럽 시즌을 마치고 귀국한 손흥민은 다시 숨돌릴 사이도 없이 곧바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6월 열린 A매치 4연전 일정에 임해야 했다. 손흥민은 벤투호에서 유일하게 지난 A매치 4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이 중 3경기가 풀타임 출장이었고, 유일하게 교체된 칠레전에도 정규시간을 다 소화하고 후반 47분에야 벤치에 들어갔다. 당시 손흥민이 센츄리클럽 가입을 기념하여 팬들의 축하와 박수를 받게 하기 위한 배려 차원의 교체가 아니었다면, 칠레전 역시 풀타임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손흥민은 현재까지 A매치 102경기에 나서서 33골(역대 득점 4위)을 기록하고 있다.
 
손흥민은 토트넘과 대표팀에서 모두 전술의 핵심이자 대체불가한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35경기에 출전하며 23골·7도움을 기록하며 토트넘의 시즌 4위 등극과 유럽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최대 수훈을 세웠다. 시즌 사이에 열리는 A매치 기간에는 국가대표팀에서도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4골을 기록하며 한국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
 
부상이 아닌 이상 토트넘과 대표팀 모두 손흥민은 거의 모든 경기에 선발출장하고 있으며 한 번 출전하면 풀타임을 소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에 따라 윙어에서 최전방 원톱-투톱까지 여러 포지션은 물론이고, 전담키커-공간창출-플레이메이킹-수비가담까지 수행해야 하는 역할도 다양하다. 상대팀도 손흥민의 비중과 능력을 잘 알기에 매경기 그에게 거친 집중견제나 도발이 들어오는 것이 다반사다.
 
자연히 손흥민의 체력과 컨디션 관리에 대한 걱정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지난 6월 9일 국제축구선수협회(아래 FIFPRO)의 선수별 업무강도 모니터링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프로축구선수의 이동시간과 거리, 업무강도, 혹사 정도를 비교한 내용인데 여기에는 손흥민도 포함되어 있다.
 
휴식 취할 틈도 없는 손흥민
 
손흥민, '프리킥으로 센추리 자축포'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손흥민, '프리킥으로 센추리 자축포'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럽무대에서 오랫동안 뛰며 한국과 잉글랜드는 물론이고, 유럽(유럽클럽대항전)과 아시아(A매치 원정경기일정) 각 지역까지 쉼없이 오가야 했던 손흥민은 2018~2019시즌부터 2020~2021시즌 사이 3시즌간의 기록을 분석한 결과 총 300시간(약 12.5일), 22만 3673㎞를 이동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152경기, 대한민국 국가대표 20경기에 참여하여 총 172경기에서 무려 1만 3576분을 소화했다.
 
FIFPRO가 제시한 한 시즌에 선수가 온전한 컨디션으로 소화할 수 있는 최대 경기의 기준은 55경기였다. 그런데 한 시즌에 55경기 이상 뛴 선수는 2018~2019시즌 102명, 2019~2020시즌 39명, 2020~2021시즌 7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설문조사에 참여한 선수 중 약 54%에 해당하며 손흥민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과도한 스케쥴을 감당하는 선수 중 한 명이 손흥민이고, 심지어 몇 년째 이런 스케쥴을 반복해서 감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량과 성적만이 아니라 혹사도 월드클래스급인 셈이다.
 
손흥민의 팀동료이자 잉글랜드 국가대표인 해리 케인과 비교하면, 케인은 같은 기간 총 159경기(소속 구단 128경기, 국가대표 32경기)에 나서 총 1만 4051분을 뛰었다. 경기수와 출전시간만 놓고보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이동거리(8만 6267㎞)와 시간(123시간)에서는 손흥민(13만 7370㎞, 177시간 차이)과 크게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흥민은 케인보다 대표팀 경기수는 적지만 이동거리는 2.5배나 많았고 1주일가량의 시간을 이동에만 소비했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케인에 비하여 거리가 더 먼 아시아까지 다른 대륙을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손흥민의 부담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지금 당장은 큰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손흥민의 신체에 장기적인 부담으로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손흥민의 활약상과 팀내 비중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21-2022시즌의 기록은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손흥민은 지난 1년간 놓고 봐도 쉴틈없는 강행군을 이어왔고 다음 시즌 역시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6월 14일에야 모든 대표팀 일정까지 마감한 손흥민은 내달인 7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소속팀 토트넘과 'K리그 올스타'의 스페셜경기로 2022-2023시즌 일정에 다시 돌입한다. 국내에서 열리는 경기인 만큼 손흥민이 팀에 합류해 출전할 것은 확실시된다.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기간을 감안하면 결국 손흥민이 올여름 제대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간은 길게 잡아도 3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 소속팀 토트넘은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하며 EPL와 유럽클럽대항전 일정을 병행해야 한다. 올겨울에는 축구대표팀이 카타르월드컵 본선까지 앞두고 있어서 손흥민이 새 시즌에 출전해야 할 경기수는 자연히 더 늘어난다.
 
혹사에 대한 우려 외면
 
손흥민, ‘센추리 찰칵 세리머니’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손흥민, ‘센추리 찰칵 세리머니’ 6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칠레의 경기. 대한민국 손흥민이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걱정되는 부분은 이처럼 구체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문제제기가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음에도 정작 현장에서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의 성적이 중요한 구단과 대표팀 감독들은 손흥민의 혹사에 대한 우려를 애써 외면한다. 프로의식이나 국가대표팀에 대한 사명감을 내세워 마치 그 정도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혹사를 합리화하는 요소다.
 
심지어 손흥민 본인도 일정부분 이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손흥민은 자신을 둘러싼 우려에 대하여 "유럽 외 다른 국가 출신이면 다 겪는 일"이라거나 "태극마크 다는 건 영광이다. 저는 괜찮다"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이러한 손흥민의 프로의식과 헌신은 분명 개인으로서는 칭찬받을 일이지만,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례로 남는다는 점에서는 꼭 바람직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보다 많은 경기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손흥민도 '문제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비슷한 상황에 놓여서 어려움을 겪는 유럽파와 국가대표가 설사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손흥민도 똑같이 했는데'라는 식으로 비교대상에 놓이는 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손흥민 이전에 국가대표 주장이었던 박지성-기성용-구자철 등은 바로 지금 손흥민의 나이인 30대 초반을 전후하여 대표팀을 일찍 은퇴하는 결정을 내렸다. 혹사에 가까운 일정에도 지금같이 큰 부상없이 건강하게 선수생활을 이어가고있는 손흥민이 대단한 것일뿐, 이런 상황이 정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손흥민도 30대에 접어들면서 최근 2~3시즌 동안은 부상이 부쩍 늘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초에는 다리 부상으로 한 달 가까이 결장하며 소속팀과 대표팀이 모두 그의 공백으로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잔부상이 거의 없었던 20대와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고 주시해야 할 위험신호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번 4연전에서 김민재-이재성-정우영-황인범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공백으로 최상의 전력을 발휘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벤투호가 공격에서 제 위력을 발휘할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프리롤을 넘나들며 맹활약한 손흥민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만일 월드컵에서 손흥민이 부상을 당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대표팀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시나리오다. 혹은 혹사로 인한 피로누적과 컨디션 난조로 월드컵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표팀 생활을 병행하는 데 언젠가 육체적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손흥민 본인은 제아무리 대표팀에서 오래 뛰고 싶은 의지가 있더라도 몸상태가 받쳐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손흥민을 꾸준히 오래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축구팬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한국축구의 보물인 손흥민의 활약과 업적을 찬양하기에는 바쁘면서도, 정작 손흥민을 어떻게 장기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해야할지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상하리만큼 무심한 축구계의 현실이 아쉬움을 자아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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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카타르월드컵 손흥민출전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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