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경제는 '관종'과 '관음'을 원동력으로 움직인다. '좋아요'를 의식하면서 게시물을 올리거나 관심 있는 타인의 SNS를 정독한 경험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두 단어가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사람의 형체를 갖춘다면 어떤 모습일까. 영화 <그녀가 죽었다> 속 관찰당하고 관찰하는 두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보면 된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 아이파크에서 영화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휘)의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배우 변요한, 신혜선, 김세휘 감독이 참석했다. 김세휘 감독은 "<그녀가 죽었다>는 몰아치는 사건과 감정이 많아 매력적인 장르물이다. 우리 영화 재밌다고 소문내고 있는데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며 첫 장편 영화 데뷔 소감을 알렸다. 

러닝 타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소라(신혜선 분)'가 죽는다. 그는 소시지를 먹으면서 비건 샐러드를 포스팅하고 호감형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동물을 이용한다. 그 이중성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 분)'다. 관음증보다 '주거침입',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수식어로 느껴질 만큼 그는 범죄의 영역을 넘나든다. 구정태가 152일째 한소라를 관찰하던 날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그녀의 주변을 파헤치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어떤 공감도, 이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인물"
 
 배우 변요한

배우 변요한 ⓒ (주)콘텐츠지오

 
변요한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구정태라는 인물이 더욱 비호감으로 느껴지면 좋겠다"고 캐릭터를 소개했다. 그는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이 신뢰도가 굉장히 높은 직업이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시지 않나. 하지만 구정태는 자신의 사생활, 취미, 호기심을 풀어가는 인물"이라며 "시작은 관객 옆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어우러지고 싶어 힘을 빼고 연기했다. 구정태가 한 행동이 사건 속에 천천히 스며들면서 관객들 눈에도 어느 순간 그의 성향과 기질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인물을 쌓아간 과정을 설명했다. 

신혜선은 한소라를 '어떤 공감도, 이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래서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부분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제가 가진 얼굴과 느낌으로 가장 가증스러워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주인공의 추악한 거짓말과 은밀한 욕망을 관객에게 숨기지 않는다. 변요한은 "인간은 살아가면서 끝없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한다. 아프면 어느 자리에 따라서 안 아픈 척을 하고,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척도 하지 않냐. 모든 사람의 가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그런 것들이 굵직하고 추상적인 말이라면, 이 영화는 캐릭터를 통해 감독님께서 닿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고 영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SNS가 소통창구 되면서 나타난 부작용 말하고 싶었다"
 
 배우 신혜선

배우 신혜선 ⓒ (주)콘텐츠지오

 
관객에게 동정할 틈도 주지 않는 비호감 주연을 내세우면서 김세휘 감독 또한 고민이 깊었다. 그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SNS가 막을 수 없는 소통창구가 되면서 나타난 부작용을 말하고 싶었다. 염탐, 관음을 하기 위해 SNS 부계정을 만드는 현상도 나타나잖냐.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캐릭터와 동질감을 느끼기보단 경악하면 좋겠다.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쟤들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면 성공"이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한편, 영화 시놉시스가 공개되면서 일각에서는 관음을 일삼는 남자가 살인 누명의 피해자라는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범죄를 희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했다. 이에 김세휘 감독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주인공들의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옹호하지도, 미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그들에게 닥치는 시련은 그들이 행동한 결과니까 그릇된 신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관객이 직접 평가하도록 만들었다"라며 "결론적으로 구정태라는 인물은 본인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잃는다.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인물들과 관객 사이 유일하게 허락된 창구는 '내레이션'이다. 김 감독은 "원래 내레이션 없이 시나리오를 쓰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주인공으로서 감정이입을 한 채로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는데 저조차도 인물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라며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며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형식으로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비화를 전했다. 

한소라는 '내가 제일 불쌍해'라는 말로 거짓말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고 타인을 해하는 행위까지 정당화한다면 구정태는 죄의 무게조차 깨닫지 못한 채 관음을 취미 정도로 여긴다. 이에 구정태는 좀 더 관객에게 친근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을 건다면 한소라는 자신에게 말을 건다. 관객은 자기합리화와 자기연민이 뒤섞인 두 인물을 바라보며 거리를 좁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 끝에는 옹호하고 싶지 않는 두 인물의 절박한 발버둥이 남는다. 신혜선은 "나름 액션신 같은 몸싸움이 있다. 싸움 못 하는 애들끼리 치고 박는 연기를 했는데 액션 경험이 많은 변요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더 절실하게 싸우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에 변요한은 "무술감독님, 촬영감독님과의 회의 끝에 선택한 것은 '몸부림'이었다. 관객들에게 타당성을 주장하다가 끝에는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의 몸부림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녀가 죽었다>는 오는 5월 15일 개봉한다.
그녀가죽었다 김세휘감독 변요한 신혜선 관음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