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가 6월 A매치 4연전의 피날레를 기분좋은 승리와 골폭죽으로 장식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강호 이집트와 평가전에서 황의조-김영권-조규성-권창훈의 연속골을 묶어 4-1로 완승했다.
 
2001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LG컵 4개국 친선 대회(2-1 승) 이후 21년 만에 승리를 거머쥔 한국은 이집트와 역대 통산 전적에서도 6승7무5패로 한걸음 앞서가게 됐다. 이로써 한국은 브라질(1-5 패)과 칠레(2-0 승), 파라과이(2-2 무)-이집트로 이어진 4연전을 2승1무1패로 마감했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이집트 경기가 한국의 4대1 승리로 끝났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이집트 경기가 한국의 4대1 승리로 끝났다. ⓒ 연합뉴스

 
카타르월드컵 본선 대비한 모의고사

6월 A매치 4연전의 취지는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대비한 모의고사였다. 아시아 예선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벤투호가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될 타 대륙의 강호들에게는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특히 벤투호가 자랑하는 후방 빌드업 기반의 점유율 축구가 강팀들을 상대로 통할지 검증받는 무대였다. 한국은 이번 4연전을 통하여 어느덧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의 성적표를 좌우할 성과와 과제를 동시에 남겼다.
 
역시 아시아권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스타일의 강호들을 체험해 봤다는 것은 중요한 소득이다. 특히 첫 경기인 브라질전은 아프지만 값진 예방주사였다.
 
벤투호는 월드컵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는 강팀을 만나 대패를 경험하면서 한국축구가 아직 세계 정상권과는 격차가 있다는 것과, 점유율 축구의 한계도 확인했다. 브라질은 경기장 안팎에서 '즐길 땐 즐기고, 보여줄 땐 보여주는' 프로폐셔널 한 모습으로 최상의 평가전 상대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탈압박'은 6월 4연전 내내 벤투호의 가장 큰 화두였다. 벤투호는 지난 4년간 줄곧 후방 빌드업에 기반한 점유율축구를 추구해왔다. 아시아권에서는 강팀의 입장에서 주도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지만, 개인기와 조직력에서 밀릴 게 없는 강팀을 만났을 때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야할지 숙제를 남겼다. 
 
월드컵 본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돌발 상황들을 미리 경험하면서 벤투호는 '멘탈 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브라질전에서 한국은 네이마르 등 쟁쟁한 월드클래스급 선수들을 상대로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밀리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반면 파라과이전에서는 2골을 먼저 내주고 끌려가다가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동점까지 따라잡는 뒷심을 보여줬다.
 
지능적이고 거친 플레이를 즐겨 구사하는 남미 선수들을 상대로 벤투호는 여러 차례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파라과이전 경기 막판에는 에이스 손흥민이 거친 파울을 당한 것을 계기로 양팀 선수들이 뒤엉켜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승리를 위하여 종종 더티한 플레이로 불사하는 남미팀의 스타일을 만났을 때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손흥민 활용법'의 확장성과, 공격진의 동반 부활은 벤투호가 보여준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4연전을 통하여 A매치 센츄리클럽(102경기)에 가입한 손흥민은 프리킥(칠레-파라과이 2연속 득점)으로만 2골을 추가하며 어느덧 역대 득점 공동 4위(33골)에 이름을 올렸다.
 
벤투 감독은 이번 4연전에서 손흥민을 측면 윙어에서 원톱-투톱 스트라이커까지 다양하게 활용했다. 손흥민은 최전방에 배치되었을 때도 1-2선을 오가는 '프리롤'같은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끌고다니며 교란시키고 동료들의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전담키커로서 여러 차례 예리한 킥 능력을 보여주며 세트피스가 월드컵에서도 벤투호의 확실한 공격루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들은 이번 4연전에서 모두 고르게 골맛을 경험하며 월드컵 엔트리 승선에 청신호를 밝혔다. 대표팀에서 1년넘게 골을 터뜨리지 못해 우려를 자아냈던 황의조가 2골 1도움(브라질,이집트)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고, 조규성, 황희찬, 권창훈 등도 골을 터뜨렸다. U-23팀에서 대체발탁으로 A팀에 승선한 엄원상은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침투능력을 통하여 경기 후반 분위기를 바꾸는 '조커' 역할로 경쟁력을 증명했다.
 
벤투 감독은 4연전 통한 후반 교체카드로 인한 전술변화가 잇달아 적중하며 큰 효과를 거뒀다. 파라과이전 무승부와 이집트전 대승은 모두 교체멤버들의 활약상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벤투 감독이 이번 4연전에서 발탁한 엄원상-정우영(99년생)-고승범 등 '새 얼굴'들이 모두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것은 벤투호의 선택지를 한층 두텁게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수비불안은 여전한 문제
 
한편으로 문제점도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수비불안이었다. 벤투호는 4연전에서 9득점을 올렸지만 실점도 무려 8골이나 내줬다. 그중 5골이 브라질전이기는 하지만, 나머지 3경기에서도 수비는 허용한 실점 이상으로 자주 불안했다.
 
유일하게 최정예멤버로 임한 브라질을 제외하고 다른 3팀은 모두 월드컵 본선에 탈락한 팀들이다. 심지어 한국 원정에서는 세대교체나 부상 등의 이유로 1.5군-2군에 가까운 전력으로 나섰다. 그럼에도 한국 수비는 상대의 기습적인 압박이나 빠른 역습에 자주 흔들렸다. 한국이 허용한 8실점의 대부분이 우리의 실수로 인한 실점이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핵심인 김민재가 빠진 수비진에서 다른 수비수들의 빌드업과 탈압박능력이 떨어진다는 것과 포백을 앞선에서 보호해 줄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빈 자리가 두드러진다는 것도 문제다. 벤투호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중용되고 있는 정우영-황인범-백승호 등은 모두 수비보다는 패스와 공격능력에 더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다.
 
무엇보다 벤투호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플랜B의 부재'는 가장 큰 불안요소다. 벤투호가 이번 4연전을 통하여 선수 기용과 전술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단행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높은 주전 의존도와 점유율 축구 일변도의 스타일은 변화가 없었다.
 
벤투호는 이번 4연전 내내 에이스 손흥민을 매경기 풀타임에 가깝게 활용했다. 손흥민이 의심할 나위 없이 벤투호의 중추인 것은 사실이지만 손흥민이 막히거나 부상을 당하는 상황 등도 가정한 대비책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럽에서 이미 긴 시즌과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지쳐 있을 손흥민의 몸상태를 적절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또한 벤투호는 김민재, 황희찬, 정우영, 황인범 등 여러 선수들이 부상과 개인일정 등으로 합류가 불발되거나 중도에 하차하며 베스트전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변수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공격에서는 손흥민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면, 중원에서는 정우영, 수비에서는 김민재가 없을 때 팀의 경기력 편차가 한 눈에 보일 정도다. 
 
물론 핵심선수들의 비중이 큰 것은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벤투호의 경우, 손흥민-김민재같은 대체불가한 주전 한 두명만 빠져도 팀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린다는 데 있다. 벤투 감독의 점유율 축구 자체가 높은 수준의 전술적 완성도를 요구하는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선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점유율 축구의 근간인 후방 빌드업이 상대의 압박에 막히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선수들의 개인능력과 임기응변이 아닌 이상, 별다른 전술적 대안이 준비되어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전술은 상대의 맞춤형 공략법에 노출되었을 경우 대처능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벤투 감독은 점유율축구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포메이션과 부분 전술에 변화를 주는 것을 플랜B로 구상하고 있다. 벤투호가 월드컵 본선에서는 주전들이 최대한 부상 없이 조직력을 한층 끌어올리기만 기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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