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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현지 시간으로 지난 3월 14일 일요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전통적인 보수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이 예상대로 패배했다. 이는 단순히 지방선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9월에 있을 총선의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독일 정치의 양대 산맥이었던 독일사회민주당(SPD)과의 연정으로 정권을 간신히 유지해온 메르켈 정부의 몰락도 예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질적으로 독일 정치를 주도해온 보수당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답은 간단하다. 자멸한 것이다. 오랫동안 권좌에 머무르면서 쇄신의 동력도 상실한 데다가 부정과 부패, 무능으로 점철된 정부와 정당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보수 정당의 몰락으로 독일 정계의 혼란이 야기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전통적인 좌파 정권인 사민당보다 더 좌파적인 녹색당(Die Grüne)이 이미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며 국민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반해 한 때 독일 정국을 흔들었던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이 지방 선거에서 크게 패하면서 10% 이하의 지지를 받는 군소 정당으로 추락했다.

이제 녹색당은 전통적으로 보수색이 강했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사민당과 좌파 연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보수색 강한 유럽, 보수당 몰락하는 이유는...

사민당이 지배하던 라인란트-팔츠 주에서도 사민당과 녹색당이 연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보수 정당이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는 연방정부 차원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경제 규모가 폴란드와 맞먹는 수준으로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 차원에서도 뛰어난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주이다. 라인란트-팔츠는 비록 경제 규모는 작으나, 이른바 통일 수상이라는 콜(Helmut Kohl)이 주지사로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전통적인 보수색이 강한 주였다. 그러나 1991년 사민당에 정권을 내 준 이후 야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보수색이 강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독일에서 이제 보수당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구태와 부패이다.     

독일사회민주당(SPD)와 대연정을 이루며 정권을 간신히 유지해 가고 있는 기민당/기사당 연합(CDU/CSU Union)이 다시 한 번 패닉에 빠졌다. 이른바 마스크 스캔들이 독일 정국을 강타한 것이다.      

34세 신진 정치가로 두각을 나타내던 독일연방의회의 기민당 소속 의원인 니콜라스 뢰벨(Nikolas Löbel)이 마스크 거래와 관련된 스캔들로 인해 탈당했다. 그러나 의원직은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니콜라스 뢰벨 독일 기민당 연방의원은 중국산 코로나 방역 마스크 주문 중개수수료로 25만 유로(약 3억4천만원)를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니콜라스 뢰벨 독일 기민당 연방의원은 중국산 코로나 방역 마스크 주문 중개수수료로 25만 유로(약 3억4천만원)를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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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벨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temberg) 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 다음으로 큰 도시인 만하임(Mannheim)을 지역구로 한다. 그는 2020년 4월 24일, 곧 독일에서 코로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시기에 부름링겐(Wurmlingen)에 있는 회사인  비르콘 테크놀로지(Bricon Technology GmBH)를 통하여 중국산 마스크 수입에 편의를 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대가로 25만 유로(약 3억4천만원)를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민당과 연합을 이루어 온 기사당(CSU) 소속의 연방 의회 의원인 뉘쓰라인(Georg Nüßlein)도 마찬가지로 마스크 스캔들에 연루되어 당을 탈퇴한다고 했다. 다만 그도 뢰벨과 마찬가지로 다음 선거 때까지 의원직을 고수할 의사를 밝혔다. 

뉘쓰라인은 1969년생이다. 2002년부터 바에에른 노이울름(Neu-Ulm)을 지역구로 하는 그는 지금까지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부 당대표(stellvertretender Vorsitzender)를 맡았을 정도로  관록 있는 정치가로 명망을 쌓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 이들 두 사람 말고도 여당의 다른 의원들도 유사한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논란 휩싸여 탈당하고서도 의원직은 고수... 동료 의원들까지 분노

스캔들로 당적을 상실했지만 의원직을 고수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독일 국민은 물론 동료 의원들도 더욱 분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은 9월 총선까지 의원직을 유지하면서 연방의회 의원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그대로 유지할 모양이다. 의원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살펴보면, 일단 의원 급여가 상당하다. 먼저 본봉(Abgeordnetenentschädigung)이 2019년 기준으로 월 10,083.45 유로이다. 이 액수는 법으로 의원들이 스스로 정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 수당이 월 4,418.09 유로이다. 그리고 1년에 1만 2000유로를 지역구 사무실 유지비로 받는다.  이 돈만 다 합쳐도 의원 1명의 연봉이 18만 6018.48유로(약 2억 5천만 원)에 이른다.

그뿐인가. 비서와 보좌관을 두는 데 드는 비용으로 매달 20,870유로까지 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포함하면 연봉이 43만 6458.48유로(약 5억 7천만 원)에 이른다. 2019년 기준 독일 평균 연봉 2만 3663 유로(약 3천만 원)의 거의 18.4배에 이르는 엄청난 고소득 직종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한 번만 의원직에 있다가 물러나도 기존의 노령연금에 매달 최소한 954유로(약 124만 원)가 더해진다. 현재 독일의 노령연금은 구 서독지역이라 해도 매월 1539유로(약 200만 원)에 불과하다. 50% 이상을 더 얹어 받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 의원들은 한국의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국내외 통신비, 교통비도 다 무료이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정치인 기부금의 상한액이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독일의 의원들의 돈 욕심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구조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해 온 상황이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기업의 편의를 봐주면서 거금을 챙기는 의원들이, 특히 보수 정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부패 가능한 구조인데... 대책 없는 정당들

이런 의원들의 부패 추문과 관련한 당의 대책도 한심한 수준이다. 겨우 내세운 것이 의원들의 각서를 받는 것이었다. 곧 마스크와 관련된 불법적인 돈을 안 받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는 데 그친 것이다.

이는 마치 현재 한국에서 국회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부동산 투기 여부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근원적인 해결보다는 당장 앞둔 선거를 의식한 대중영합주의적 미봉책만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 여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참패는 사실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사실 독일은 정치적, 사회적 청렴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의 스캔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특히 보수당의 경우 심각하다.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연방공화국 곧 과거 서독은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공화정을 수립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였다. 이 새로운 정치판에 전통적인 독일사회민주당(SPD) 이외에 독일의 정치를 이끌어 온 것이 신생 기민당/기사당 연합이다. 그러나 기사당은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인 1918년 수립된 바이에른 민중당(Bayerische Volkspartei, BVP)의 실질적인 후신이다.

바이에른민중당은 다시 가톨릭교회당인 독일 중앙당(Deutsche Zentrumspartei, DZP)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중앙당의 후신인 기민당(CDU)과의 연합이 어렵지 않았다. 결국 다 가톨릭 정당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민당은 그 수립과 동시에 비가톨릭 보수 세력 규합에 성공하여 중도 우파 정당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독일 초대 총리로 16년 동안 정권을 장악했던 기민당의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가 기민당/기사당 연합을 실질적으로 독일의 보수당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세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철저한 반공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는 전후 독일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국제 사회에서, 특히 서방에서 독일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의 강력한 보수주의는 독일 국민들이 나치 정권의 만행에 대한 원죄의식을 벗어나 자의식을 회복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전통이 훨씬 더 깊은 중도 좌파인 사민당은 아데나워의 후계자인 에르하르트(Ludwig Wilhelm Erhard, 1897-1977) 정권이 1969년 총선에서 패배하자 빌리 브란트(Willi Brandt, 1913-1992)가 자민당(FDP)과 연정을 이루어 수상이 되면서 전후 24년 만에 겨우 제대로 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민당/기사당 연합에는 이른바 과거 히틀러 독재 정권에서 잘 나가던 인물들이 많았다. 이들은 아데나워 정권 때부터 요직에 등용되어 출세 길을 달렸다. 초대 수상인 아데나워는 전후 독일의 부흥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능력만 있으면 나치 전력이 있는 인사들이라 해도 가리지 않고 등용하였다. 그리고 이런 능력 위주 정책과 반공주의는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는 정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근본정신으로 이어져 왔다.      

권력을 장악해오던 기민당/기사당은 보수성향의 독일의 보수 세력의 아성으로 군림하면서 사실상 독일 정치의 중심이 되어 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콜 정권 말기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난 내부적 부패에 더해, 극우 정당의 출현으로 이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사실 16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한 아데나워나 15년 동안 유지된 콜(Helmut Josef Michael Kohl, 1930-2017)의 정권에서도 부패 추문은 있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독일 국민성이 이를 완전한 정권 교체의 계기로 삼지는 않았던 것이다. 진보에게 나라를 맡기기에는 믿음이 부족했다.     

메르켈 정권은 어떤가
 
지난해 6월 3일 주간 내각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난해 6월 3일 주간 내각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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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정권에서도 총리 자신에게는 큰 탈은 없었으나 기민당/기사당 연합 소속 의원들의 끊임없는 추문이 이어졌다. 특히 의원들이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로비 활동을 벌인 사건이 이어져 결국 로비금지법 제정이 추진 중에 있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제 메르켈이 물러나면서 후계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과연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과연 차기 정권을 잡을지 아무도 모를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슈피겔>지(Spiegel)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연방 차원의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지지율은 27.5%에 머물렀다.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은 더 처참하다. 16.7%이다. 그에 비하여 이제는 좌파 대안 정당이 아니라 수권 정당으로 떠오르고 있는 녹색당은 20.7%로 당당히 제2정당의 지위에 오르고 있다. 전통적인 자민당은 8.7% 좌파당은 8.4%이다. 그리고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은 12.6%에 달한다.     

전통적으로 독일 정치를 이끌어온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은 이제 더 이상 다수당이 아니다. 우연히 이는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굳건한 지지 기반이었던 독일 가톨릭 교회의 신자 비율의 추세와 비슷하다. 1961년 조사 때만 해도 독일 국민의 45.5%가 가톨릭, 51.1%가 개신교였다. 둘을 합치면 96%가 넘어 사실 거의 모든 독일 국민이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나 2019년 기준, 가톨릭은 27% 개신교는 26%로 추락했다. 두 교회 모두 상징적인 30%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교회 탈퇴의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해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 50만 명 이상이 기독교를 떠나는 중이다. 조만간 50% 선도 붕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보수의 근본 지지 세력인 기독교의 붕괴가 보수 정당의 붕괴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1949년 독일 제1차 총선에서는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31% 사민당이 29.2%로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한 추세는 통일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런 추세는 녹색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한 1980년대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2017년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당이 12.7%의 득표율을 보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총선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32.9% 사민당은 20.5%의 지지만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연방 차원에서 대연정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이후 전통적인 두 정당의 지지율은 더욱 떨어지는 추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근본문제가 바로 무능과 부패이다. 너무 오랫동안 권력을 누려온 타성에 젖어 개혁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의제를 녹색당이나 독일을위한대안당에 빼앗겨 온 결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독일 정부가 한국의 안기부와 비슷한 정보기관의 기능을 하는 부서인 연방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 BfV)을 통하여 독일을위한대안당의 불법 행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것도 예사롭지는 않아 보인다. 보수 정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극우 세력의 지지라도 다시 끌어들여야 할 판이 된 것이다.     

정부의 무능에 대하여 독일 국민의 선택이 녹색당일 수밖에 없는 것은 독일 정국의 현실을 볼 때 필연적이다. 기업을 대변하는 자민당은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고 극좌 극우 정당인 좌파당과 독일을위한대안당은 독일 국민의 대다수인 중도 층에게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선거에서도 녹색당은 현재 눈부신 도약을 하고 있는 중이다. 1980년 1.5%의 득표율로 시작한 녹색당이 이제 당당한 수권 정당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환경보호라는 의제 선점에 성공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보수 정당의 무능과 부패가 더 큰 원인일 것이다.  
    
마스크 스캔들, 어디까지 갈까... 총선 패배 가능성도 커져

기민당 원내총무인 치미아크(Paul Ziemiak)는 이번 마스크 스캔들이 1990년의 정당 후원금 스캔들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당장 발등의 불이 된 지방선거만이 아니라 9월 총선도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이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라인란트-팔츠 주의 지방선거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패배하여 총선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진 것이다.     

사실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지지 세력의 상당수가 극우 보수 진영이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들의 지지를 믿고 그동안 안온하게 대처해오다가 2017년 총선에서 독일을위한대안당으로 당내의 극우 세력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사민당도 마찬가지이다. 2007년 슈뢰더의 신자유주의 경향에 염증을 느낀 사민당 내의 좌파 진영이 떨어져 나가 구동독의 공산당의 후예인 민사당(PDS)와 연합하여 좌파당을 수립하면서 사민당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05년 선거에서 34.2%의 지지율을 보였던 사민당이 2009년 선거에서 무려 11.2%가 폭락한 23.0%의 지지율만 확보한 것이다. 그 이후 30%는 꿈의 숫자가 되어버렸다. 기득권에 안주하며 무능과 부패를 지속하면서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기성 정당의 말로를 현재 독일의 양대 정당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독일 국민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의원내각제답게 기성 정당들이 부패할 경우 선택할 대안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정당사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중심이 되어 사민당이나 자민당과의 연정으로 버텨온 보수 정권을 이제는 녹색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진보 세력만의 정부 구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미 슈뢰더 정권 때 녹색당은 사민당과의 연정으로 정권에 참여해 본 경험도 있다. 실제로 베를린의 경우는 아예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의 이른바 적적록 연정이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녹색당이 주정부 차원에서 정권에 참여하는 경우가 현재 독일에서 11개에 이르고 있다. 기민당의 경우 10개이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사민당은 13개 주에서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철저한 지방자치제를 바탕으로 연방국가인 독일에서 이는 정치의 흐름이 보수에서 진보로 나간다는 분명한 징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럽 최강 국가인 독일의 정치적 변화가, 유럽 대륙은 물론 세계의 진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녹색당은 1983년 제10대 독일 총선에서 27석 의석을 차지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정당이다. 당시 정권을 주고받던 기만당/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의 구태 의연한 정치에 염증을 느낀 독일 국민들의 숨통을 터주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녹색당은 초미의 관심사였던 환경 문제를 당의 최대 어젠다로 들고 나와 이 문제에 관한 한 다른 정당에 크게 앞서게 됐다.

그리고 이들의 인기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기성 정당의 예상과는 달리, 1994년 이후 안정적인 지지세를 확보하여 왔고 이제는 그 세력을 늘려가며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마침내 독일 국민들이 안심하고 녹색당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어지러운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서 독일과 같은 대안이 없는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크게 앞서 선두를 달리는 윤석열이 국민의힘으로 가지 않고 제3의 대안으로 등장할지 더욱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만약 윤석열이 한국에서 독일의 녹색당과 같이 기성 정당의 부패와 무능을 지적하고 정치적 어젠다를 선점할 수만 있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내년 3월에 치러질 대선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실 현재 한국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정치에 대한 염증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사실 독일 녹색당이 등장할 때 독일 정국도 마찬가지였다. 타성에 젖은 여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물론 만성 야당 의식의 사민당도 정권 획득에만 골몰할 뿐,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그럴 때 등장한 녹색당과 환경 보호 이슈는 이른바 정치염증(Politikverdrossenheit)을 느낀 독일 국민들에게 감로수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윤석열이든 이재명이든, 그 이외의 누구든 한국 정치계에도 새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개인과 집단의 이해타산에만 골몰하며 기득권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직업 정치가들을 혁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독일 총선, #보수의 타락, #정권 교체,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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