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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표지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표지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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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당대의 문장가였다. 타고남과 부지런한 습작으로 문장력이 뛰어났다. 거기에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아서 조선은 물론 역대 중국의 명시를 달달 외웠다. 

임진왜란 과정에서나 전란 이후에 명나라는 조선의 이른바 상국(上國)이었다. 명나라 사신이 올 때면 그야말로 '칙사대접'을 하게 되었다. 그쪽이 문사들이어서 이쪽에서도 최고의 문사가 뽑혔다.

1601년 연말 명나라 천자가 장남을 태자로 봉해 그 조칙을 반포하러 조선에 오는데 그를 맞이하는 원접사 이정구가 허균을 종사관으로 천거했다. 

선조는 이정구를 원접사로 임명했다. 문장과 경륜도 뛰어났거니와 경험도 많았으므로,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데에는 적격이었다. 그러나 이정구는 몇 년 동안 업무가 바빠 책을 들여다보지 못했고 정신이 이따금 어지러워져서, 명나라 사신들과 시를 주고받는 일까지 감당하기는 힘들다고 변명했다. 선조는 관례에 의해서 제술관을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 이정구가 두 사람을 추천했다. 

"젊은이들 가운데선 해운판관 허균이 시만 잘 짓는 것이 아니라, 성품도 또한 총명하고 민첩합니다. 책에 나오는 옛일들도 많이 알고 중국의 일에 대해서도 환합니다. 양주목사 김현성은 비록 늙었지만 시를 짓는 재주가 있고 게다가 글씨도 잘 씁니다. 이들을 데리고 가면 좋겠습니다." (주석 8)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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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박학한 지식과 유려한 문장으로 소임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명나라에는 이미 그의 명성이 알려지고 있었다. 1598년 봄 명나라 군사들이 지원병으로 조선에 들어올 때 오명제(吳明濟)라는 시인이 함께 왔다.

오명제는 전쟁을 돕는 틈틈이 조선의 시들을 가려 뽑았는데, 봄ㆍ여름 동안 모은 시가 200편이나 되었다. 오명제가 본격적으로 시선(詩選)을 엮게 된 것은 허균을 만나고 부터였다. 서울에 들어오자 허균의 형제들이 그를 접대했다. 당시 경리도감(經理都監)이던 허성은 중국의 장수들을 접대하는 책임자였다. 오명제는 허균의 집에 묵었다.

오명제는 허균이 외워주는 수백 편의 조선 시를 보태고, 특히 난설헌의 시 58수를 보태어 『조선시선』을 엮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서문과 함께 허균의 후서(後序)를 덧붙였다. 오명제의 서문에 의하면 "허균이(삼형제 가운데) 가장 영민해서(시를)한 번 보면 잊지 않아, 동방의 시를 수백 편이나 외워주었다"고 한다. (주석 9)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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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제는 돌아가 재상 이덕형 등이 모아준 시들을 합하여 『조선시선(朝鮮詩選)』을 엮었다.  

"이 책은 가유약(賈裕鑰)ㆍ한초명(韓初命)ㆍ왕세종(汪世鍾) 등의 동료 종군문인들로부터 교열을 받아 1600년에 7권 2책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오명제는 허균의 한글 시를 그대로 실었다. 오명제가 그때 엮은 『조선시선』의 원본은 1998년에 북경도서관에서 발견되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이 책에는 112명의 시 340수가 실려 있다. 권7 본문 끝에 '조선장원허균서'(朝鮮壯元許筠書)라는 일곱 글자가 덧붙어 있어서 안진경체(顔眞卿體)로 쓴 본문이 균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주석 10)

허균의 호방한 기질은 비록 칙사들을 접대하는 입장이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후 조선에서는 중국의 삼국지에도 등장하는 관우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했다. 관우의 혼령이 왜군을 물리쳐 주었다는 민간의 신앙이었다. 허균은 관우에 관한 송시(訟詩)를 지어 명나라 문인들에게 주었다. 몇 대목을 소개한다. 

        관우 송

 한 나라는 시들고 도적떼 날뛰니
 상제 이를 물리치려
 명공(明公)을 내리셨네
 유비 장비와 의형제 맺고
 한 손에 칼 들고 말 위에 올라타니
 그 기운 움직이어 환히 빛났네
 문추(文醜)의 목 베고 안량(顔良)을 무찌르니
 날랜 창끝 아무도 당할 이 없어
 군웅(群雄)들이 영웅으로 떠받들었네.
                 ㆍ
                 ㆍ
                 ㆍ
 재앙 기운 동방에 모여들어와
 왜놈의 침략이 한창 성하여
 우리의 병사 몰아 적을 무찌를 때에
 왕의 신이 앞장서서
 앞에선 천둥쳐 부셔대니
 뒤에는 뇌사(雷師)처럼 굳세어져
 수많은 적들을 물리쳐서
 저 왜국을 평정하여
 우리나라 다시 찾아 주셨기에
 이제 우리나라가 평안해졌으니
 그 높은 훈공을 감히 잊으리. (주석 11)


주석
8> 허경진, 앞의 책, 170쪽.
9> 앞의 책, 143쪽.
10> 이문규, 앞의 책, 314쪽.
11> 이문규, 앞의 책, 31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 허균, #허균평전, # 자유인_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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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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