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1차전. 2-2로 무승부를 거둔 양 팀 선수들이 인사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9일 오후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친선경기 1차전. 2-2로 무승부를 거둔 양 팀 선수들이 인사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성인 국가대표팀과 김학범 감독 올림픽 축구 대표팀(23세 이하)의 '스페셜매치' 첫 번째 대결은 장군멍군으로 끝났다. 양팀은 9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서 치열한 공방 끝에 2-2로 비기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A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이 공식 경기에서 맞붙은 것은 1996년 이후 무려 24년 만이었다.

결과는 무승부지만 사실상 '동생'격인 올림픽대표팀의 판정승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해외파들이 이번 스페셜매치에 합류하지 못한 가운데 전원 K리거들만으로 구성된 양 팀은 연령제한이 있는 올림픽팀보다 A팀이 선수층의 경험이나 깊이에서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벤투 감독은 23세 이하 선수 중 올림픽팀의 핵심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원두재, 이동경, 이동준 3인방까지 협의하에 A팀으로 데려왔다. 김학범호로서는 가뜩이나 열세인 전력에 차포를 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김학범호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전반 14분 이주용의 선제골로 벤투호가 먼저 앞서갔으나 김학범호가 후반들어 송민규의 동점골과 권경원의 자책골로 2-1로 역전에 성공했다. 다급해진 벤투호는 파상공세에 나선 끝에 경기 종료가 임박한 후반 44분 이정협의 극적인 만회골로 간신히 패배를 면할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의 점유율 축구가 김학범호의 전방압박과 빠른 공수전환에 혼쭐이 난 경기였다고 할 만하다. 양팀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형제'팀이라고 하지만 감독이 지향하는 축구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벤투 감독이 유럽스타일의 패스축구를 한국대표팀에 이식하려고 했다면, 김학범호는 압박과 활동량, 측면 위주의 플레이를 강조하는 한국식 축구에 기반을 두면서도 좀더 유연성을 가미한 스타일이라는 차이가 있다.

스페셜매치 1차전도 양팀의 극명한 스타일이 대조를 이룬 경기였다. 겉보기에는 벤투호가 내내 주도권을 움켜쥐고 우세를 점한 듯했지만 정작 실속은 김학범호가 더 많았다. 김학범호는 벤투호의 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초반부터 강한 압박과 역습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바로 벤투호 축구의 모든 것이라고 할수있는 빌드업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전반 초중반까지는 경험에서 앞서있는 A팀 선수들답게 올림픽팀의 압박에 당황하지않고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하지만 조직력을 통한 플레이라기보다는 선수들의 개인능력에 의존하는 쪽에 가까웠다.

팀플레이의 차이는 후반에 접어들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벤투호의 빌드업 패턴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한 김학범호는 패스의 시발점 역할을 했던 센터백 원두재나 수비형 미드필더 손준호가 볼을 잡을 때마다 빠르게 에워싸며 손쉽게 패스가 나갈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벤투호는 올림픽팀의 압박이 점점 강해지는데도 공격템포를 끌어올리거나 전술적으로 변화를 주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벤투호는 경기장을 폭넓게 활용하며 좌우 방향 전환으로 김학범호의 간격을 흐트러뜨리려고 했지만 빌드업의 속도가 느린데다 전방으로 나가는 침투패스의 질이 떨어지며 점유율만큼 위협적인 공격시도는 적었다. 바로 벤투호가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도 한 수 아래의 상대팀들을 만나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반복되던 패턴이었다. 벤투 감독은 선수교체를 통하여 공격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세밀한 부분 전술적으로는 여전히 돌파구를 만들지 못했다.

이날 경기에서 가장 돋보인 선수는 역시 올림픽팀의 신예 송민규였다. 연령대별 대표팀을 한번도 거치지않고 올림픽팀도 이번 스페셜 매치를 통하여 첫 발탁된 송민규는 이번 시즌 K리그1에서 24경기 10골 5도움의 엄청난 활약으로 김학범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공격수다. 왼쪽 측면 공격수로 나선 송민규는 소속팀 포항에서 하던 대로 과감한 드리블과 힘 있는 돌파로 비교적 볼소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가운데서도 위협적인 플레이를 구사했다.

전반 30분에는 강력한 헤더로 A팀 골키퍼 조현우를 긴장시키는 유효슈팅을 기록했고, 후반에는 손준호-권경원-원두재까지 수비수 3명을 드리블로 농락하는 개인기를 선보이며 침착한 마무리로 기어코 골망을 흔들었다. A대표에 끌려가던 흐름을 올림픽팀으로 가져오는 결정적인 활약이기도 했다. 송민규는 이날의 활약상으로 김학범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게 됐다.

하마터면 망신을 당할뻔한 벤투호를 살린 것은 김인성과 이정협이었다. 후반 44분 중원에서 올림픽팀의 패스를 끊어내고 역습 상황에서 김인성이 내준 패스를 문전 오른쪽으로 함께 쇄도한 이정협이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동점을 만들어냈다. 전형적인 벤투호 스타일의 빌드업이 아니라, 수비가 정돈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 실수를 이용하여 소수의 공격수들만으로 역습으로 만들어냈다는 골이었다는데 주목할만하다. 고전적인 빌드업 축구만을 고집하고 있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벤투 감독에게도 교훈이 되었어야할 부분이다.

A대표팀은 벤투 감독도 인정했듯이 전반에는 우위를 점했으나 후반들어 급격히 분위기가 침체됐다. 벤투 감독은 소속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고있는 원두재를 A팀에서는 센터백으로 가동했는데 원두재는 후반 자신의 빌미로 선제실점을 허용한 이후 플레이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다. 벤투호의 선수들은 대체로 소속팀에서와는 약간 다른 포지션과 전술적 역할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다. 경기결과보다는 선수 점검과 실험에 무게를 뒀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선수의 장점을 간결하게 극대화하기보다는 벤투 감독이 요구하는 축구에 맞춰야하는 용병술이 지닌 부작용도 보여줬다.

때로는 형이라고 해도 동생들에게 배울 것은 배워야한다. 전력과 경험 등 모든 면에서 A팀이 앞서있는 상황이었지만 투지와 조직력 등 정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올림픽팀이 훨씬 나았다. 더구나 사령탑만 놓고보면 오히려 김학범 감독이 벤투 감독보다 지도자 경력에 있어서 10년 이상 선배다. 김학범호의 기대 이상 선전은 곧 벤투호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보여줄수 있었던 성과였다. 승패라는 결과를 넘어서 이번 스페셜 매치를 넘어서 양팀 모두에게 건강한 자극이 되어야할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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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표팀 송민규 원두재 스페셜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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