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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네 식구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은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 굴러가지 않는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그래도 살맛이 나는 거라고'."

2012년 6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다음(Daum)에 웹툰 '동재네 식구들'을 연재한 김민재 작가의 말이다.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는 지난 9월 28일 오후 8시 부평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47회 인천마당을 열었다. 김민재 작가는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동재네 식구들'을 그린 배경과 취재과정, 고민과 보람 등, 얘기보따리를 풀었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꿈과 꿈

웹툰 ‘동재네 식구들’의 김민재 작가.
 웹툰 ‘동재네 식구들’의 김민재 작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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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 아버지가 출판사에서 근무해 갱지를 가져다 주셨는데 꽃을 그리고 말풍선을 그렸다. 초등학교 때 반 친구들한테 내가 그린 만화를 보여주고 아이들한테 인정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습만화로 데뷔할 때까지 꿈이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 대학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오직 삽화 그리는 일만 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만화가는 경험이 풍부해야 하는데 편협했다는 거다. 다양한 경험을 못했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지도 않았다. 편협한 사고의 틀에 갇혀 있었다. 2007년 '울트라 병장'으로 웹툰을 시작할 때도 사람을 만나거나 취재하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구상해 그렸다.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때, 생계유지, 자아실현. 나는 자아실현이었다. 이 사회에서 만화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만화를 그릴 때도 남달리 그리고 싶었다. '울트라 병장'을 그리면서도 '재미'에 초점을 맞춰 독특한 소재와 유머, 기상천외한 이야기들로 남성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러다가 1부를 마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겨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즈음 연거푸 꿈을 두 번 꿨다. 꿈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하나는, 타국에 살던 남매가 한국에 와서 떨어져서 고생하다가 만난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아름답고 소설 같은 얘기였다. 꿈에서 깨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동기 유발이 됐다. 다음날 또 꿈을 꿨는데 예수가 이주노동자를 안타깝게 보는 꿈이었다. 신의 계시 같았다.

시선 일치와 소통

만화의 가치는 '재미'라고 생각했던 나는 소외된 사람에 관심이 없었다. 다니는 교회에도 이주노동자가 있었지만 관심이 전혀 없었다. 꿈을 꾸고 기분이 안 좋았지만 외면했다. 그러나 체한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고민하다가 아내한테 말을 하니, 해보라고 권했다.

'동재네 식구들'에는 영세공장 사장이자 기러기 아빠인 동재와 공장 식구들인 이주노동자와 베트남에서 살다가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플롯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다. 이런 소재에 관심과 사전지식이 없어 막연했다. 취재밖에 답이 없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갔다.

처음에 갔던 곳이 부평세림병원 근처의 이주노동자 관련 NGO였다. 담당자와 얘기를 나누니 제도적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흥분해서 르포형식의 사회 고발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도 문제를 앞세워 만화를 그리면 독자대중이 공감할지 고민이었다. 또한 이방인을 혐오하거나 이주노동자를 우리의 일자리를 뺏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이런 상황에 제도적 문제로 접근한다면 갈등만 조장할 수 있다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완충작용을 할 인물이 필요했다. 사상이나 이념이 아닌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동재'였다. 딸과 부인이 호주로 유학을 간 동재는 명절에 갈 곳이 없어 이주노동자와 같이 보내며 그들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이 독자들도 그들과 소통하고 시선이 열리는 때였다.

균형 감각
   
 ‘동재네 식구들’에는 눈에 익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김민재 작가가 부평 곳곳을 다니며 배경 스케치를 했기 때문이다.
 ‘동재네 식구들’에는 눈에 익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김민재 작가가 부평 곳곳을 다니며 배경 스케치를 했기 때문이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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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에 오래 살았지만 아는 게 없었다.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해야 해 남동공단과 서구 가구공장단지를 갔는데 작품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인천가족공원 근처를 지났다. 공장이 밖으로 몇 개가 보여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다. 보는 순간 '동재네 식구들' 세트장인 줄 알았다. 1980년대로 시간이 멈춰있는 동네 같았다.

취재하러 공장으로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며 경계하더라. 이주노동자는 오후에야 볼 수 있었는데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주변에 성당이 있었는데 그곳 수녀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주노동자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거나 같이 밥도 먹고 놀러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괜찮은 사장을 만나면 만족해하거나 핵심 업무를 맡기도 한다.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취재 차 베트남에 갔다. 하노이를 갔는데 이국적인 풍경이 좋았다. 웹툰에 등장하는 베트남 남매의 집을 그리기 위해 어떤 가정집에 들어갈 것을 요청했더니 친절히 협조해줬다. 그때 마음이 확 열렸다. 웹툰에 등장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그릴 때 내 마음이 담겼다.

국제결혼 관련 업체도 취재했다. 예전에는 베트남 여성들이 속아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동남아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결혼 후 도망가는 일이 많아 남성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취재하면서 계속 균형 감각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내 웹툰에도 국제결혼 후 도망가는 베트남 여성의 얘기가 나와 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감과 위로

부평구 산곡동 재래시장에 있는 '봉다방'을 취재해 배경으로 그렸다. 십정동의 오래된 목욕탕도 찾아 웹툰 배경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얼마나 이 작품에 애정을 담았는지, 취재해 인물을 담아 이야기를 만든 후 다시 그곳을 방문하면 장소에서 친근함이 느껴진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말끔한 배경만 그리다가 사람의 손때가 묻은 장소를 보면 이야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고 배경이 주는 힘을 경험했던 작품이다.

취재를 마치고 연재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다음(Daum) 본사 담당자가 말렸다. 한마디로 누가 보냐는 거였다. 이 작품밖에 준비한 게 없다고 했지만 한 달간 연락을 주지 않았다. 소개 글 몇 줄과 입으로만 얘기해 편견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다섯 장 보냈더니 바로 연락이 와 하자고 하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울림이 있지만 좋은 평점이나 댓글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 전에는 작품이 주목받길 바랐다. 그러나 '동재네 식구들'을 하면서 독자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에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할 때 또 다른 행복을 느꼈다. 이 작품은 우물에 갇혀 편협하게 살아온 나를 우물 밖으로 꺼내줬다.

앞으로도 선한 양심을 지키며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감동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준비해서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김민재 만화가, #동재네 식구들, #인천사람과문화, #인천마당,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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