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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간주안에서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사이코시네마’가 열린다. 그 달의 영화를 본 후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영화공간주안에서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사이코시네마’가 열린다. 그 달의 영화를 본 후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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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환상의 빛>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리고 최신작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일본 영화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필모그래피(=작품 계열 목록) 중 일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열거한 영화들 중 독자들도 한 편쯤은 봤을 만큼 친숙한 감독이다. 이 감독은 끊임없이 '가족'을 영화 소재로 다뤘다.

인천 남구 주안에 있는 '영화공간주안(이하 영공주)'은 2007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설립한 예술영화관이다. 이곳에서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사이코시네마'가 열린다.

영화 프로그래머인 김정욱 영공주 관장이 정신과 전문의 홍상의 홍정신과 원장과 함께 영화 미학(Cinema Aesthetics)과 정신분석(Psychoanalysis)으로 영화의 깊이와 의미를 나누는 시간이다. '영화 미학'과 '정신분석'을 결합해 '사이코시네마(Psychocinema)'라고 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4시 영공주 2관에서는 '39회 사이코시네마 인천'이 열렸다. 이번 달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였다. 7월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던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로 영공주 2관은 만석이었다. 러닝타임 117분의 영화 상영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 후 '관객과 대화'가 이어졌다.

'누군가를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하는 건 쉽지 않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영화프로그래머이자 영화공간주안의 김정욱 관장.
 영화프로그래머이자 영화공간주안의 김정욱 관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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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혼·사별·재혼 등,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족 붕괴' 현상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란 영화에서 정점을 찍었죠. '8회 사이코시네마 인천'에서도 그 영화를 다뤘습니다.

친자인 것이 확인되면 아무리 훌륭하게 키웠어도 100% 데려가는 경향인데,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결론을 제시했어요. 다음 영화인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아버지의 외도로 버려진 세 자매가 이복동생과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미리 정했어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강조해온 감독입니다."

김정욱 관장의 설명이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15년 전 문학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유명 작가를 꿈꾸며 흥신소에서 일하는 료타가 헤어진 아내 쿄코, 아들 싱고와 함께 태풍을 피해 자신의 어머니인 요시코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모든 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대로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영화는 69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김 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감독이 '이 영화가 나의 마지막 가족영화다'라는 말을 했어요. 영화 제목에 대한 얘기를 해 볼게요. 외국 영화가 들어올 때 원제가 많이 바뀌는데, 일본 영화는 일본어와 우리말의 어순이 유사해 직역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유럽 영화를 일본에서 바꾼 제목을 우리가 사용하기도 했고요.

예를 들어 '베를린 천사의 시'는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가 원제였는데 일본에서 바꾼 제목을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사용했죠. 이 영화도 '바다보다 더 깊이'가 원제였는데 '태풍이 지나가고'로 바꿨어요.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볼까요? 어떤 제목이 더 나은가요?

반반이네요. 영화에서 '바다보다 더 깊이'라는 대사가 두 번 나옵니다. 배급사에 제목을 바꾼 이유를 물어봤더니, 최근에 개봉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장기 상영하는 극장이 있어서 '바다'란 제목이 연거푸 있으면 식상해 할까봐 제목을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원제 '바다보다도 더 깊이'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등려군의 노래 '이별의 예감'에서 따온 제목이다. 영화는 요시코의 입을 빌려 "누군가를 바다보다도 더 깊이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김 관장은 제목이 바뀐 가십(gossip)부터 작품 분석, 감독의 영화세계까지 영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관객에게 전달했다.

모차르트 음악 같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정신과 전문의 홍상의 홍 정신과 원장
 정신과 전문의 홍상의 홍 정신과 원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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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을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보러 오신 여러분은 혜안이 있으십니다.(웃음) 이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 '환상의 빛(1995)'인데, 데뷔작에 이 감독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원형이 들어있습니다. 그 이후의 영화들은 변주한 영화들이라고 볼 수 있죠. 이 영화도 이혼한 가정을 배경으로 가족들 심리가 잘 드러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독이 모차르트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차르트의 악보에는 음표 하나도 버릴 게 없다고 해요. 생략하거나 바뀌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거죠. 이 감독은 모차르트 같은 연출을 했어요. 음악에 비유하면 소나타 형식을 차용한 장면이 나옵니다. 한 번 나온 장면이 다시 나오면 효과가 배가 되잖아요. 이 영화에서는 놀이터 장면이죠."

김 관장의 영화에 대한 기본해설이 끝난 후 홍상의 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홍 원장은 영화를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해부해 관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정신을 분석할 때 전이 상황을 만들고 전이신경증을 해소하는 게 정신분석의 중요한 과정입니다.(편집자 주: 전이신경증은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 과정에서 피치료자가 치료자를 부모로 취급해 치료자 앞에서 자신의 아동기 경험을 재생하는 신경증적 행동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현재의 현실에 비춰 억압된 갈등을 분석할 수 있다)

무의식에 잠재돼 있어 해결되지 않은 경험이 현재의 나를 지배하다가, 치료과정에서 정신분석으로 나를 이해하면서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6개월 전에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해결되지 않던 남자 주인공이 전이신경증을 해소하는 게 놀이터 장면이지 않나, 싶습니다."

홍 원장이 정신분석적인 영화 해석을 마치고 나서, 관객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트라우마가 영화에 반영된 게 아니냐?'는 물음에, 김 관장은 "아버지가 가족을 버린 후 어머니와 살았던 감독의 사생활이 영화에 녹아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감독이 아홉 살부터 20여년간 살았던 아파트에서 촬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따뜻한 예술영화를 원하는 관객을 위하여

‘태풍이 지나가고’의 스틸컷. 홍상의 원장은 ‘남자 주인공의 해결되지 않던 무의식의 문제가 놀이터에서 아들과 놀면서 해소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스틸컷. 홍상의 원장은 ‘남자 주인공의 해결되지 않던 무의식의 문제가 놀이터에서 아들과 놀면서 해소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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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에 시작한 '사이코시네마 인천'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진행했다. 매회 만석을 기록하다 올해 1월부터 상영시간을 2시로 앞당기고 나서 관객 수가 줄어, 7월부터 다시 4시로 조정했다. 김 관장은 관객 수가 상영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관객과 대화가 끝난 후 김 관장과 홍 원장하고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39회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다는 게 대단하다고 하자, '관객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라며 간단명료하게 대꾸했지만, 둘의 시너지 효과도 큰 역할을 한 듯 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즈음에 심리를 다루는 게 경향이었어요. 당시 김 관장과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심리를 다룬 영화로 대담한 적이 있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걸 계기로 '사이코시네마 인천'을 시작했습니다."

김 관장이 진행한 '힐링 무비 카페'라는 프로그램이었다. 6주간 영화를 보며 관객과 소통하는 강의였는데, 5주차 강의를 홍 원장과 함께 했다.

홍 원장은 "전문성을 서로 인정해주는 게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심리를 분석하는 게 경향이라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정신과 의사가 영화를 보고 해설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프로그래머인 김 관장이 영화의 깊이를 더해주시니까 훨씬 소통의 자리가 풍성해지는 거 같습니다"라고 한 뒤, 영화 선정은 전적으로 김 관장에게 맡기고 본인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김 관장이 영화 선정 기준을 들려줬다.

"일단은 영공주가 예술영화 전용관이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선정한 예술영화를 일정 기간 상영해야 합니다. 예술영화 중 따뜻한 가족영화를 주로 선정합니다. 영공주가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는데 관객들이 가족적인 영화나 종교·음악·미술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더라고요.

예술영화라도 미학적 필요성을 넘어선 잔인한 영화는 피합니다. 초창기에는 파격적인 예술영화가 많았고, 우리나라 독립영화도 그걸 쫒다보니 기본적인 도덕성을 뒤집거나 잔인한 게 인정받는 경향이 있었어요. 최근에는 관객들이 따뜻한 영화를 선호하는데, 일본 감독의 작품이 많습니다. 영공주는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을 다룬 영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음달 '40회 사이코시네마 인천'에서 만날 영화는 1990년에 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다. 8월 18일 재개봉 일정에 맞춰 8월의 영화로 선정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사이코시네마 인천, #영화공간주안, #고레에다 히로카즈, #태풍이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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