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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개할지 상의했다. 여행 작가로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니, 여행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1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남미 나라 여덟 곳을 여행하고 그해 6월 15일 인천으로 돌아온 김다영(24) 여행가를 지난 4일 남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의 여행이야기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그녀는 지난달 말, 자신의 여행이야기를 담은 책 <남미읽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여행과 책, 인생, 꿈 등,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시간이 모자랐다.

독립 출판으로 <남미읽기> 발간

김다영 여행가
 김다영 여행가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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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요즘 바쁘다. 책 <남미읽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느라 그렇다.

"원래는 더 일찍 나와야했는데 인쇄 단계에서 문제가 생겨 12월 28일에 나왔어요. 독립 출판으로 하다 보니 좀 지체됐어요."

독립 출판이란 주제나 형식 등에 제약 없이 제작부터 유통, 판매까지 모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출판시스템이다. 상업적인 출판사의 기획에 반발해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인쇄물로 만들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지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수요층을 갖고 있다. 김씨는 친구·선배들과 협업으로 책을 만들었다. 300권을 인쇄했는데 200권 정도 구매가 예약됐다.

"여행 다녀온 얘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남미 어때?' 하고 묻는 사람들한테 '진짜 좋아. 꼭 가봐'라는 말밖에 못했어요. 그런데 글은 완전하진 않지만 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썼어요."

무겁지 않게, 수다 떨듯 얘기하고 싶었단다. 피곤한 출근길과 지겨운 등굣길,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자신의 책을 펼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단다.

여행한 나라 여덟 곳의 이야기를 나라별로 조금씩 묶었다. 첫 번째 책인 '남미읽기'는 남미 여행의 첫 나라들인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이야기다. 다음에는 페루·볼리비아·아르헨티나·칠레·파라과이·브라질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이야기를 써서 엮을 예정이다.

살아있는 땅 '남아메리카'
   
 김다영 여행가가 낸 책.
 김다영 여행가가 낸 책.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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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칠레예요. 남미에서 위아래로 긴 나라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아타카마사막과 화산도 있어요. 제가 지리학을 전공하다보니 지형에 관심이 많아요. 그곳에서 땅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어요. 칠레 해안가에 '발파라이소'라는 해안마을이 있어요. 남미 여행에서 만난, 그곳에 사는 친구네서 일주일 지냈어요. 갑자기 큰 굉음과 함께 땅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무서웠던 적이 있었는데, 친구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더라고요."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해있는 칠레는 화산과 지진 발생빈도가 높은 나라다. 김씨가 갔을 때도 큰 화산 폭발이 발생해 여행자들의 발이 며칠간 묶이기도 했다.

김씨는 기억나는 도시로는 에콰도르의 '오타발로'를 꼽았다. <남미읽기>에도 이 도시를 소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작가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남미에는 인디헤나(인디언 원주민)들이 숨어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오타발로에서는 인디헤나들이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3일간 머물렀는데, 의자가 있는데도 광장 잔디밭에서 누워있거나 아이들이 자유롭게 도시를 뛰어다녀요. 이방인을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삶에 열중하는 모습이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아도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어요."

독자들에게 가장 좋았던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주저하지 않고 아르헨티나의 북부 도시 '살타'를 꼽았다. 산에 철광석 등이 노출돼 있어 무지개 빛을 띠는데, 특이하고 장관이란다. 그 동네가 마음에 들어 칠레에 갔다가 다시 와서 일주일 넘게 머물기도 했단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에콰도르의 오타발로에서 만난 인디헤나.
 에콰도르의 오타발로에서 만난 인디헤나.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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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했다. '언젠가는 여행을 간다'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적금을 부었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남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오히려 더 궁금했어요. 볼리비아의 우유니소금사막이나 페루의 마추픽추가 그냥 좋았어요. 언젠가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3학년 가을에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3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수업을 같이 듣던 언니와 함께 남미 여행을 계획했다. 그 언니에게 갑자기 여행을 못 갈 상황이 생겼지만, 김씨는 마음먹은 김에 혼자라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오히려 혼자 간 게 좋았어요. 늘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갔는데 이번에 혼자 가니까 내가 온전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걸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해요."

2학기 중간고사를 끝내고 곧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표를 끊고 나니 여행이 '꿈'이 아닌'현실'이 됐다. 그녀는 자유여행의 코스를 어떻게 정했을까?

"예전에는 시간표를 완벽하게 짜서 쫓기듯 여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 준비도 안 했어요. 계획하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요. 가치관도 바뀌었어요. 여행 다녀와서 조금씩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도 지금 행복하고 즐거운 것을 선택하라고 해요."

사람이 살고 있었네

볼리비아의 우유니소금사막에서 기념촬영. 동생이 사준 개량한복을 입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소금사막에서 기념촬영. 동생이 사준 개량한복을 입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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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여행하려는 사람이나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안 무서워?', '안 무서웠어?'란다. 남미는 치안이 취약하고 악명 높은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도시를 갈 때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운이 좋았던 건지, 큰일을 당하진 않았어요. 사실은 가장 무서웠던 게 남미 여행을 끝내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 안이었어요. 대륙을 여행하다 태평양 위 하늘에 12시간 떠 있는 게 무서웠어요. 더 여행하고 싶은, 아쉬운 마음도 컸고요. 원래는 잠을 잘 자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한숨도 못 잤죠."

김씨에게 남미는 무서운 곳이 아니라 따뜻한 곳이었다.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많았다.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여행 얘기를 들으면 오히려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한 달간 아르헨티나의 한 호스텔에서 매니저로 취직해 빨래와 청소를 하면서 머물기도 했다.

처음 간 날, 투숙객들이 처음 보는 김씨를 환영하며 초콜릿을 선물로 줬는데, 감동이었단다. 또 다른 재미는 남미 여행 중 우리나라 아이돌 노래를 들었다는 것이다.

"케이 팝(K-POP)이 유명한 듯하면서 유명하지 않고, 안 유명한 듯하면서 유명한 것 같아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많이 알고 있고, 오타발로에선 사람들이 엑소(EXO) 노래를 부르는 걸 봤어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김씨는 엄마와 아빠, 여동생과 함께 산다. 그녀의 가족여행은 특이하다.

"새벽 3시에 일단 집에서 출발해 고속도로에서 갈 곳을 정해요. 1박 2일 여행을 목포에서 출발해 서해안을 들른 적이 있고, 부산에서 출발해 2박 3일 동안 남해안을 돌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들 덕분에 고등학교 때 지리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전북 부안에 있는 변산반도와 채석강을 좋아하는데, 지리 수업시간에 채석강의 특이한 지형이 형성된 원인을 알게 되니까 재밌더라고요."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지리 덕후'라는 말까지 들었던 김씨는 대학에서 과제를 하러 답사를 다녔던 서해안의 신두리 바닷가나 교수와 함께 간 15박 16일의 몽골 학술 답사 등도 기억에 남는 여행이란다. 지난주에는 동해안으로 가족여행을 갔는데 강원도 학술 답사하면서 알게 된 걸 가족들한테 설명해주기도 했다.

"해설해 주는 걸 엄마는 좋아하는데, 동생은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그래도 남미 여행 갈 때 동생이 개량한복을 선물로 주기도 했어요. 우유니소금사막에서 입으면 예쁘겠다고 생각하다가 비싸서 포기했는데, 동생이 주더라고요. 제가 좋아한 도시 오타발로에서도 입고 우유니사막과 마추픽추에서도 입었어요."

시민단체와 도서관, 진보정당 활동에 바쁜 부모를 어릴 때는 미워한 적도 있다는 김씨는 오히려 그래서 독립적으로 컸고, 지금은 항상 자신을 믿어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마지막으로 다음 여행 계획을 물으니, 또 남미란다.

"남미를 다시 가고 싶고 못 가본 중미 지역도 가고 싶어요. 아직도 남미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 순수하고 지금을 즐기는 모습, 각박하지 않고 느려도 편하게 지내는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저한테 남미는 그리움이에요. 요즘도 문득 남미 사진 보면서 거기서 만난 사람이 그리워 청승맞게 운다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소박한 순간이 그리워요. 호스텔에서 일을 끝내고 햇살 받으면서 창가에 앉았던 시간들이요."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김다영, #남미읽기, #인디헤나, #오타발로, #우유니소금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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