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스틸컷. 주인공 맥스(톰 하디)는 독재자 임모탄 조의 추격부대에 쫓기게 된다.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스틸컷. 주인공 맥스(톰 하디)는 독재자 임모탄 조의 추격부대에 쫓기게 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시대는 22세기,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핵전쟁을 벌이다가 절멸의 위기에 처했다. 땅은 황폐해졌고, 온통 메마른 흙으로 세상이 뒤바뀌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남은 도시 '시타델'은 절대군주 임모탄이 다스린다. 지도자인 그는 신격화된 인물로서 생존자 그룹에서 군림한다. 그가 차량과 무기뿐만 아니라 물과 식량 등 생존에 필요한 온갖 자원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속의 초반 설정이다. 스크린이 막을 올리는 시점에서 이미 세계는 처참하게 무너진 모습이고, 사람들에게 생존은 유일한 목표가 된다. 힘이 없는 개인은 살기 위해서 시타델에서 노예 생활을 하거나, 훈련받은 병사로서 살인병기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는 주인공 맥스(톰 하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그는 굴종을 원하지 않았기에 탈출을 시도하지만, 혼자서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길 위에서 차를 타고 가던 중 시타델의 전사인 '워보이'들에게 납치된 맥스는, 결박된 상태로 목 뒷덜미에 낙인이 찍힌다. 또한 맥스의 혈액형이 O형인 것이 밝혀지자 무리 내에서 수혈용 '혈액 주머니'와 같은 도구로 이용된다. 누구에게나 수혈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혈액을 착취당하는 것이다.

한편 '임모탄 조'의 제국에서 '임페라토르(전투사령관)'의 지위를 담당하는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인근의 위성도시에서 물과 탄약을 수송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전투트럭과 호위 부대를 대동하고 시타델 바깥으로 떠난 퓨리오사는 사격과 전투에 능한 인물이고, 수송 행렬의 중심에서 트럭의 운전대를 잡는다. 동시에 전투를 지휘하고 무사히 물자를 싣고 돌아오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퓨리오사는 핸들을 꺾어 방향을 바꾼다. 임모탄이 내린 임무 완수가 아니라, 그가 자손을 잇기 위해 억류한 여성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임모탄은 워보이 부대를 이끌고 퓨리오사를 뒤쫓는다. 부대에 합류한 워보이 눅스(니콜라스 홀트)는 수혈 중이라 혈액주머니로 맥스를 차량에 묶는다. 대탈주의 끝에서 과연 퓨리오사와 일행, 혹은 맥스가 임모탄의 추격부대를 따돌리고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독재 체제를 굳힌 도시 시타델, 그리고 반란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중 한 장면. 주인공 맥스(톰 하디, 왼쪽)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오른쪽)는 독재자 임모탄 조 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중 한 장면. 주인공 맥스(톰 하디, 왼쪽)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오른쪽)는 독재자 임모탄 조 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 김준수


최후의 도시인 시타델은 인류의 긴 역사가 보여준 억압적인 체계의 압축판이다. 임모탄을 선두로 그의 형제, 아들이 각각 지배력을 나눠 갖고 모든 자원과 권위를 차지하면서 시민들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독재 체제를 굳힌 시타델에서, 수백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계급 제도가 고스란히 재현된다. 핵전쟁으로 인한 파멸은 현대 사회의 민주적 제도를 모조리 붕괴시켰고, 지배와 피지배로 사람들 사이에 계층이 선명하게 갈린다.

여성은 젖소처럼 흡착기를 가슴에 부착하고 모유를 공급하며, 특출한 미녀는 정조대를 착용한 채로 '임모탄의 자식'을 낳는 번식도구로 전락한다. 남성은 군인으로 양성되어 인간사냥꾼이 되거나, 거대한 톱니바퀴마다 자리를 잡고 도시의 각 장치들을 작동하게 돕는 노예가 된다. 의술이 있으면 전사를 치료하고, 정비공은 차량을 정비하고, 군악대가 되어 전투부대의 곁에서 악기를 연주를 하기도 한다. 아무런 기술이나 지식도 없는 경우에는 빈민이 되어 도시의 최하층에 자리를 잡는다. 어떤 경우에 속하건 착취를 피할 길은 없다.

신인류로 불리는 전투병사 '워보이'들은 그나마 많은 것을 지급받으며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들도 총알받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허황된 꿈을 꾸는 존재들이다. 전투에서 사망하면 "발할라(영화에서는 사후 세계, '천국'으로 번역된다)로 간다"는 믿음은 워보이로 하여금 인간사냥의 선봉에 두려움 없이 나서도록 만든다. 결국 전투능력이 있는 병사들이 누구도 임모탄 조에게 대항하지 않는 이유는, 광신에 가까운 종교적 차원의 '세뇌' 때문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퓨리오사와 맥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상황은 급격히 변화한다. '어머니들의 딸'을 자처하는 퓨리오사는 임모탄이 가둬두었던 여인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땅, 녹색지대'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녀들이 갇혀있던 방에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글귀를 남긴 채로. 퓨리오사의 배반은 곧 시타델의 집권층, 임모탄과 남성 중심의 사회에 반기를 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소수의 남성만을 위한 시스템, 가부장제로 비유되는 폭정에 맞선 반란인 것이다.

맥스의 탈출도 기존의 권위를 뒤엎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노예의 신분조차 아니라, '혈액 공급원'으로 이용당하는 그는 기회를 틈타서 워보이를 처치하고 도망친다. 딸과 아내를 잃은 기억이 늘 그를 괴롭히면서, '생존'의 본능이 강한 동기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퓨리오사나 맥스를 움직이게 하는 공통분모는 삶의 위험요소가 사라진 곳, '인간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을 찾으려는 욕구였다.

기존의 인식과 다른 인물 묘사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중 한 장면.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아이를 임신한 여인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중 한 장면.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아이를 임신한 여인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맥스와 퓨리오사 일행을 추격하는 임모탄의 전투차량 부대는 마치 '시스템의 거대한 흐름'을 연상시킨다. 차마 따돌릴 수도, 저항할 수도 없을 것처럼 따라붙으면서 힘의 논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군악대는 하드코어 로큰롤을 미친 듯이 연주하고, 추격대는 고속으로 질주하면서 비포장 도로 위의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탈주를 감행한 퓨리오사와 맥스는 영웅적 인물일 것만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맥스는 딸과 아내를 지켜내지 못한 과거의 기억 때문에 극심한 환각에 시달린다. 누군가를 구하려고 나서는 쪽보다는 도망치는 일에 익숙한 인물로 그려진다.

긴 머리가 아닌 삭발한 상태로 전투에 임하는 퓨리오사에게서 전형적인 '여성성'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는 그저 외팔의 핸디캡을 안고도 기막힌 실력으로 싸우는 고독한 전사에 가깝다. 극 중 퓨리오사는 '구원'을 찾아서 아직 지구 어디엔가 남아있을 고향, '녹색지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필사적으로 핸들을 움켜쥔다.

퓨리오사 일행에 합류하는 인물들 다수는 존재감이 묵직하지 않은 편이다. 여기서 인물 하나하나가 각각 엄청난 능력과 힘을 선보이는 <어벤져스>와 차이점이 느껴진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등장인물은 영웅이라고 부르기에는 대부분 나약하거나 뚜렷한 결점이 드러나는 사람들이다. 또한 시타델에서 (자의와 타의 불문하고) 시스템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존재들도 있다.

영화의 매력도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눈에 띄지 않던 작은 부품 같던 사람들이 모여서 저마다의 역할을 하면서 마침내 전투트럭이 굴러간다. 누군가는 운전대를 잡고, 누군가는 엔진을 수리하고, 누군가는 총을 쥐고서 적을 겨냥한다. 떨어져 나온 나사처럼 힘없는 개인들이 힘을 모으면서 마침내 8기통 엔진이 쉼 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반복하는 대사, "우리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퓨리오사 일행이 권력자의 소유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황무지를 달리는 쪽을 택한 계기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120분간 쉴 새 없이 달리는 로드액션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스틸컷. 주인공 맥스(톰 하디, 왼쪽)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오른쪽)는 우여곡절 끝에 대탈주를 위해 손을 잡는다.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스틸컷. 주인공 맥스(톰 하디, 왼쪽)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오른쪽)는 우여곡절 끝에 대탈주를 위해 손을 잡는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액션과 음악으로 관객의 시·청각적 쾌감을 모두 충족시킨다. 긴장감은 중간에 늘어지지 않고 상영시간 내내 팽팽하게 유지된다. 단순한 줄거리에도 관객이 다음 상황을 예측하기 힘든 것은, 탄탄한 연출과 개성 있는 편집이 몫을 제대로 한 것이 배경으로 보인다.

120분간 쉴 새 없이 달리는 로드액션은 2015년에 쏟아진 많은 액션영화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자면 땀과 모래, 피와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를듯이 풍겨올 것만 같다. 사막과 진흙탕, 황무지 모래언덕 위에서 펼쳐지는 숨막히는 전투와 추격전은 관객을 몰입하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화가 묵직하게 와 닿는 이유 중 하나는 액션과 더불어 잔잔하게 무게감을 드러내는 세계관이다. 핵전쟁 이후의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다툼을 벌이는 인류의 모습을 보자면 그야말로 망연자실할 정도다. "누가 세계를 망쳤지?"라고 반복하여 외치던 등장인물의 물음은 영화가 끝나고도 귓가를 맴돈다. 오늘날 발전만을 외치는 세상의 물결 속에서, 인류는 좀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 존재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서 폭주하던 차량들처럼 말이다.

막을 내린 스크린에는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문구가 마치 독백처럼 새겨진다. 감독이 관객을 향해 던진 이 질문은, 어쩌면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가 노력해서 답을 찾아야 할 사안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페미니즘 영화'로 불리는 <매드맥스>가 시사하는 또 하나의 화두인 것이다. 액션의 높은 완성도 뿐 아니라 반전영화로도 손색이 없고, 환경과 성평등 문제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매드맥스>의 흥행돌풍이 제작이 예정된 차기 시리즈에서도 계속 이어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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