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3일 안희정 충남지사(왼쪽 세번째)가 참석한 가운데 충남도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목적으로 한 도민인권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13일 안희정 충남지사(왼쪽 세번째)가 참석한 가운데 충남도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목적으로 한 도민인권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 충남도

관련사진보기


"국가가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집단 살해한 것으로 명백한 범죄행위다.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처형한 행위는 '정치적 살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충남과 대전 곳곳에서 벌어진 6·25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살해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 조사보고서 중 일부다. 보고서 작성기관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다. 작성 시기는 지난 2010년이다.

이 기관은 보고서 말미에 힘주어 이렇게 권고했다.

"국가는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희생자 위령제 봉행, 위령비 건립 등 위령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로부터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명백한 국가범죄행위'에 대한 권고를 받아들였을까? 2000년 중반, 충남지역에만 8개시군(공주,태안,서산,홍성,부여,아산,부여,예산)에 유족회가 결성됐다. 하지만 4년여가 흐르는 동안 유족회는 오히려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유족회... 이유는?

지난 2009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 집단 암매장지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지난 2009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 집단 암매장지에서 드러난 희생자 유해.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정부와 자치단체의 무관심, 지역주민들의 외면에 지쳐 활동을 접었습니다."(부여유족회원)
"과거사정리위원회 권고가 있은 뒤로 오히려 추모제 지원비(위령제 봉행)마저 뚝 끊겼습니다" (공주유족회 회원)
"억울하게 죽은 부모형제의 위령제를 유가족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치르고 있습니다" (태안유족회원)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공주유족회는 올해로 9번째 위령제를 지냈다. 하지만 안희정 충남지사는 단 한 번도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서산 위령제에도, 태안위령제에도, 충남지역민이 가장 많이 희생된 대전산내위령제에도, 안 지사는 모습을 드러낸 적 없다. 매년 대신 읽을 사람도 없는 형식적인 '추도사'만이 위령제자료집을 차지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지원을 제안한 적도 없다. 도지사가 관심이 없으니 시장 군수들도 마찬가지다.

유감스럽게도 안 지사의 추도사는 몇 년째 몇 글자만 바꾼 판박이다. '소명의식을 갖고 과거의 진실을 밝혀 더 나은 도정을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은 해마다 추도사에서 뿐이다. 안 지사는 수년 째 시군 유가족모임의 간담회 요청마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 7월 유가족들의 위령제지원조례제정 요청마저 외면하고 있다.

안 지사는 지난 2011년 <중도일보>에 현충일 추념기고를 보냈다. 그는 이 글에서 "현충일과 6·25 역시 모든 국민이 기억하고 추념해야 할 매우 중요한 기념일이므로, 도 차원에서도 예우를 다해 챙겨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가치는 보수와 진보의 낡은 잣대가 아닌 '강한 자 바르게, 약한 자 힘주는' 참다운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 지사의 글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누명과 한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약한 자'인 민간인집단희생자와 유가족들은 들어 있지 않다. 충남도는 지난 12일 충남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여기에 적시된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에 집단 살해된 민간인 희생자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유가족들이 들어있을 리 없다. 

민선 6기 대전시 "예산 없다"

권선택 대전시장
 권선택 대전시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대전형무소 산내학살사건
 대전형무소 산내학살사건
ⓒ 오마이뉴스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대전시장은 어떠할까? 유가족들은 15번 째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합동위령제를 연 지난 6월까지 위령제 자리에서 대전시장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국가 범죄'로 결론짓고(2010년), 법원이 '국가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2012년)을 내린 후에도 마찬가지다. 대전시(당시 염홍철 대전시장)가 산내위령제에 지원하는 예산은 매년 280만 원이 전부다. 나머지 1300여만 원의 비용을 제주도에서, 전남에서, 경북에서, 서울에서, 충남에서 찾아온 유가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태 마련하고 있다.

최고 7000여명에 이르는 가장 많은 희생자, 가장 많은 유가족들이 있지만 자치단체 지원금은 전국 최저 수준이다. 경남지역의 경우 민간인희생사건이 있은 창원시와 창녕군, 거제시, 진주시, 산청군에서 위령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권선택 대전시장이 이끄는 민선 6기 대전시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권 시장은 15일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를 통해 "인권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전시 관계자는 최근 내년부터 위령제 예산을 증액해 달라는 유족회 요청에 일언지하에 "예산이 없다"고 거절했다. 연내 위령제지원조례 제정요청에는 '(조례 제정 요청은)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는 지금 이 시간 농사를 짓느라 파헤친 땅 곳곳에서 희생자들로 보이는 유해가 나뒹굴고 있다. 대전시와 대전동구청은 더 이상의 현장훼손을 막기 위한 10여 년 가까운 자치단체 명의의 안내판 설치 요청에도 답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관련 예산을 지원하자 이를 반납하기 까지 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는 대전시는 물론 충남도에 유해훼손 방지를 위한 '자치단체 공동 안내판 설치'를 제안하고 있다.


태그:#민간인희생사건, #위령제, #유해훼손, #안희정, #권선택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