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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날,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즉석에서 투표용지가 인쇄되어 나오는 광경이 다소 흥미롭게 느껴졌고, 선거 당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편리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발표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의 사전선거 투표결과를 보았다.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언급했듯이, 제도 시행 이후 최초로 10%를 넘는 투표율이 나타냈다는 점에 우선 눈길이 간다.

전국 선거인 4129만 6228명 가운데 474만 4241명이 참가하여 11.49%로 나타난 투표율.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중앙선관위 발표 내용을 연령, 지역별로 다시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중앙선관위 발표 엑셀파일 내용 재편집
 중앙선관위 발표 엑셀파일 내용 재편집
ⓒ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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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소 의외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우선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국민의 분노가 표출되면서 이번 지방선거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이 될 것이라는 빗나가고 있다. 전체 투표율이 다소 높아지긴 했으나 젊은 층의 투표율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았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국민 담화 이후, 각종 여론조사와 더불어 50~70세대의 여당에 대한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심판'은 실종되고, 2012년 대선의 투표 양상이 또 다시 재현되는 상황이다.

20대 이하와 30대의 사전투표율 합은 25.38%. 50대와 60대, 70대 이상까지 포함한 장·노년층은 33.75%이다. 그나마 20대 이하 중에는 군인·경찰 32만 명이 사전투표를 위해 선거공보를 신청, 군 복무자들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 선관위의 분석이다. 따라서 실제 20대 투표율은 약 10~11% 사이라는 분석이 타당하다.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고 있을 '앵그리 맘'들의 투표율이 기대보다 낮다는 점 역시 의외이다. 전체 투표율에서 남성은 13.83%였으나 여성은 9.20%으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기본적으로 여당에는 유리하고 야당에는 불리한 구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언론을 비롯한 정당관계자나 선거전문가들 대부분, 투표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야당에 유리한 것으로 해석했다. 왜냐하면, 야당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정치에 소극적인 젊은 층의 선거참여가 투표율 상승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은 이런 전제나 믿음을 붕괴시켰다.

당시 투표율 상승의 주역은 2, 30대 젊은 유권자들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50대 연령층 이었다. 6, 70대와 더불어 50대 유권자들은 대거 투표에 참여하면서 기호 1번을 찍었고,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정부 탄생의 핵심기반은 50~70세대 장·노령층 연합임을 증명한 것이다. 55년생에서 63년생까지의 '베이비붐 세대'가 50대에 편입되면서 2012년 대선은 50대 유권자가 급증했다. 16대 대선에서는 50대가 412만 명이었는데, 18대에는 778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50대 연령층이 하나 더 생겨났다고 해도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당시 연령별 선거결과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대 대선 연령대별 유권자 및 개표결과.
 18대 대선 연령대별 유권자 및 개표결과.
ⓒ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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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에서 가장 높았던 50대의 투표율.
 18대 대선에서 가장 높았던 50대의 투표율.
ⓒ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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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당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진영은 이런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관성적인 과거의 선거 전략을 그대로 답습했다. 민주당 선거 전략의 핵심은 '여야 1:1 구도를 위한 후보단일화 및 20~30대 유권자 투표참여 독려'가 전부였다. 결국, 잘못 수립된 전략은 개혁진보 진영의 뼈아픈 패배로 귀결되었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나이에 따른 '세대균열 현상'이 최초로 나타났던 것은, 2002년 16대 대선이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젊은 유권자들의 대거 이탈로 인해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10년 만인 2012년 대선에서 또 다시 이 '세대균열 현상'이 재현된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세대갈등' 혹은 '세대대결', 심지어는 '세대전쟁'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연령대별 유권자 구성비율은 2012년과 비교할 때, 야당에 더욱 불리한 상황이다. 50대 유권자는 778만 명에서 814만 명으로, 60대 이상은 842만 명에서 893만 명으로 각각 늘어난 반면, 20대 이하는 733만 명에서 731만 명, 30대는 815만 명에서 792만 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40대가 881만 명에서 896만 명으로 늘어났으나, 투표 성향상 여당과 야당 중 어느 한 쪽으로 쏠림현상이 벌어질 지는 알 수 없다.

중앙선관위 6·4 지방선거 사전투표결과.
 중앙선관위 6·4 지방선거 사전투표결과.
ⓒ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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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상황의 배경에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변화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경쟁적 자본주의가 최고의 피임약"이라는 말로 유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와텐버그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이런 투표현상을 가리켜 "나이 많은 사람들의, 나이 많은 사람들에 의한, 나이 많은 사람을 위한 정부"(a government of older people, by older people, and for older people) 라고 지칭한 바 있다.

노령층 주도로 탄생한 정부가 미래세대의 앞날을 점점 더 힘들게 하고, 또한 '미래에 대한 비관'은 저 출산으로 이어지면서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현상을 빚는다는 것이다.

선거는 연령과 더불어 지역별 판세가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여당의 텃밭 역할을 했던 영남은 그동안 줄기차게 '1번' 후보들을 당선시켜왔다. 현재 각종 여론 조사상으로 나타난 수치를 보면, 부산이 박빙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나머지 지역들은 거의 대부분 과거와 같이 새누리당이 싹쓸이를 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부산도 오거돈 후보가 야당이 아닌 무소속 후보이기 때문에 그나마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럼, 줄기차게 야당을 찍어왔던 영남지역 유권자들은 과연 그 오랜 짝사랑에 비례하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만약 충분히 안전하고 불안 위험요소가 없는 삶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면 대가를 적절하게 받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원인부터 대책본부의 작동 방식까지 우왕좌왕 혼란상을 똑같이 보였다. 지난 5월 26일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사건을 다뤘던 5월 28일자 <중앙일보> 기사 '화재 골든타임 5분인데... 종로 2분30초, 의령 13분7초'라는 타이틀'를 보면 알 수 있다.

불이 나고 5분이 지나면 축적된 열 때문에 화염이 폭발하는 이른바 '플래시 오버(Flash Over)'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전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물을 아무리 퍼부어도 물건이나 건물이 다 타기 전까지는 불이 잘 꺼지지 않기 때문에 화재사건에서는 발생 뒤 5분을 '골든타임'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 때문에 소방차가 5분 이내에 현장에 출동해서 화재진압 작전에 돌입해야 하는데, 서울 외의 지역은 골든타임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중앙일보가 전국 소방차 출동시간 기록 4만 건을 입수해서 분석했는데 지역별 격차가 매우 컸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사는 곳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 있다는 뜻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도착시간이 가장 빠른 곳은 서울 종로로 2분 30초. 그리고 가장 늦은 곳은 경남 의령으로 13분 7초.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도에서 빨간 색으로 표시된 출동 소요시간 9분 초과 지역의 대부분이 경상도 지역이라는 점이다.

화재가 나면 골든타임 내로 소방차가 도착할 수 없기 때문에 경상도 대부분의 지역은 건물이 다 타버릴 때까지 화재진압이 이뤄질 수 없는 위험지역인 셈이다. 죽어라 1번을 찍으며 여당을 그토록 밀어줬건만, 돌아온 대가는 이렇게 하루하루 화재로부터 안전을 기약하기 힘든 불안한 현실이었다.

똑같이 세금내고 사는데, 이렇게 차별받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그럼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건 혹시, 정부여당이나 여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경상도 유권자들을 주머니 속 공깃돌 마냥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아무리 잘못을 해도 어김없이 '묻지마 1번' 식으로 맹목적인 투표를 하니, 그들은 경상도 유권자들을 진심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두려워하고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이런 현실은 있을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형 녹색 뉴딜을 내세워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이름 붙인 4대강 사업의 예산은 무려 22조 원이었다. 이 엄청난 돈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를 위한 사업에 투입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고 희망찬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 대다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국민 절망의 시대'이다. 이런 참담하고 불안한 현실을 맞이하고도, 지금 대한민국의 50~70세대는 또 다시 맹목적인 묻지마 투표를 하면서 국민 절망의 시대의 부끄러운 주역으로 기억되려 하고 있다.

아무 죄 없는 어린 생명들이 250명이나 희생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흘린 눈물 몇 방울만 기억하고, 이 어린 생명들의 참혹한 희생에 대해서는 애써 눈 돌려 외면하려 하는 것은, 스스로 양심과 이성을 마비시키는 짓이다. '부끄러운 어른'으로 남을지, 아닐지는 스스로 결정을 할 일이다. 이제 그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태그:#6.4 지방선거, #박근혜 정권 심판, #화재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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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기도의회 의원 (전) 제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국토균형발전 특별보좌관 (전) 제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호남신성장동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현)호남신성장 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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