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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소제동의 12월의 첫 날, 2014년 '진보길'로 바뀌는 소제동을 찾아 르포했다.
 대전 소제동의 12월의 첫 날, 2014년 '진보길'로 바뀌는 소제동을 찾아 르포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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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마지막 달의 첫날, 성큼 다가온 겨울이 사람들의 옷차림을 두텁게 만든 하루였다. 겨울이 깊어지면 한숨이 느는 곳은 쪽방촌, 대전의 대표 쪽방촌 가운데 하나인 소제동 사람들도 동절기 준비로 분주했다.

대전 대전역 동광장 부근에 자리잡은 소제동, 이곳의 마을 지명은 소제호(蘇堤湖)에서 유래했다. 옛부터 소제호가 있던 소제동 일대는 우암 송시열이 자신의 거처로 삼았을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했던 곳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호수가 매몰(1927년)된 후, 그 자리에는 빽빽하게 철도 관사 촌이 들어섰고, 이후 소제동은 집집들이 촘촘한 공간이 됐다.

해방 후 소제동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들이 사는 주택가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 됐다. 대전광역시는 낙후된 소제동 일대를 역세권 재정비촉진지구로 정하여 도시계획을 마련했지만, 현재 진척이 더딘 상태다.

무관심, 혹은 방치, 오랜 세월 소제동은 세상의 관심 밖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최근 소제동에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2014년 소제동은 도로명 주소 시행과 함께 새로운 이름을 달기 때문이다. 그 이름하여 진보.

2014년 소제동 일대 일부는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이름 '진보길'로 탈바꿈 한다. 그 이름 속에는 낙후된 마을이 '더욱 발전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12월 1일, 마지막 한달을 맞이한 소제동, 그리고 진보길을 찾아갔다.

대전 소제동, 진보길을 알리는 안내판
 대전 소제동, 진보길을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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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지하철 1호선 대동역에서 대전역 동광장 방향(도로 우측)으로 5분여 정도 걷다보면, '진보길'을 알리는 도로명 주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안내판 방향을 바라보면, 사람 한 두명 오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골목길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진보길의 시작이다. 진보길은 소제동 299-328번지를 기점으로 하여, 소제동 305-320번지를 종점으로 하는 곳을 일컫는다. 진보길 마을의 첫 인상은 개미굴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골목길이 이곳 저곳, 얽히고 설켜 흡사 미로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진보길 입구에 들어선 낡은 간판의 다방, 식당, 분식집이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풍경을 연상케 했다. 진보길 입구의 정겨운 건물들을 따라 천천히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보길 입구에서 50m여쯤 걸어가다보면 진보1길과 진보2길로 방향이 나뉜다.
 진보길 입구에서 50m여쯤 걸어가다보면 진보1길과 진보2길로 방향이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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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길 입구에서 50여m쯤 걸어갔을까.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안내판을 보니 진보1길과 진보2길이었다. 진보길을 걸으며 보이는 것은 낯선 풍경들, 차가 들어설 수 없는 진보길에서 확연히 눈에 보이는 교통 수단이 있었다.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리어카였다.

주황색, 파랑색 리어커 덮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가까이 다가가보니 폐지 등의 폐품이 보였다. 돈벌이를 위해 치곡차곡 모아놓은 듯 했다. 진보길의 리어카는 단순히 운송 수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동시에 유용한 경제수단이기도 했다.

진보길 곳곳에서 눈에 띄는 리어카, 안에는 폐품이 들어 있었다.
 진보길 곳곳에서 눈에 띄는 리어카, 안에는 폐품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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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길에 사는 상당 수 사람들이 리어카에 폐품을 모으며, 그렇게 근근히 오늘을 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진보 1길로 들어서는데 한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아마도 진보길을 찾아온 이방인의 모습이 낯설었던 모양, 르포 취재를 한다고 하니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리곤 자조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런 곳이 드물지요? 진짜 여긴 달동네에요. 여긴..."

2014년이면 소제동의 이름은 '진보길'로 바뀌지만, 주민들에게 소제동은 여전히 박한 생활의 달동네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진보길 담의 철조망, 삭막한 풍경이다
 진보길 담의 철조망, 삭막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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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겨울 추위처럼, 밝은 희망을 찾기 힘든 쪽방촌, 출구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굽이굽이 골목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눈 앞에는 삭막한 풍경의 주택이 보였다. '개조심'이라고 쓰여진 연두색 글자와 벽에 걸린 색바랜 다트 표적, 그리고 뻥뚫린 벽창호가 눈길을 머물게 했다. 벽 위의 녹슨 철조망은 보는 이의 마음도 뾰족하게 만들었다.

그 삭막함과 대비되는 부유함, 진보 3길에서 눈에 띈 것은 이곳의 다른 집들과는 확연히 다른 고급스런 주택이었다. 벽 부근에는 CCTV 촬영을 알리는 문구가 있어 이질감을 더했다. 멋스런 집은 진보길의 낡은 보안등과 대비되어, 또한 평지보다 낮은 곳의 집들과 비교되어 오래 눈을 머물게 했다. 마치 진보길의 풍경이 아닌 것 마냥.

진보길의 한 벽에 써진 연탄배달 문구.
 진보길의 한 벽에 써진 연탄배달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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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모인 살색 연탄재들, 여전히 연탄은 진보길 사람들의 주요한 난방 재료다.
 한데 모인 살색 연탄재들, 여전히 연탄은 진보길 사람들의 주요한 난방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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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한 모퉁이를 돌아 계속 걸어갔다. 진보 길이 나뉘어진 한 갈래 길에서는 다 쓴 연탄재가 한 데 놓여 있었다. 검은 봉투에 담긴 살구빛 연탄, 이곳 마을의 난방 수단은 여전히 연탄이 주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벽에 씌여진 연탄 배달 문구와 전화번호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겨울이면, 소제동에 '사랑의 연탄나르기' 행사가 벌어지는 이유를 조금을 알 듯 했다. 벽 한쪽에 걸린 전기 끊긴 계량기는 전선이 뜯기지 오래였다. 안에 내용물도 사라진 것으로 보아 오랜시간 방치된 듯 보였다. 고르지 못한 벽 사이에 뚫린 창문과 연기 구멍이 힘겨운 진보길의 오늘을 상징하고 있었다.

진보길 한 벽의 계량기가, 전선이 뜯겨져 있다.
 진보길 한 벽의 계량기가, 전선이 뜯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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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이 계속 이어진 진보길,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골목길이 계속 이어진 진보길,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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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길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참 각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있어 이번 겨울은, 매년 겨울 이 맘 때처럼 힘겨운 시간일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매서운 한파, 그들에게 진정한 봄은 언제쯤 올까?

문득 궁금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칠, '진보2길'은 대체 어디로 길이 나 있는 것일까? 호기심에 정처없이 걸었다. 부디, 막혀 있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진보2길'을, 사람들은 그렇게 또 걸어갔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보2길'을, 사람들은 그렇게 또 걸어갔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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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어간 '진보2길'의 끝, 연결된 것은 예상 밖의 곳이였다. 바로 '미래'였다. 진보길(소제동)의 끝은 미래길(기점: 자양동281-40, 종점: 가양동302-108) 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민 모두가 장래 미래 지향적인 발전 염원'한다는 미래길, 미래라는 이름은 '진보길' 바로 옆에 따듯히 자리잡고 있었다. '진보2길'을 걷는 이들이, 길의 끝에서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작은 위안을 전해줬다. 그것은 마치 힘겨운 세태의 오늘에서, 긍정의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상징 같았기에.

'진보2길'의 끝은 '모두가 장래 발전 지향적인 발전 염원'하는 미래길과 맞닿아 있었다.
 '진보2길'의 끝은 '모두가 장래 발전 지향적인 발전 염원'하는 미래길과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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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길의 끝에 위친한 '미래길', 우리 사는 오늘도 힘겨운 진보의 삶 끝에 미래가 있을까.
 진보길의 끝에 위친한 '미래길', 우리 사는 오늘도 힘겨운 진보의 삶 끝에 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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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전 소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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