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드디어 여름이 왔나 봅니다. 이제는 오후에 밖에 있으면 '쪄죽을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도 겉옷을 반드시 껴입어야 밖에 나갈 수 있었는데 그새 날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6월인데 벌써 이렇게 더위에 시달리니 올 여름은 얼마나 더 더울까 싶습니다.

자, 이렇게 더운 날이면 시원한 맥주 한 잔 떠올릴 분들이 많을 겁니다. 특히나 유리잔에 담겨 나오는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딱 떠오를 때죠. 그 시원한 맛에 절로 '카아' 소리가 나오죠. 여름날 스트레스와 더위가 풀리는 소리입니다. 가게에서 파는 맥주도 좋지요. 가게 앞 파라솔에서, 집 안방에서, 혹은 술집에서 '카아' 소리가 여기저기 나올 때입니다.

생맥주와 노가리가 놓여졌습니다. 모두 합쳐 4천원.
 생맥주와 노가리가 놓여졌습니다. 모두 합쳐 4천원.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을지로 골목은 저녁마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골뱅이와 파, 대구포를 무친 골뱅이무침도 인기지만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사람들에게는 단돈 천 원에 파는 '노가리'가 최고의 맥주 안주지요.

지금 이 글 속에 나오는 노가리는 일반 맥주집에서 파는, 조그만 생선 몇 마리가 놓여진 그 안주가 아닙니다. 을지로나 마포에서 맛보았던, 황태 한 마리를 연탄불에 통으로 구운, '천 원짜리 노가리'입니다. 최근에는 여러 동네마다 이 노가리집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값싸게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을지로의 맛과 전주 '가맥'의 맛을 동시에 느끼다

며칠 전, 제가 사는 동네에도 이 노가리집이 생겼습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지라 아직 입소문은 덜 난 상황이었죠. 비가 그쳐가던 저녁,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저녁 무렵 이 집을 찾았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안에는 아직 손님이 없었습니다.

셍맥주와 노가리를 주문하자 사장님이 문 앞에 있는 난로에서 황태를 굽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500cc 생맥주와 노가리가 나왔습니다. 헌데 소스가 두 가지입니다. 고추장 소스와 마요네즈가 담긴 그릇, 간장과 청양고추가 담긴 그릇 그렇게 두 가지입니다.

노가리엔 을지로에서 맛볼 수 있는 고추장 소스와 전주 가맥집 스타일인 간장 소스가 같이 나옵니다. 고추장에 마요네즈가 같이 나오는 게 특색이죠.
 노가리엔 을지로에서 맛볼 수 있는 고추장 소스와 전주 가맥집 스타일인 간장 소스가 같이 나옵니다. 고추장에 마요네즈가 같이 나오는 게 특색이죠.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소스를 찍어 맛있게 먹어봅니다. 여기에 맥주를 곁들이면...
 소스를 찍어 맛있게 먹어봅니다. 여기에 맥주를 곁들이면...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아하, 이 집에서는 두 가지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추장 소스는 을지로 노가리의 필수 요소입니다. 보기엔 그냥 양념 고추장인데 먹어보면 매콤한 맛에 금방 반하게 됩니다. 소스 맛에 노가리를 찾게 되고 노가리를 먹으면 맥주 한 모금을 마셔야지요. 이 맛에 중독되어 맥주와 노가리를 더 주문하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간장 소스. 이 소스를 보면 전주의 명물 중 하나인 '가맥'이 떠오릅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면 막걸리와 함께 꼭 맛보아야하는 코스인 '가게 맥주' 입니다. 가게 안에서 황태나 갑오징어를 안주로 병맥주를 마시는데 여기에 나오는 소스 또한 중독을 불러오죠. 오죽하면 멀리서 온 사람들이 소스만 따로 싸서 가져가려고 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을지로와 전주. 두 곳의 정취를 다 맛본 느낌이 너무 좋아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노가리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노가리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노가리를 하루 정도 숙성시켜 올린다고 합니다. 이전에 즐겨찾았던 마포 노가리 골목 스타일이라고 하네요.

"이제 시작했어요. 입소문이 잘 나야할텐데..."

땅콩, 구운김, 한치, 피데기, 먹태 등이 적힌 메뉴판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눈이 가는 건 천 원짜리 노가리가 아닌가 싶네요. 맥주 한 잔만 마시고 가려다 남은 노가리가 왠지 아쉬워 한 잔을 더 청했습니다.

메뉴판입니다. 저렴한 가격이 눈이 띕니다
 메뉴판입니다. 저렴한 가격이 눈이 띕니다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아까 지나가다가 전봇대에 홍보물 붙어있는 거 봤어요. 어떻게 잘 되세요?"
"이제 시작했는데요, 뭘. 입소문이 잘 나야할텐데…."
"을지로는 대낮에 문여는데 여기도 조금 일찍 열어도 되지 않아요? 조금 일찍 문닫고…."
"여긴 늦게 오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2차로 오는 사람들도 있고…. 어제도 새벽 두시에 와서 맥주 마시고 간 분이 있었어요. 근방에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어서 잘 될 거 같기도 했는데…."
"거리가 좀 있잖아요. 술마시면 멀리 있는 곳 잘 안 가게 되요."

단지 동네 사람이라는 이유로 알지도 못하는 장사에 대해 어설픈 훈수를 두고 있네요. 그러던 중 맥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한 잔 더 청했습니다. 노가리 하나도 더 청하고요. 노가리에 빠지고 맥주에 빠지고 사장님과의 이야기에도 빠졌습니다.

마포 노가리 골목을 즐겨찾던 직장인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안정적인 삶도 좋지만 나의 생각과 동떨어진 삶이 과연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됐죠. 결국 그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마포식 노가리집을 열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이 집 사장님입니다.

"늦기 전에 좋은 경험해야죠. 1년은 그냥 한 번 해보려고요"

"그래도 요즘같은 때 직장을 그만둔다는 게 쉽지는 않을텐데…. 아무리 자유가 좋다곤 하지만, 자영업도 요즘은 안 된다고 울상이잖아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1년은 안 될거라고 각오하고 한 일이에요. 한여름엔 밖에도 자리 놓고 많은 사람들 오게 해야죠. 제가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어요. 늦기 전에 좋은 경험해야죠. 안정적이라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벽에 누군가가 남긴 낙서. 사장님의 마음이 담긴 격언 같습니다.
 벽에 누군가가 남긴 낙서. 사장님의 마음이 담긴 격언 같습니다.
ⓒ 임동현

관련사진보기


새로운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실패를 또 하나의 성공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사장님의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 여름, 을지로 골목 부럽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맥주집에서 노가리에 생맥주를 마시며 프로야구 중계에 열광하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장님의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통하기를 바라면서요.

문득 술집 벽에 써 있는 낙서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코 뒤로 가지는 않습니다'. 링컨이 한 말이라는군요. 그것이 바로 연탄 난로에 노가리를 굽는 사장님의 마음을 담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가리로 많은 사람들을 '뻑가게' 만들겠다는 사장님의 각오. 그래서 상호도 '노가리와 뻑가리'입니다.올 여름은 생맥주와 노가리로 한 번 '뻑 가봐도' 좋을 것 같네요.


태그:#노가리, #생맥주, #을지로 골목, #가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