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모범택시>의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

SBS 드라마 <모범택시>의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 ⓒ SBS

 
"경찰은 사람을 감옥에 넣을 수 있지만 죽이진 않을 거잖아요. 저는요, 그 사람이 꼭 죽었으면 좋겠어요."

2001년 개봉한 장진 감독의 영화 <킬러들의 수다>에서 여고생 여일(공효진 분)은 킬러들에게 자신의 선생을 죽여줄 것을 부탁한다. 이 킬러들은 한 번도 의뢰받은 살인을 실패한 적이 없고 그렇기에 계속 살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킬러 조직의 막내(원빈 분)는 이런 내레이션을 한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죽여달라고 하는지 난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우릴 찾는 걸 보면 지금 사람들에겐 우리가 간절히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에서 이 킬러들을 잡으려했던 검사(정진영 분)는 그들의 살인에 박수를 보내고 종내는 킬러들의 리더인 상연(신현준 분)을 체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놓아준다. 어쩌면 그는 킬러들을 처벌한다고 해도 그 킬러들이 살인을 저지르도록 하는 '원죄'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강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고 '공소시효'라는 이름으로 죄가 면제되는 상황에서 킬러들을 처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엔 이전의 '원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약 실제로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는 법원의 문을 두드릴까? 킬러의 문을 두드릴까? 지금 사람들은 이 질문에 망설임없는 답변을 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그렇기에 지난 29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영화가 나온 20년 뒤, '사적 복수 대행극'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현대판 노예, 학교 폭력, 직장 갑질, 불법 동영상 유포, 보이스피싱 등 법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에 통쾌하게 맞서는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와 무지개 다크히어로즈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대리 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감형이 되고,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찰과 검찰의 무능함에 염증을 느낀 이들에게 <모범택시>의 복수극은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까지는 당하는 이들의 고통을 봐야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했다. 젓갈 공장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 학교 폭력에 멍든 학생과 그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는 학생들, 동영상 불법 유출로 인한 언니의 극단적 선택에 오열하는 안고은(표예진 분) 등의 고난을 우리는 직접 목격해야했다. 물론 사이다같은 해결의 느낌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굳이 그 고통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드라마는 나았다. 어쨌든 마지막은 통쾌한 복수로 끝나니까.

결말을 앞두고 드라마는 '사적 복수가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잠시 표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무지개 다크히어로즈, 그리고 <모범택시>가 반드시 거쳐야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는 복수로 끝이 나기는 했지만 '옳다'는 답을 제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검사인 강한나(이솜 분)가 마지막에 무지개 다크히어로즈의 일행이 되어 김도기와 함께 '사적 복수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드라마는 이렇게 답하는 것 같았다.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문제는 왜 이렇게까지 우리가 직접 복수를 해야하느냐야. 우리도 피해를 입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모범택시>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올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비록 여러 잡음이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무지개 다크히어로즈를 떠나보내기에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이 여전히 호의호식하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불행을 안긴 일부 범죄자들이 대중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받는 이 상황에서, 뭐니 뭐니 해도 정치도 기업도 경찰도 검찰도 언론도 믿을 수 없는 깜깜한 상황에서, 이들이 사회를 향해 던진 통렬한 복수가 그리워질 순간이 계속 될 것만 같다. 
모범택시 SBS 이제훈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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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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