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의자놀이>, 작가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의자놀이>, 작가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 휴머니스트

관련사진보기

"사람이 스물두 명 죽었다. 만일 60만명이 산다는 서울 노원구에서 똑같은 원인으로 스물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41면)"

쌍용차 사태를 다룬 공지영 작가의 책 <의자놀이>가 던진 질문이다.

<의자놀이>는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92면)"다. 자살률 세계 1위, 출산률 세계 꼴찌라는 통계로 표상되는 <의자놀이> 사회, 2012년 대한민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12월 대선을 3개월여 앞둔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이 경쟁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모두가 '좋은 일자리, 동반성장, 재벌개혁'을 얘기한다. 이같은 각 정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드러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것을 유연화라고 부른다. 해고의 유연화, 빈곤의 유연화, 살인의 유연화, 살인 은폐의 유연화, 인간 경시 유연화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163면)" 하지만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기 십상이다. 하여 신뢰를 잃은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정치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8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8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의지를 보이려는 행보였을까? 지난달 28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전태일 재단과 유족은 박 후보에게 '현재의 전태일, 쌍용차노조를 먼저 만나는 것이 우선'이라며 거절했다. 이후 박 후보는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다리를 헌화하는 것으로 일정을 대체했다.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려는 박 후보의 의지는 확인됐다. 하지만 박 후보의 실천은 '아직' 없다. 아직, 아직, 아직...

전태일 열사는 청계천 다리에서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엄마 잘 들어. 난(전태일) 우리 노동자들 위에 드리워진 저 컴컴한 하늘에 겨우 구멍을 냈어. 겨우... 이제 나머지는 엄마랑 다른 사람들이 해줘야 해.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숨 쉴 수 있게...(16면)"

하지만 전태일이 떠난 지 42년이 지난 2012년, 하늘은 다시 컴컴하다. 쌍용차 사태 이후 2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죽은 사람들은 또 있다. 많은 아이들이 엄마의 뱃속에서 생명의 끈을 놓아버렸고, 가족들은 죽어갔다.(60면)"

하늘은 더욱 컴컴하다.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죽었던 시절이 차라리 행복했다고 해야 하나. 적어도 그때는 한 사람이 그렇게 외치며 죽자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130면)" 하지만 지금 우리는 22명의 죽음에도 담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의자놀이> 사회의 무한경쟁이 빚은 이 담담함, 이대로는 안 된다. 남을 이기기 위해 치워버린 의자 하나를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공약'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약속만 해댈 것이 아니라, 지금 실천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의 광폭행보는 잠시 중단됐다. 대신 오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쌍용차 청문회가 열린다.

이에 앞서 도법 스님, 이해학 목사, 황상근 원로사제 등 5대 종단 종교인 33명으로 구성된 '5대 종단 33인 원탁회의'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100일 국민실천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갈등과 대립이 없는 세상은 만들기 어렵겠지만 갈등과 대립이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세상은 만들 수 있다"며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및 그 가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호소했다.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컴컴한 하늘에 겨우 뚫린 구멍 하나를 통해 노동자들이 숨쉴 수 있게, 그래서 쌍용차 노동자의 23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이번 청문회가 쌍용차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만들어 나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태그:#의자놀이, #쌍용차 청문회, #공지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은 선도 악도 아닌 그저 삶일 뿐입니다. 경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이념 역시 공리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