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들은 왜 그토록 일출의 광경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일출의 장면이 무엇을 선사하기에 우리는 깊은 새벽에 눈 비비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가. 어둠이 점점 가시고 설산에 붉은 아침놀이 스민다. 사람들은 그 숭고한 장관을 포착하기 위해 숨을 죽인다. 주변에서도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린다. 신성한 빛의 향연을 내면 깊숙히 담아놓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시절은 가난하고 혼곤한 새벽꿈이었다. 꿈꾸는 자처럼 술 취한 자처럼 환상 속에서 방황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우리를 꿈꾸게 하는 것은 어둠인가 아니면 어둠 다음에 오는 새벽인가. 그토록 위대한 빛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자 하는 이유는, 완성을 향한 인간 내면의 간절한 열망의 몸짓 때문일까 혹은 누추하고 부끄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고픈 초월적 자기 혁신에의 몸부림 때문인가. 

빛은 남은 어둠을 빗질하고 이제 내 마음의 설산에도 온기가 돈다. 내면이 환해지면서 사람들의 표정도 점점 밝아진다. 여기저기 청량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지만 발걸음은 야크의 방울소리처럼 가볍다.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먹을 것이 있고, 먹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아침을 먹을 길동무가 있다는 사실이 문득 고맙게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
▲ '페이라이스'에서 본 메리설산 정상의 모습 .
ⓒ 손영대

관련사진보기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정상(Kawa Karpo)은 6740m. 중국 윈난성과 티벳 자치구에 걸쳐있는 메리설산은 티벳인에게는 생애 꼭 한 번은 순례해야 할 티벳 불교의 성산으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그래서 매년 티벳인들 약 2만 명이 이곳을 성지 순례차 다녀간다고 한다. 현지 티벳인들은 사람들이 이 산에 발을 들여놓는 불경한 짓을 하면 설산에 깃든 수호신이 떠나게 되어 큰 재앙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다. 성지. 이곳은 그들에게 '성스런 땅'인 것이다. 그래서인가? 1957년 전까지 험박한 오지였던 이곳은 신에게서 보호를 받았다. 한 번도 그 어떤 세력으로부터 지배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1957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이 험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이곳은 중국이지만 전혀 중국적이지 않다. 중국인도 나와 같은 외지인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은 신성한 자연을 가만두지 않으려 한다. 메리설산을 등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1987년 일본 원정대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실패. 1990-1991년 겨울에는 일본 교토대학 산악부가 중국 등반대와 함께 정상을 밟으려 하였다. 특히 이 연합 등정대의 시도는 메리설산의 문화적, 종교적 중요성 때문에 현지 티벳 주민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현지 티벳 공동체의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등정을 떠난 원정대는, 91년 1월 한밤 중, 급작스런 산사태로 대원 17명 전원이 눈 속에 잠들게 되었다. '페이라이스(飛來寺)' 근처에 있는 현지 카페에서는 이날의 비극적 사태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매일 밤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후 4차례에 걸친 미국 원정대의 줄기찬 등정 시도도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급기야 2001년 지방정부가 등정 자체를 법으로 금지한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비약이겠지만, 나는 티벳인의 서글픈 역사와, 한편으로는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는 옹골찬 의지와 간절한 염원을 엿본 것 같았다.

현지인들이 '샹그릴라'라 부르는 곳, 위뻥마을

위뻥마을에 가려면 우선 페이라이스에서 차를 타고 '시땅'에 가야 한다. 나는 한국인 대학생, 중국 직장인 - 전자산업이 활발한 선전에서 일을 한다는 그 중국청년을 아내는 '동자몽'이라고 했다 - 과 함께 봉고차를 빌려 시땅까지 갔다. 여행지에서 다른 여행자와 함께 차를 빌리는 경우 경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운전기사는 현지 티벳 청년인데 아내는 연신 잘생겼다는 말을 남발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땅부터는 조랑말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교통수단이 없다. 조랑말의 등 위에 앉아서 편안히 가도 대략 4-6시간이 걸리는 산길이다. 그게 아니라면 위뻥마을까지 걸어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시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내를 말을 타고 갔다. 방울소리를 울리며 내 시야에서 이내 사라졌다. 장기 배낭여행 중인 한국 대학생들은 돌도 우적우적 씹어먹을 23세. 그들은 티벳인 포터에게 짐조차 맡기지 않은 채 등산을 시작했다. 나는 어찌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아내 앞에서 '수컷의 나약함을 보일 수는 없지' 생각하며 무거운 배낭을 매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위뻥마을 입구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이 오만한 선택을 두고 두고 후회했다. 고산병 증세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염려했지만, 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고산지대의 오솔길을 올라간 지 채 10분도 안 되어, 난 내려갈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심장이 요동치는 게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봐도 요동치는 심장이 가라앉질 않았다. '이런 걸 부정맥이라 하나' 순간 공포가 엄습해 왔다. '23세 때 나는 지리산을 비호처럼 날았는데...' 한국 청년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진 지는 오래. 저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자몽이 보일 뿐. 물도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과연 오늘 중으로 위뻥마을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계속 오르기도 힘들고 이대로 시땅쪽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딜레마. 원치 않은 고행. 박노해 시인 말대로 '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천천히 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30㎝의 보폭으로 걸었다. 세 걸음 가고 심호흡 두 번, 세 걸음 가고 심호흡 두 번. 그러다 보니 서서히 고산 오솔길에 몸이 적응이 되어 가는 듯했다. 나를 앞질러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며 조랑말이 지나간다. 그 녀석도 숨이 가쁜지 헉헉 대고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말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것일까? 능선(야코우)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아니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나는 홀로 그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나를 가끔 위로해주는 것은 풍경 한 컷과 바람 한 줄기뿐이었다.

.
▲ 메리설산의 품으로 들어오다 .
ⓒ 손영대

관련사진보기


드디어 능선의 꼭지(해발 3900m)에 도달했다. 조랑말을 타고 온 아내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나에게 물과 초콜릿 하나를 건네준다. 나는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이제 절반쯤 온 것이다. 비록 두 다리는 완전히 풀렸지만 이제는 내리막길이구나 생각하며,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마음 속으로는 위뻥마을이 있기는 한 걸까 반신반의하면서.

한참을 걸어 내려가는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경이로웠다. 눈 앞의 풍경은 오색찬란한 단풍 숲인데,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두 명과 동자몽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발걸음을 멎게 하는 결정적 한 컷. 이것은 내면에 영원히 간직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난 이 풍경이 문득 샹그릴라가 아닐까 생각했다. 눈이 그치자 오늘의 목적지 위뻥마을이 먼발치서 우리를 부르는 듯하다. 화려한 풍광 아래 소박한 티벳인 마을이 메리설산의 한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다.

.
▲ 위뻥마을의 원경 .
ⓒ 손영대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새처럼 날면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처럼 보이던 위뻥마을은 내려가고 내려가도 좀처럼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면 오늘 하루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숙소가 있을까? 있을 거야 분명히 있을 거야' 맘 속으로 되새기며 계속 내려갔다. 몸은 정말 녹초가 되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개울을 하나 건너고 조금 올라가니, 드디어 위뻥마을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 어귀에 몇 점의 불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하늘에는 온통 별무리로 가득하다.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아도 별들이 시야에 들어온다는 점이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소풍 나온 듯 성지를 순례하는 티벳 소녀

.
▲ 메리설산 한 자락이 품고 있는 위뻥마을은 공사중 .
ⓒ 손영대

관련사진보기


자고 일어나니 청명한 날씨와는 달리 몸이 말이 아니다. 어제의 무리한 등산이 업(業)이 되어 오늘 아침 날 괴롭힌다. 왼쪽 고관절에 문제가 생겼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먼 오지의 땅에 왔는데, 좀 더 날 괴롭혀야겠다 생각하며 산행에 나선다. 위뻥마을에서 출발하는 트레킹 코스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고산 호수와 신의 폭포라 불리는 '션푸'(神瀑)다. 숙소 주인 아저씨는 눈이 많이 쌓여서 이 겨울에는 호수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길을 찾기 힘들다고.

어제와는 달리 션푸로 가는 길은 평평한 오솔길이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왼쪽 다리에 미세한 통증이 왔지만, 원시의 거대한 숲속 길을 걷다 보니 내 마음에도 푸른 이끼가 끼는 듯했다. 두 명이 함께 안아야 할 정도의 거목(巨木)들이 숲 속에 빼곡하다. 인적이 드문 숲길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내 마음도 이내 차분해졌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익숙한 장면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돌탑 무더기다. 계곡물 옆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돌탑들에는 순례자들의 정성과 염원이 깃들어 있다. 나 같은 외지인에게 이 숲길은 피로를 씻어주는 마음의 안식처일 뿐이지만, 티벳인들에게는 성스런 공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갔는지...가지런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이런 돌탑을 쌓을 수 없을 것이다.

탑은 산을 닮아있다. 하지만 그 위용만으로도 신성함이 깃들어 있는 메리설산과는 달리, 작은 돌탑들은 소박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시멘트로 쌓아 올린 인공의 건물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돌로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자연을 닮아있음이 분명하다. 내 어릴 적 엄마와 손잡고 산에 오를 때, 산길 가에서 작은 돌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게 작은 돌을 건네주었고 나는 돌멩이 하나를 더 쌓아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난다. 거짓말처럼 시간이 흘러가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중년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 중년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유년의 숲에 와야 한다.

.
▲ 순례자들의 염원이 담긴 돌탑들 .
ⓒ 손영대

관련사진보기


션푸에서 내려오는데 저 멀리서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청아한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성지 순례를 온 티벳 소녀의 노랫소리다. 엄마의 손을 잡고 순례에 나선 소녀는 마냥 신이 나는가 보다. 그래도 향나무를 태워 메리설산의 신께 기도를 드릴 때만큼은 사뭇 그 모습이 진지하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향나무 연기 내음에 기분이 개운해져 우리 부부도 합장 기도를 올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어떻게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왔냐며 놀라는 표정이다. 안부 인사를 나누고 몇 걸음 가다가 숲을 울리는 소녀의 노랫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션푸로 향하는 그 모녀의 발걸음이 소풍을 나온 나비처럼 가볍다.

.
▲ 션푸(신의폭포)가는 길에서 만난 티벳소녀 .
ⓒ 손영대

관련사진보기



아,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꾸물거리는 자여.

     그대는 이번 생을 쓸모없는 일에 모두 바치고
     귀중한 기회를 놓쳐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만일 그대가 이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간다면
     그대의 목적은 잘못된 것이다.
     그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니
     지금이라도 신성한 진리에 그대 자신을 바치지 않겠는가?

-〈여섯 바르도의 서시(序詩)〉중 -

덧붙이는 글 | 여행한 시기는 2007년 11월입니다.



태그:#메리설산, #중국여행, #중국배낭여행, #윈난성 여행, #위뻥마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