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선을 하루 앞두고 있다. 특히 사회의 저명 인사들이 유권자들에게 투표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박빙 승부가 예상되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모두 초조함, 긴장감, 불안감을 모두 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의 자유가 민주주의일까?

며칠 전 대전의 한 대학생이 백화점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다 선거법 제90조 위반 소지가 있어 경찰이 수갑을 채워 연행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현행범이라고 판단하여 수갑을 채웠다고는 하나, 평화적인 1인 시위에 수갑을 채운 것은 공권력 남용의 소지가 다분하다 (관련기사 : <경찰, '다카키 마사오' 피켓 든 학생 수갑 채워 연행>).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 스토리플래너

관련사진보기

그 대학생의 피켓에는 '범국민 역사공부 캠페인,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 충성맹세!, 독립군 토벌한 만주국 장교! 다카키 마사오, 그의 한국 이름은?'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실정법 위반 소지는 차치하고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과 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하면 안 되는가?

우선 공직선거법 제90조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제90조 제1항은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사진 또는 그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선관위는 '다카키 마사오'가 박근혜 후보를 유추하게 하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 호의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화환·풍선·간판·현수막·애드벌룬·기구류 또는 선전탑, 그 밖의 광고물이나 광고시설을 설치·진열·게시·배부하는 행위
2. 표찰이나 그 밖의 표시물을 착용 또는 배부하는 행위
3. 후보자를 상징하는 인형·마스코트 등 상징물을 제작·판매하는 행위

위에 기술된 각 호의 세부사항을 따져보면 사실 선거법 제90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취지, 즉 선거비용을 통제해 돈 안 드는 선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의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경제력의 차이에 의해 불공평함이 초래되지 않도록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법 위반 소지로 연행된 대학생의 경우는, 백 번 양보하여 위 문구가 허위사실이라면 현재 한국의 사회적 의식을 감안해 볼 때 무책임한 허위사실로 인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 문구는 대선 후보 1차 TV 토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후보에 의해 이미 공중파에서 방송된 내용이다. 그리고 사료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명백히 밝혀진 바 허위사실도 아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 캠프로부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된 바도 없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는가? "선거에 영향을 미쳐서?"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이라 할지라도 일반 시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하위법인 공직선거법으로 일반 시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해석 행위이기 때문에 법률 전문가들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역설한다. 민주주의는 투표의 자유가 아니라 정치인과 정책에 대한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이 책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류제성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단 선거운동이 과연 금지해야 할 대상인가? 유권자가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활동 자체가 과연 금지해야 할 대상인가? 이것은 금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 대상이다. 투표의 자유만 있다고 해도 과연 민주주의인가? 아니다. 투표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과 정책을 연결시키고 그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그게 진짜 민주주의다."(95쪽)

'표현의 자유' 관련 법 개정은 새정치의 리트머스 시험지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인의 입법, 행정 행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는 일상의 도처에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일상 속에서 합리적 토론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반면 통제와 감시는 인간을 순응적, 타율적 존재로 전락시켜 자기 감시와 검열 상태로 노예화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침해한다. 따라서 공론장에서 사상과 양심에 따른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원칙이자 목표이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소통이 합리적인 대안을 창출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 이것이 전제되어야 민주주의라는 수레는 삐걱거리면서도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제대로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지배층 혹은 기득권층은 유권자들의 의식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고 감시하듯 기성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회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는 손해배상소송으로 금전적으로 위협하고 급기야 인신의 구속이라는 형사처벌로 억압하기까지 했다. 물론 쓴 약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듣기 좋을 수는 없겠지만,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속담처럼 권력자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비판은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첩경일 것이다.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높다. 국회의원들에게 부여되는 온갖 특권적 혜택에 국민들의 누적된 불만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서 기성 정치인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정치신인들에게는 공정함을 제공하는 선거법을 개정하라. "현역 의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자기를 홍보할 기회가 보장돼 있다. 그런데 정치신인은 그럴 수 없는" 불평등한 현실을 바꿀 수 있겠는가?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은 새정치를 향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 MB공화국 5년,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구영식 외 지음, 스토리플래너(2012)


태그:#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공직선거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