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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때였다. 수업 도중 강의실에서 나와 도착한 화장실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왜 닫혀있지?'라며 급한 마음에 문을 연 화장실에서 나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쉬고 계시던 청소노동자분을 마주했다. 한 사람 서있을 만한 좁은 공간, 신문지를 쌓아놓은 의자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청소노동자분은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미안해요'라며 어깨조차 피지 못한 채 재빠르게 화장실을 나갔다. 아차 싶었다. 이 조그마한 화장실이 그분의 유일한 휴식공간이었던 것이다." (인권감수성을 깨우는 54개의 공감 <휴먼 필> 중)

 

이 일화는 특별하지 않다. 지금을 사는 청소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이처럼 이들은 일터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일해야 했다. 지난 15일 오후 4시 30분,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는 이런 청소노동자들의 권리선언이 있었다. 이 권리선언은 '제3회 청소노동자 대행진'(아래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빛을 발했다. 이 권리선언의 주제는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였다. 참가자들은 밥과 장미로 상징되는 청소노동자들의 권리를 외쳤다.

 

청소노동자들이 한 데 모인 날

 

지난 2010년부터 매년 청소노동자들과 대학생, 시민사회는 함께 이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번 청소노동자 행진이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열린 이유는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정문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현재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노조(홍익대 분회)는 홍익대학교로부터 청소노동자 관련 권한을 위임받은 용진실업으로부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 이유는 단체 교섭시 하나의 노조만 사측과 협상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교섭창구단일화'법에 따라 조합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홍경회' 노조가 단체교섭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섭창구단일화'법은 원래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자율성을 보장하는 복수노조 법과 같이 제정됐다. 따라서 본래 이 법의 본래 취지는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측의 입장에 동조하는 듯한 노조가 등장해 단체교섭권을 독점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노동현장에선 오히려 위와 같이 노동권이 침해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같은 문제는 비단 홍익대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대학교에서도 벌어져 왔다. 때문에 많은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됐다. 그리하여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청소노동자들이 인식을 같이 하면서 각 대학의 청소노동자이 하나로 힘을 합치기 위해 청소노동자 행진에 모이게 됐다.

 

"청소하는 사람들이니까 빗자루 들고 나왔지"

 

청소노동자 행진 오후 4시부터 홍익대 정문 앞에는 무대가 설치되고 수많은 청소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후 5시가 되자 홍익대 정문 앞은 청소노동자들과 이를 응원하기 위해 참석한 시민들, 그리고 대학생 800여 명으로 가득 찼다. 젊은이들로만 넘치는 줄 알았던 홍대 앞에서 아줌마 부대를 중심으로 하는 청소노동자 행진이 시작된 것.

 

이번 청소노동자 행진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광경이 연출됐다. 행진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보통 집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빗자루들. 청소노동자들은 보통 집회에서 쓰는 손 푯말이 아니라 빗자루를 손에 쥐고 있었다.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나순희씨는 "우리는 청소하는 사람이니까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며  "빗자루에 붙여진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옆에서 이를 보던 대학생 김태환씨는 "대학교 들어오면서 빗자루를 본 적이 거의 없어 대학교에서는 빗자루를 안 쓰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며 "빗자루를 보며 청소노동자들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항상 빗자루질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집회는 청소노동자 구성원 대다수가 아주머니들이라는 특성에 따라 구성진 트로트와 흥겨운 율동, 그리고 아주머니들의 솔직담백한 입담으로 구성됐다. 집회 분위기는 유쾌하고 흥겨웠다.

 

구성진 관광버스 춤과 분홍 풍선

 

탈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 청소노동자들은 관중을 압도하며 관광버스 춤을 췄다. 그러자 앉아 있던 청소노동자들이 흥에 겨워 함께 일어나 관광버스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자 행진에 참가한 대학생 몇몇도 트로트 음악에 맞춰 무대 앞에 나와 청소노동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같이 춤을 췄다. 대학생 김훈녕씨는 "집회에 온 게 아니라 관광버스에 탄 것 같다"며 "청소노동자들이 이렇게 트로트를 흥겹게 즐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홍익대 정문 앞에서 간단한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라는 구호가 적힌 분홍색 풍선을 들고는 홍익대학교 본부로 향했다. 본부 앞에서는 "용진실업 각오하라" "비정규직 철폐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풍선을 하늘로 날리기도 했다. 이어 '홍익대 총장은 용역업체를 통해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한 만큼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중재에 적극 나서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번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주목할 점은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청소노동자 행진에 참가한 대학생들의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참가 대학생들은 이번 행사 준비과정부터 준비휘원회(트위터 : @babnrose2012 / 페이스북 : facebook.com/babnrose2012)를 구성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준비위원회는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대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의 '인증샷' 놀이를 제안했다. 이 '인증샷'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꿈은 무엇이며, 자신이 왜 청소노동자 대행진에 참가하게 됐는지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참가자들이 올린 인증샷의 내용을 보면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등의 주제부터 '쌍용차 문제 해결' '밥과 장미' 등의 다양한 구호들이 담겨 있었다. 김수연씨는 "우리가 다니는 학교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일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집회에 참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홍익대 내에서도 홍익대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추는 '불빛'이라는 단체가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

 

"몸 힘든 건 괜찮아, 근데 마음은..."

 

행사가 끝난 뒤, 여러 대학에서 온 청소노동자들과 참가 대학생들은 각 대학별로 짝을 지어 함께 저녁을 먹었다. 홍대 근처에는 아주머니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별로 없어서 기자가 동행한 일행은 몇 번을 헤매다 겨우 한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좁은 장소에 10명이 넘는 일행이 한 번에 앉다 보니 학생들과 청소노동자 분들이 합석하게 됐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잘 몰랐던 학생들이었지만, 아주머니들은 살갑게 대해주자 각 테이블마다 이야기꽃이 피었다.

 

청소노동자 김옥자씨는 "몸이 힘든 건 참을 수 있겠는데, 마음이 힘든 게 참 참기 힘들다"며 "올해는 1월 1일 날 쉬고 그 다음날 일하러 내 구역에 갔더니 떡하니 다른 사람이 내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의적으로 통보도 없이 구역이 바뀌고, 올해 초 임금 협상을 앞두고 있었던 사측의 행위들을 이야기했다.

 

청소노동자 이귀숙씨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져서 이제 휴식공간도 생겼지만, 사측과 가까운 노조가 등장하면서부터는 2개였던 휴식공간이 하나로 줄었다"며 "다행히 하나 남은 휴식공간마저 없애지는 않았지만, 자기들 마음대로 구석진 곳이나 옥상으로 옮긴다"고 말했다. 갈수록 복지가 후퇴되고 있는 처지를 꼬집은 것. 또한 이귀숙씨는 "점심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인데, 각자가 끝나는 시간이 다르고 취사실이나 식당이 없다보니 매번 도시락을 싸와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의 식사 자리에서는 평소 학생들이 알 수 없었던 청소노동자들의 숨은 이야기가 오갔다. 

 

대학생 이혜경씨는 "제가 이분들 덕에 편하게 학교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면, 다른 대학생들도 청소노동자들의 삶에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비춰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손태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청소노동자 , #대학생, #홍익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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