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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2일 개교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한 서울대 정문에 조명이 설치 돼 아름답게 변신했다.
 2006년 10월 12일 개교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한 서울대 정문에 조명이 설치 돼 아름답게 변신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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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XX 내가 내 실력, 내 노력으로 입학한 학교가 사회에 '악' 영향을 미친단다. 가만있을 거 같냐?"

위 내용은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의 일부분이다. 도대체 서울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 학생은 분노하는 걸까? 그렇다. 바로 최근 벌어진 민주통합당의 '국공립대 네트워크' 공약, 사실상 서울대 폐지에 해당하는 정책 때문이다.

위 구절은 '서울대 폐지론' 논란에 대한 학생들의 입장을 압축적이면서 솔직하게 잘 드러내준다. 이 글 말고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그리고 학교 커뮤니티 등에는 위의 글과 비슷한 취지의 글들이 수도 없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직접 만나서 얘기할 때도 대부분 서울대생들은 비슷한 반응이었다. '우리가 정치인들 실험대상이냐' '내가 어떻게 이 학교에 들어왔는데' '학교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로 가?' 등의 생활과 밀접한 반응들부터 '연고대가 제2의 서울대가 될 거다' '경쟁은 필연적이고, 학벌은 필요악이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면 결국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거다' 등 담론적이고 철학적인 반응들까지, 서울대 폐지에 대해 반대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들에 대해서 서울대 학생들의 이기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학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들의 제 밥 지키기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단순히 매도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울대 폐지와 관련된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서울대 학생들의 반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들의 반응이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은 아니다. 이유는 이 정책을 입안한 민주통합당이 철저히 교육의 '공급자' 입장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은 정책 입안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민주통합당의 공약은 기성 정치인으로서 오로지 정책 입안자의 관점으로만 만들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방법적으로는 비민주적이며 폭력적으로까지 이루어진 측면이 있고, 내용적으로도 진정성과 구체성 그리고 현실성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단체에 애착이 있다.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면 어떤 단체이든지 간에 집단행동을 하려고 한다. 이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 자체로서 욕할 문제는 아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집단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라고 있는 게 바로 정치다. 따라서 정치인은 자신이 내는 정책이 그 정책의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반영하면서, 전사회적으로 봤을 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법인화는 방관... 민주통합당 자격 있나

하지만 이번에 민주통합당에서 발표한 '국공립대 네트워크' 공약은 어떠했는가. 지방 유권자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과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제기되었다. 이런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이번 정책 입안은 정치의 기본적인 정의를 지켰는가라는 측면에서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이번에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서울대 재학생, 서울대 졸업생 그리고 수많은 서울대 준비생들의 입장에 서서 검토해보았을까. 그랬더라면 이런 식으로 추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서울대 재학생 입장이 된다면 이 정책을 처음 들었을 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 대부분의 서울대 학생들은 입학 때부터 내 의지와 관계없이 정치적인 이유들 때문에 학교가 계속해서 바뀌어 온 것에 대한 아픈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서울대 입학 전부터 정권에 따라 매번 바뀌는 '입시 제도'에 시달려왔던 이들이기도 하다.)

2011년 들어 서울대학교 본부 측은 여당의 강력한 지원 아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서울대 법인화' 추진을 밀어붙였다. 이에 학생들은 투표 결과 80%가 넘는 압도적인 반대와 2000명이 넘는 학생이 참여한 비상총회 성사로 대학의 기업화를 초래하는 '법인화'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사 표시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날치기 처리되면서 결국 올해 초 서울대가 '국립대'에서 '법인국립대'로 바뀌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 2011년 6월 19일 오후 법인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명동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지난 2011년 6월 19일 오후 법인화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명동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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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처럼 학내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학교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과-학부제 문제가 그랬고, 과/반 간의 연결 문제가 그랬고, 특히 추진되진 않았지만 경인교대와의 통폐합 문제 그리고 부설중·고등학교 소유권 문제가 그랬다. 이처럼 서울대 재학생들은 입학하면서부터 정치권의 영향 아래 지속적으로 학교가 이리저리 바뀌는 경험을 많이 당하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큰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엔 아예 학교를 없애겠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해당사자의 의견 수렴 없는 하향식 발표는 결국 정책의 실현 여부의 핵심이 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과연 서울대 학생들 대다수의 반대가 있는 상황에서 정책 실현이 가능할까? 리얼미터가 지난 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폐지에 대한 반대의견은 55.4%로 찬성의견 15.2%를 압도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통합당이 기대했던 여론조차도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이해 당사자와의 충분한 토론도 없이 어떻게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인가. 총론이 좋다고 해서 각론까지 좋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통합당의 진정성과 내용의 구체성 역시 의심되는 대목이다. 민주통합당은 법인화 추진 당시 적극적인 반대가 아닌 침묵자의 위치에 서있음으로서 '대학의 기업화'를 추진한 데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랬던 정당이 1년도 안돼서 완전히 반대되는 정책을 들고 나왔을 때 정말 이 정책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유권자를 의식한 포퓰리즘성 정책인지 학생들로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책의 내용도 철저히 '공급자' 중심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정책 추진 뒤 서울대 재학생들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을 뿐더러 재원 마련에 대한 대책도 많이 부족하다.

'인서울'과 '지잡대'... 서울 집중 고민해봐야  

하지만 이번 논쟁이 전혀 의미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바로 서울대 학생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학벌에 따른 차별', '교육의 공공성', '지방 균형 발전'에 대해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 기회에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담론들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 학생이라고 해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입시 '전쟁'의 승리자들 또한 피해자다. 서울대에 합격한 후 그 다음날이 설날이었다. 금의환향하는 기분으로 큰집과 외갓집을 찾아갈 때 그 설레던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설날 3일 동안 내가 친척들한테 들은 얘기라고는 "과는 어디로 갈거니? 당연히 경제나 정치 쪽으로 가는 거지?(내가 선택한 과는 불행히도(?) 역사교육과였다.)", "이제 고시 준비해야지.(임용고시도 고시라고 답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울대 나온 사람이 있는데...(전형적인 엘리트 코스...)". 재수해서 아예 친척집도 못 찾아갔던 '입시전쟁'의 진정한 피해자인 내 친구들에 비해 나는 행복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 또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보다는 '승리자'라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대놓고 말 못하고 속으로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훨씬 많았다. 이처럼 단편적인 예 뿐 아니라 패배자에게는 한 번의 패배로 인생에 걸친 자괴감과 열등감을 심어주고 승리자들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구속과 과도한 부담감을 지우는 지금의 학벌 구조는 모두를 위해서 폐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지방 균형 발전'과 '교육의 공공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순위에서 서울대 다음은 경북대 부산대 등 지방 거점 국립대가 차지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SKY가 자리 잡더니 2000년대를 넘어서서는 '인서울(in서울)' '지잡대(지방 잡대학)'등의 단어가 생겨났다. 이러한 구조는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라는 점에서 지방 균형 발전을 해치고 있고 서울대 빼고는 상위권 대학이 모두 사립대라는 점에서 교육의 공공성 측면을 저해하고 있다. 내 주변에도 지방 거점 국립대랑 서울에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이점이 없는 사립대를 붙었는데 주저하지 않고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싼 등록금을 주고 서울로 가는 친구, 지방대 다니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 가려고 반수 하는 친구 등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일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학벌 구조 폐지', '지방 균형 발전', '교육의 공공성 강화' 등 개인의 자아실현과 기회의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합리적이고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진정으로 서울대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학생들은 매학기 세금으로 등록금의 30% 이상을 사회로부터 지원받는다. 그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서울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누리고 있다. 똑같은 동아리 활동을 해도 서울대에서 하면 기업에서 지원이 더 잘 오고, 국제 대회에 나갈 가능성도 더 높다. 멘토링이나 과외, 장학재단 등 이곳저곳에서 비교적 쉽게 돈 벌 수 있는 수단도 많다. 한마디로 사회적 특혜를 누리는 집단이다. 따라서 서울대 학생이라면, 이번 논쟁에서 우리 사회 전체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태도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사회로부터 갖가지 특혜를 누리는 서울대 학생으로서 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인 동시에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서울대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 프리덤 2기 활동 중인 손태영입니다.



태그:#서울대 폐지론, #국공립대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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