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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의 남자> 포스터
 <인현왕후의 남자> 포스터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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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양반들이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라는 건 완전 편견이야. 그 땐 일부다처에 기생들도 있었고. 지금보다 여자를 잘 알면 잘 알았지 몰랐을 리가 없잖아?" - <인현왕후의 남자> 5편, 최희진(유인나 분)의 대사 중

아마도 이런 영감에서 출발했을 드라마가 나왔다. 케이블 채널 tvN의 수목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다. 집에 있는 TV에는 공중파만 나오기에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하는 드라마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이 드라마는 사극이라 다시보기를 통해서 보기 시작했다. 역사교사인 나는 새로운 사극이 시작되면 '저거 혹시 수업자료로 쓸 부분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그런데,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타임슬립(time slip) 드라마였다. 수업용으로는 쓸 것 같지 않기에 받아둔 것만 보고 가볍게 끝내려 했는데, 두 편을 다 보기도 전에 여주인공 최희진(유인나 분)의 말처럼 "꽂히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드라마가 케이블 채널이라는 한계로 조용히 끝나게 될까 안타깝고 걱정스러워 이 기사를 쓰게 되었다.

타임슬립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고구려라는 소재가 유행할 때는 고구려 드라마가 쏟아지고, 한때 드라마 남자 주인공은 모조리 재벌 2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타임슬립인가 보다. SBS에서 방영 중인 <옥탑방 왕세자>, tvN의 <인현왕후의 남자> 외에도 <신의>(SBS, 8월 방송예정), <타임슬립 닥터진>(MBC, 5월 26일 첫방송) 등도 방영을 앞두고 있다 하니, 당분간은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둘러싸여 지내야 할 것 같다.

타임슬립이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사람이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한다. 이것이 정말 존재하는 현상인지, 사기꾼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에 불과한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 흔히 등장하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한 설정이다.

재벌 2세 남자 주인공도 신물 나고, 퓨전 사극도 식상해 지니 이번에는 우르르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로 몰려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소재가 얼마나 신선한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식상한 소재를 가지고라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얼마나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작품을 만들어 내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tvN의 <인현왕후의 남자>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매력적인 조선 선비, 우리 조상님

<인현왕후의 남자>
 <인현왕후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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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가을, 드라마 <다모>가 방영되었을 때 내가 그토록 그 드라마를 좋아하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가, 조선시대의 선비가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현재의 여성들이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을 한 남성에게 가슴 설레며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드라마를 시작으로 조선시대도, 조선의 남성들도 멋지게 그려졌다. <공주의 남자> <성균관 스캔들> 등 인기리에 방영된 많은 사극 속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에서 살아가는 선비로서 그 속에서 매력적일 뿐이었다. 만약 그들이 현대로 온다면 어떨까?

<인현왕후의 남자>에서는 바로 그런 조선의 선비, 조선의 가치관을 가치고 조선의 예법에 맞게 행동하는 선비가 현대에 온다. 조선 선비 김붕도(지현우 분)는 몸에 밴 유교식 가치대로 행동하고, 유교 고전을 인용하면서 최희진(유인나 분)과 대화를 나눈다. 그런 모습이 그 어떤 현대적인 작업 멘트보다도 더 최희진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부분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 시청자에게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직업병 때문인지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근현대를 거치며 유교 가치관도 조선시대의 모습도 모두 구시대의 퇴물로만 치부되었는데, 이제는 다시 사면되고 복권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인현왕후의 남자>의 조선 선비 김붕도(지현우 분)는 조선시대와 유교적 가치의 긍정적인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논어>를 읽어보면 공자는 예의와 겸손을 강조했다. 다른 곳에 가면 그 곳의 예법을 따르고, 시대가 달라지면 달라진 시대의 풍속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직접 읽어보니 우리가 유교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 즉 권위적이고, 결코 변하지 않는 고집불통일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랐다.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은 과거시험을 보면 낙방하거나, 장원급제를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과거합격과 장원급제가 같은 말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다르다. 3년에 한 번씩 치러져 수 천 수 만 명이 보러 오는 과거 시험에 33명만 합격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1등으로 합격하는 것을 장원급제라 말한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수능시험 전국 1등이거나,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김붕도는 그 장원급제를 열아홉 살에 해 냈다고 하니 대단히 총명한 천재라 할 것이다.

그런데, 김붕도는 이런 수재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는 바보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며 뭐든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조선으로 돌아가서는 조선의 방식대로 살아가지만, 현대로 오게 되면 현대적인 방식을 묻고는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른다. 공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르게 배우고 실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탄탄한 대본, 설득력 있는 이야기 구조

조선시대 전 기간 내내 남자들의 평균키는 161cm 정도, 여자들의 평균키는 149cm 정도였다. 지금처럼 평균키가 커진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였다.
 조선시대 전 기간 내내 남자들의 평균키는 161cm 정도, 여자들의 평균키는 149cm 정도였다. 지금처럼 평균키가 커진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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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는 기본적으로 여성 시청자들을 겨냥한 로맨스 드라마다. 냉정하게,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따지면 비현실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남성들의 평균 키가 161cm 이고 여성들의 평균 키는 149cm 정도였기에 실제 키가 165cm인 최희진(유인나 분)이 김붕도(지현우 분)의 귀를 감싸 끌어내리며 입맞출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김붕도가 상투를 튼 채로 비니를 썼기에 앞머리가 예쁘게 비니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혼자서 화장실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듯 고운 머리 모양이 나오는 것도 불가능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면은 너그럽게 넘길 수 있게 드라마의 대본은 탄탄하고, 이야기 구조는 설득력이 있다.

조선 선비 김붕도는 21세기 사람의 옷도 혼자서 입고, 아라비아 숫자도 추리를 통해 알아내며, 전화도 스스로 건다. 이 과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열아홉 살의 나이에 장원급제한 수재라는 설정을 한 것 같다. 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가 이 모든 일을 스스로 해 내는 극의 전개가 억지스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중국어 가이드북을 손에 넣고 읽었기에 그가 21세기 대한민국의 사정을 알게 되고 희진에게 전화까지 걸 수 있었다는 설정도 대본이 참 탄탄하다는 생각을 더하게 한다.

21세기의 옷을 입고, 유교경전에서 방금 복사해 온 것 같은 말을 하는 조선 선비. 해맑은 미소의 소년 같은 지현우의 모습이 묘하게도 작품과 배역에 리얼리티를 주고 있다.
 21세기의 옷을 입고, 유교경전에서 방금 복사해 온 것 같은 말을 하는 조선 선비. 해맑은 미소의 소년 같은 지현우의 모습이 묘하게도 작품과 배역에 리얼리티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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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김붕도는 예의 바르면서도 부드러운 사람이다. 여주인공 최희진과의 처음 만났을 때에는 미래로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했지만, 그 다음 번부터는 논리적이고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말로 대화를 나누어 여주인공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 성격의 남자였기에 처음에는 믿지 못했던 여주인공도 그를 점점 신뢰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점잖고 예의바르고 똑똑한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그가 사라져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기에 애틋해진 최희진이 조상님인 김붕도에게 '꽂히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이미 절반정도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주인공들도 대본을 읽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 '인(因)'으로 하여 미래의 사건 '과(果)'가 실에 구슬 꿰듯 연결이 되는 치밀한 대본에 반해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쉬운 옥의 티

대본이 탄탄한 만큼, 전반적으로 <인현왕후의 남자>는 역사 고증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김붕도와 우의정 민암이 윤월을 풀어주는 문제로 이야기를 할 때, 김붕도가 투전에 빗대어 민암의 기를 꺾는 장면이 있다. 투전은 실제로 조선 숙종 대에 들어와 유행했던 노름이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옥의 티가 눈에 띈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 특히 아쉽다.

제1회에서 실제 장희빈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의 자막이 "장옥정 희진 장씨, 당시 중전"라고 써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최희진'이라 이런 실수가 나온 것일까? 제4회 도서관 장면에서는 1694년이라는 자막이 나와야 할 숙종 20년에 1964년이라는 실수가 나왔다. 그것도 두 번이나! 재방송본이나 해외 수출본에서는 꼭 수정했으면 한다.

옥의 티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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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에서 김붕도가 현대로 두 번째 건너왔을 때 궁궐 안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내 자리도 아직 있다며 근정전 앞 품계석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비춘 품계석은 화면을 정지시켜 자세히 보니 정4품이었다. 아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겠지만 이 또한 아쉽다. 홍문관 교리는 정5품 벼슬이기 때문이다.

기생인 윤월이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리랑이 정확하게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에서 정립된 것이라고 한다. 다른 가야금 곡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가장 큰 오류는 숙종 시대에 왕도 신하들도 경복궁 안을 활보하고 다닌다는 점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1860년대에 흥선대원군이 억지로 중건한 경복궁이다. 숙종 시대라면 당연히 숙종, 장희빈, 홍문관 교리, 모두 창덕궁에 있어야 한다. 창덕궁 촬영 허가를 받기 어려워서 경복궁으로 바꾼 것인지, 경복궁이 더 극적 효과가 높을 것 같아 그리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전공자 입장에서는 그저 아쉬울 뿐이다.

케이블 채널 드라마라서 중간에 두 번이나 광고가 나온다는 점이 짜증스럽고, (제발 공중파 드라마는 이것을 본받지 말기를 바란다) 1시간 넘게 방영되는 공중파 수목드라마와는 달리 45분이라는 짧은 분량에 겨우 16회로 막을 내리는 점은 감질난다. 그렇지만 이런 고품질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는 매우 칭찬할 만하다고 본다. 드라마의 마지막회까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태그:#인현왕후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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