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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윤 기사를 썼을 때, 감사하게도 독자 몇 분께서 원고료를 주셨다. 그중 한 분이 가수 이무진에 대한 기사를 부탁하셨는데, 죄송하지만 '먹튀'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가수 이무진의 노래를 몇 곡 들었지만, 별 느낌을 받지 못했을 만큼 음악 문외한이기 때문이었다.

[관련기사 : '30호' 이승윤 영상 돌려 보다 발견한 놀라운 사실]

그런데, 며칠 전 티저 영상으로 공개된 <과제곡>을 듣고, 서울예대 공연영상으로도 보고, 계속 듣다가, 드디어 기사를 쓰고 싶어졌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노래 <과제곡>
 
서울예대 공연영상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기타를 들고 있는 학생은 수면바지를 등교룩이라며 입고 있다.
▲ 서울예대 공연영상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기타를 들고 있는 학생은 수면바지를 등교룩이라며 입고 있다.
ⓒ 이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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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곡>은 가수 자신의 경험을 담은 스토리가 있는 노래이다. 교수님이 1주일 안에 할 과제를 다섯 개나 내주셨는데, 그중 두 개는 창작 과제란다. 문제는 다른 과목도 만만치 않은 양의 과제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른 과제를 먼저하고 창작 과제는 미루다가, 밤새워 간신히 다 했다는 내용이다. 뒤에 반전도 있지만, 듣지 않은 이를 위해 스포는 하지 않는다.

이 곡은 실제 과제로 제출했던 곡이라고 한다. 서울예대 학생들의 공연을 위해 편곡도 하고 다듬기도 했겠지만, 이렇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이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로 만들었다는 점이 놀랍다. 이무진은 가창에 좀 더 집중하는 가수인 줄만 알았는데, 이 곡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싱어송라이터임을 알았다.
  
이십 년 넘게 교직에 있다 현재는 2년 동안 전업 대학원생이 되었다. 다시 캠퍼스에 왔기에 감사하지만, 하루하루는 과제를 받고 제출하고 다시 받고 제출하는 일상으로 채워진다.

당장 이번 주도 오늘 새벽 간신히 가장 부담스러운 과제 하나를 제출했고, 오늘 학교 가서는 논문 두 편을 읽고 글을 써야 하고, 그다음에 또다른 논문 두 편을 읽고, 끝나면 일본어 논문을 읽고 발제문을 작성해서 발표해야 한다. 그래도 이 정도는 '인간적인 양의 과제'다.

전업 대학원생이 되었기에 꼭 듣고 싶었던 학부 강의 두 과목을 청강하고 있다. 두 과목 모두 매주 2~3편의 논문을 읽고 요약과 문제 제기를 담은 글을 제출해야 한다. 한 과목은 청강 조건이 과제물 제출이라 나도 하고 있는데, 머리가 나쁜 나는 논문 한 편 읽는데 반나절 이상이 걸리고, 요약하고 문제 제기하는 글을 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물론 수업을 듣는 학부생에게는 성적에 반영되는 과제물이다. 한 학생은 두 과목을 같이 듣고 있으니, 매주 4~6편의 논문을 읽고 과제물을 제출하는 셈이다. 여기에 적어도 4~5 과목은 더 수강할 테니 과제 양은 더 많을 것이다.

<과제곡>을 계속 듣던 어느 날 내게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과목은 원래 무시무시한 과목이었다. 저번 학기까지는 매주 3편의 영어 논문을 읽고, 참고문헌까지 찾아 읽은 후, 비교 종합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써서 일요일 밤 12시까지 제출했다고 한다.

이번 학기만 영어 논문은 처음 두 주 동안 각각 한 편씩으로 줄였고, 그다음 주부터는 한국어 논문만 읽고 써서 제출하면 된다. 교수님께서는 매우 자비를 베푸셨으나, 영어 논문이건 한국어 논문이건 철학적 논쟁을 기반으로 한 이 논문들은 그저 어렵기만 하다.

2/3 정도 미리 해 두고, <과제곡> 가사처럼, 다른 과목의 '또 다른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기에,' 1/3은 '미루고 미루다 하루 전날'인 일요일 하루를 꼬박 쓰고도 모자라 월요일 새벽 3시 반까지 과제를 했다. 그리고 이무진이 왜 '교수님 죄송합니다'를 그토록 외쳤는지 절절하게 공감했다.

이무진은 '이런 가사를 썼기에' 죄송하고, '솔직히 대충 만들었네'라서 죄송하다고 했는데, 나는 '이런 과제를 작성했기에' 죄송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무진은 '이런 가사'를 쓰고 '대충' 만들었다는 데도 대학생의 심금을 울리는 곡을 만들었고,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남이 읽을까 부끄러운 과제물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읽으셔야 하니 진심으로 교수님께 죄송했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짠하다
 
 이무진 <과제곡>
 이무진 <과제곡>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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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이 아닌 상태에서 <과제곡>을 들었다면, 재미있는 노래라는 생각만 했을 것 같다. 전공에 따라 달랐겠지만, '라떼는 말이야', 대학 다닐 때 많은 과제로 힘들어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대학 수업은 대개 강의를 듣고 시험만 보면 끝났다. 논문과 책도 읽었지만, 매주 과제에 파묻혀 허덕인 기억은 없다. 그래서 예전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요즘 대학생들의 힘든 학교생활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늦깎이일망정 대학원생이 되어 보니, 힘들어하는 대학생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20대가 공정에 민감하다는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여러 번 들었다. 젊은 세대가 공정에 민감하다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안타까운 이유도 포함되어 있음을 느낀다. 힘들게 고생하며 하나하나 쌓아왔기에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되면 더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젊은이가 맞닥뜨린 불공정은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지난 이십몇 년간의 고생이 부정당하는 경험일 테니 말이다.

중고생을 보면 가끔 짠하다. 방과 후에 학원도 가고, 독서실에서 밤늦게 공부한다. 수행평가 때문에 과제를 내주면 군소리 없이 해 오고, 조별 과제도 토론도 열심히 한다. 생활기록부에 쓸 봉사활동 시간도 채워 오고,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은데 여러 권 읽고 독서록도 써 온다. 이렇게 힘들게 고생했어도 대학만 보내면 이 어린 것들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다.

몇 년 전, 교생선생님에게 대학생도 봉사 점수를 채워야 졸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라떼는 말이야' 고등학교 때 죽어라 공부하고 대학 가서는 여유를 갖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지금 대학생들은 여전히 연장된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논문을 읽으며 제대로 공부하고,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과도한 학습량에 눌려 여유를 갖지 못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게다가 교수님들이 과제량을 줄여준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팍팍한 세상을 바꿀 방법도 보이지 않아 더 안타깝다.

인간적인 양의 과제를 달라, 쫌 
 
 '과제곡' 영상 화면 캡처
 "과제곡" 영상 화면 캡처
ⓒ 유튜브 이무진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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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진의 <과제곡>을 들으며, 미래에 21세기 초 대학생의 팍팍한 일상을 보여주는 사료(史料)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스트레스를 받아 폭발할 상황에 몰려가며 만든 곡일 텐데도, <과제곡>은 경쾌한 선율에 대학생이라면 공감할 가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인간적인 양의 과제를' 하는 대학원생도 계속 듣고 싶어진다.

유튜브 이무진 계정에 올린 서울예대 공연 영상 버전 속 설명 글에 '등교룩 입은 사람'이라며 함께 연주한 이들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그 옷은 잠옷으로 입을 법한 트레이닝복 바지와 진짜 수면 바지이다. 공연을 위한 콘셉트였겠지만, 밤새 과제하고 깜박 잠이 들었다가 후다닥 등교하는 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아 애잔하다.

해결책도 없이 힘들다는 이야기만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다수가 공감하고 이해해야 해결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이 곡이 사료로 소개될 미래에는 옛날에 그런 시기가 있었다고, 사회가 함께 노력해서 세상을 바꾸고 학생들은 '인간적인 양의 과제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다고, 그래서 여러분도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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