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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2km 길이의 바위 하나로 길게 이루어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원 왼쪽에 항구 시설이 보인다.
 약 1.2km 길이의 바위 하나로 길게 이루어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원 왼쪽에 항구 시설이 보인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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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MB정부의 폭탄을 맞았다. 3월 7일 오전 11시 20분, 해군기지 조성을 위해 강정마을 앞바다의 명물 구럼비 바위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국방부의 진두지휘 아래 적어도 수 개월간 계속해서 MB(Military Bomb)를 쏟아 붓는단다.

'민관 복합형 관광 미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제주 해군기지 공사는 '민'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 '관'이 막무가내로 첫 발을 떼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웠을지도 모를 폭음과 함께. 그러나 4대강 사업 강행에서 이미 지켜봤듯 MB정부는 까짓 것 명물 바위든 환경이든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과연 그럴까? 다른 곳도 아닌 제주도인데. 더욱이 MB 스스로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고 자랑했던 제주특별자치도인데도.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 이끌었던 MB

시간을 거슬러 가 보자. 지난 한 해 제주도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에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이름을 올리더니, 이명박 대통령을 시작으로 박희태 국회의장이 투표에 참여하며 제주도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범국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행정부 수장과 입법부 수장이 '나를 따르라'고 한 뒤로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대통령부인 김윤옥씨 범국민추진위 명예위원장 수락, 김황식 국무총리 범부처 차원의 참여와 지원 강조,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와 업무협약 체결, 국회 만장일치로 지지결의안 채택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시를 선두로 하여 국방부, 경상남도, 전라남도, 경기도, 울산시 순으로 자치단체와 업무협약이 물 흐르듯 이뤄졌다. 충청도와 강원도만 이름이 빠진 건 왜일까? 그리고 환경부면 몰라도 국방부는 또 왜 끼었을까?

아무튼, MB정부가 손들고 나서서 전화 투표를 독려한 결과, 지난 2011년 11월 12일 '경축!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이라는 소식이 국내외에 떠들썩하게 전해졌다.

제주도청 홈페이지 소개 글.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과 세계7대자연경관선정 쾌거를 전하고 있다.
 제주도청 홈페이지 소개 글.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과 세계7대자연경관선정 쾌거를 전하고 있다.
ⓒ 제주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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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환경올림픽인 세계자연보전총회 개최하는 제주도

다시 시간을 되돌려 3월 10일 토요일,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다가 어이가 없어 피식 웃다가 하마터면 밥알을 뱉을 뻔했다.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 제주 9월 6일부터 15일까지."

놀랍게도 구럼비 바위가 신음하고 있는 강정마을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제주도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세계자연보전총회를 개최한다는 홍보 광고였다.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환경 분야 회의이다. 현재 180여개 국가의 정부기관, 1200여개 NGO(비정부기구), 수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 지구촌의 환경문제를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총회 유치를 위한 우리나라 정부와 제주도의 노력은 대단했다. 총회 개최지 선정은 국제연합(UN)의 옵서버(특별 참석) 자격을 영구히 가지고 있는 국제비영리단체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맡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11월 환경부장관 명의로 세계자연보전연맹 사무총장에게 총회 제주도 유치 의향서를 발송했다. 2009년 7월부터 9월까지 제주도를 중심으로 130만 명이 개최를 지지하는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이홍구 전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범정부유치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26일 스위스 글랑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 이사회에서 이만의 환경부 장관과 김태환 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유치를 확정지었다.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 제주' 홈페이지는 "세계인의 보물섬, 살아있는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제주에서 지구촌 환경올림픽인 '세계자연보전총회'가 열린다"며 이번 총회의 의미를 '총회조직위원회 위원장 이홍구' 명의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지구차원의 주요 환경문제의 해결을 주도하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의로, 이번 총회는 1948년 최초의 회의가 개최된 이래 60여 년의 총회 역사상 처음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열리게 됩니다."

총회 조직위원회는 이어 "세계는 지금 이상기온, 물 부족, 에너지 위기와 자원고갈 등 각종 환경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어느 누구도 환경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가 없다"며 제주도 유치 성공의 이유를 몇 가지 꼽았다.

"자연환경 보전에 대한 높은 인식, 환경에 대한 높은 국민 의식, 녹색성장에 대한 국가전략 우수,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연환경을 잘 보전한 모범적인 국가로 인식,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매우 아름다운 휴양·관광 도서."

세계자연보전총회 유치 이유 "자연환경을 잘 보전한 모범 국가"

오른쪽 A,B가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왼쪽 원이 세계자연보전총회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오른쪽 A,B가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왼쪽 원이 세계자연보전총회가 열리는 컨벤션센터.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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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세우려는 제주 해군기지 조감도. 왼쪽 상단에 기존 항구 시설이 그대로 보인다,.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세우려는 제주 해군기지 조감도. 왼쪽 상단에 기존 항구 시설이 그대로 보인다,.
ⓒ 한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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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이미 세계에서 유일하면서도 명예로운 훈장을 선사받은 바 있다. 국제연합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 의해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2002년),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년),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년) 등을 받았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의 대업을 달성한 것이다.

게다가 싫든 좋든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었고, 세계자연보전 총회까지 유치했으니 아마도 당분간 제주도가 보유한 자연환경 관련 기록은 깨지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지난 2010년 3월말 태어나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제주 화산선과 용암동굴(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응회구 등 3곳)'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가장 인상에 남은 곳은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인 8928m의 만장굴이었다. 안전을 위해 일부 구간만 공개된 만장굴은 생김생김이 수십만 년 전 생성된 용암동굴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동굴 벽면과 천장 등에 오랜 시간 용암이 흘러가며 만들어낸 물결 모양의 흔적은 사람의 힘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걸작이었다. 

그러나 제주도가 품고 있는 자연의 위대함은 제주도 전역에 걸쳐 있는 368개의 오름(화산체)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를 창조한 거대한 여신인 '설문대 할망'이 자신의 큰 키를 자랑하다 빠져 죽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전해지는 물장오리 오름을 들 수 있다.

오름은 작은 화산의 분화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화산 활동이 멈추었지만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등 인간의 만행이 잦아지면 육지(제주도 사람들은 서울, 대전, 광주, 부산, 대구 등을 육지라고 부른다)를 향해 분노의 화산을 뿜어낼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368개의 다연발 화산포를 쏘면서 말이다.

구럼비 바위에서 점화된 분노의 여론, 공사를 멈춰라

분노의 화산은 이미 구럼비 바위에서 굉음과 함께 점화되었다. MB정부를 향한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한쪽에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세계자연보전총회 유치를 위해 범정부 차원의 노력을 하고, 또 한쪽에선 그런 제주도의 천혜 환경을 정부가 앞장서 폭탄으로 파괴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 세계의 자연환경 전문가들이 제주도를 찾아온다는데, 벌써부터 제주의 구럼비 바위 폭파와 주민 폭행 장면을 매일 같이 CNN과 알자지라 등 세계 언론에 홍보할 필요는 없다.

화산 폭발은 반드시 그 징후를 보인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공권력 남용과 인권유린, 국민여론 무시 등 구럼비 바위에서 점화된 분노의 화산은 제주도를 출발해 가깝게는 30일 후 치러지는 4.11 총선에, 멀게는 9개월 후 진행되는 대선 한복판에 떨어지며 MB정부 심판을 겨냥할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분노의 여론에 불을 붙이는 해군기지 공사를 멈추길 바란다.


태그:#구럼비,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세계자연보전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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