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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최종 투표율이 발표된 직후, "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이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바람직한 서울시 복지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한번의 유일한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치게 돼 참으로 안타깝다"며 "사퇴 시기는 하루이틀 안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24일 저녁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최종 투표율이 발표된 직후, "투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이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바람직한 서울시 복지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한번의 유일한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치게 돼 참으로 안타깝다"며 "사퇴 시기는 하루이틀 안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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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실시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5.7%의 투표율로 끝났다. 주민투표법에 따라 투표함은 개봉되지 않았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주민투표 추진세력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과 야당 측 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조차 이번 주민투표에서 1/3 이상의 투표율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어떤 이변도 없었다. 최종투표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바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결국, 정략적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주도했던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여권 내부의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이 철저하게 패배한 것이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애초부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오세훈 시장의 대권을 향한 정치적 욕망 때문에 다음과 같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추진됐다.

첫째, 이번 주민투표는 심각하게 '불법'성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주민투표법에 의하면, '재판 중인 사항'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관한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 아니다. 둘째, 주민투표 발의 과정에서 '절차상의 하자'가 너무 많았다. 주민투표 발의 당시의 서명용지 문구는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였으나 최종 투표용지에는 '무상급식의 범위'를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 서명부의 불법 서명 사례도 정치사회적으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셋째, 무상급식 주민투표 용지의 문안 자체가 '부당'성 논란을 거세게 불러일으켰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소득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의 두 가지 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관계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의 쟁점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는 당연히 투표용지가 정략에 따라 매우 부당한 문안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센 비판과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무상급식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쟁점은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가난한 일부 학생만을 골라내서 선별적으로 급식을 제공할 것이냐, 아니면 소득과 무관하게 모든 학생들에게 보편적으로 급식을 제공할 것이냐'이다. 그런데 이번 주민투표의 투표용지에는 '단계적으로' 실시할 것이냐, '전면적으로' 실시할 것이냐 라는 문구가 대립적 쟁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서울시가 부당하게 잔꾀를 부리고 있는 것"이란 비판과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 의회나 서울시 교육청도 재정 형편에 따라 보편적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인데, 서울시가 '전면적'이라는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상대편을 급진적이고 무모한 세력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미 작년 8월에 확정한 무상급식 계획에서, '2011년에는 초등학교 전체, 2012~2014년에는 중학교 1~3학년에 대해 단계적으로 실시'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많은 서울시민들은 서울시가 채택한 주민투표 용지의 문안이 부당하다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부당성으로 인해 이번 주민투표가 동기가 불순한 "나쁜 관제투표"라는 시민사회와 야당의 주장이 크게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이번 주민투표의 실질적 쟁점은 '보편적 무상급식' 대 '선별적 무상급식'이었으며, 주민투표의 결과로 드러난 서울시민의 뜻은 '보편적 무상급식'을 재정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하라는 것이다.

복지 '성전'에서 패배한 오세훈, 하지만 웃는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은 왜 이렇게 정치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승산이 별로 없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했을까? 사실, 무상급식은 아주 작은 하나의 정책 사안일 뿐이다. 서울시 의회가 결정한 무상급식 예산을 그대로 집행할 때 서울시가 부담할 급식비 지원액은 695억 원인데, 이는 서울시 1년 예산 21조 원의 0.3%에 불과하다. 그런데 182억 원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시민사회와 야권의 반대를 뚫고 주민투표를 강행하였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적 욕망에서 비롯된 정략은 때론 상식적 사고를 비웃기 마련이다.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이라는 작은 정책 사안을 진보의 보편적 복지에 대항하는 보수의 선별적 복지라는 이념적 상징으로 키워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진보의 복지포퓰리즘을 타도하기 위한 보수의 성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는 패배하였으나 그의 정치적 욕망은 이미 상당 부분 충족되었다. 그는 무상급식이라는 작은 정책을 보수와 진보 간 '이념과 정책노선'의 대결로 몰아갔고, 끝내 세간의 정치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방식으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관철시켰다.

이번 주민투표에 참여한 서울시민 25.7%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오세훈 시장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민심이 떠나간 바로 그 마당에서 한바탕 정치놀음으로 '보수 세력의 결집'에 성공하였고, 보수의 확실한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7년 대선을 위한 정치적 교두보를 확실하게 마련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정치적 도박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이 그를 차세대 지도자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실패한 것은 그가 속해 있는 한나라당이다. 그로 인해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큰 곤경에 처하였다.

한나라당, 진보의 복지 프레임에 걸려들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저조로 무산된 가운데 25일 오전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란히 자리한 홍준표 대표와 유승민 최고위원이 각자 시선을 달리하고 있다. 주민투표에 대해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유승민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서울시민의 결정을 있는그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저조로 무산된 가운데 25일 오전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란히 자리한 홍준표 대표와 유승민 최고위원이 각자 시선을 달리하고 있다. 주민투표에 대해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유승민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서울시민의 결정을 있는그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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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욕망이 한나라당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먼저, 이번 주민투표는 무상급식과 복지정책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의 계파 간 갈등과 분란이 심화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장차 당내 대선 경선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이 사실상 '친 복지' 진영과 '반 복지' 진영으로 나누어질 공산이 커졌다. 둘째, 이번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을 진보의 정치 프레임에 가두어버렸다. 이번 주민투표는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놓고 여야가 벌인 일전이었는데, 이는 진보의 프레임이다.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무상급식과 선별적 무상급식이 정치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선거의 핵심쟁점으로 부각된 이후부터, 특히 민주당의 작년 10.3 전당대회 과정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은 일개의 정책 사안에 머물지 않고 급속하게 '보편적 복지'로 확장되면서 정치 담론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므로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의 정치구도는 이미 진보개혁진영의 정치 프레임이다. 오세훈 시장은 바로 이 프레임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한나라당은 여기에 갇혀 지금 정치적 곤경에 처해있다.

한나라당은 오세훈 시장에게 당을 어렵게 만든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자신이 속한 정당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 언제 그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당과 협의나 하였던가? 그가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결국 한나라당은 오세훈 시장의 주민투표를 돕기 위해 무모하게도 뛰어들었고,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한나라당 내의 친박진영과 소장개혁파 정치인들이 우려하고 반대하며 일정하게 선을 그을 것을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뉴 라이트 성향의 친 이명박 계 정치인들이 청와대의 뜻에 따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깊숙이 뛰어들었던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한나라당의 홍준표 대표는 당은 그저 도왔을 뿐이고 25.7%의 투표율은 "사실상 승리한 것"이라며 변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 보수와 중도와 진보가 각각 1/3정도를 점하고 있다. 그러므로 투표율 25.7%는 보수 유권자를 최대한 결집시킨 것으로 충분히 인정되며, 이것은 보수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오세훈 시장의 훗날을 위한 정치적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하여 정치적 곤경에 처하였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선별적 복지를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들의 결집에는 성공하였으나,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결국,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진보 유권자들과 같은 편에 서도록 함으로써 진보개혁진영의 정치 프레임에 스스로 갇혔으며, 보편적 복지가 대세로 굳어지도록 하는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나라당에게 더욱 불행한 일은 이러한 정치 프레임이 이후의 재보선과 내년의 양대 선거에서도 지속될 것이며, 한나라당은 여기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보편적 복지는 우리의 시대정신

이미 작년의 6·2지방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은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오랫동안 자유경쟁과 시장만능의 성장주의에 갇혀 있던 우리 국민이 이제 누구나 생애 전 과정에 걸쳐 소득(아동수당, 실업급여, 노후소득 등)과 사회서비스(보육, 교육, 의료, 요양)를 보장받는 '보편적 복지'가 제도화된다면 기꺼이 누진적 방식으로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한다.

2007년 대선 당시, 참여정부에 피로감과 실망을 느낀 많은 국민이 "부자 되세요"라며 장밋빛 성장주의를 내세우는 보수진영에 기대를 걸고 현 정권을 선택했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양극화의 심화와 만성적 민생불안으로 인해 그 때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각자도생의 시장만능주의가 우리의 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약 70%의 국민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미국식의 시장만능국가가 아니라 스웨덴식의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하길 원하고 있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50%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상징된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무상급식"으로 상징된 '보편적 복지'의 편에 섬으로써 지난해 6·2지방선거에 이어 보편적 복지가 우리의 국민적 요구이고, 보편적 복지국가가 우리의 시대정신임을 다시 한 번 잘 보여주었다.

보편적 복지는 행정비용을 줄여 거시적으로 효율적이며, 형평성과 사회적 평등 수준을 높여 사회통합을 가능케 하며, 공동체의 유대와 결속을 강화하고,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증대시킨다. 불확실성이 점증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보편적 복지를 통해 제도화되면, 우리는 사회적 위험에 굴복하거나 만성적으로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과 창의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보편주의는 복지와 경제의 동시적 발전을 보장하게 된다.

반면, 선별적 복지는 소득과 자산조사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내고, 이들에게 국가가 정한 '최소 복지'를 제공하는 체계다. 선별적 복지는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지닌다. 첫째, 복지 수혜자들에게 수치심과 인권의 문제를 야기한다. 둘째, 수혜자 선별을 위한 자산조사 그 자체가 많은 행정비용을 초래한다. 셋째, 그렇게 선별해낸 결과가 그리 공정하지도 않은데, 가령 하위 소득 50%까지 혜택을 준다고 선별 기준을 제시했을 때, 도대체 49%에 속한 사람과 51%에 속한 사람 간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한 쪽은 혜택을 받고 다른 한 쪽은 혜택을 못 받아야 하는가? 넷째, 우리나라는 소득과 자산의 투명성이 그리 높지도 않으므로 선별의 객관성을 담보하기도 쉽지 않다. 혜택이 큰 복지일수록 논란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선별적 복지는 수혜 대상자를 넓힐수록 제도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가난한 5%의 국민을 선별해서 복지 혜택을 주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으므로 기존의 정부 재정 범위 내에서 제도 운영이 가능하겠지만, 수혜의 범위를 30% 또는 50%로 확대하겠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에 따라 5배 이상 늘어난 소요 재정을 어떻게 조달한 것인가? 결국, 누군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런데 세금(이 경우에는 직접세)의 대부분은 중상층 국민들이 납부한다. 이들은 자신은 혜택도 못 보는 선별적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보다 수혜 대상자가 크게 확대된 선별적 복지는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결국, 보편적 복지가 정답이다. 누구나 복지 혜택을 누리고, 능력에 따라 누진적으로 세금을 더 내면 될 일이다. 복지의 수혜와 재원의 부담을 일치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이 선진복지국가의 기본적 운영원리이다.

보수정치세력은 그동안 경제와 복지를 '성장이냐 분배냐'의 대립적 이분법으로 구분하여, 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정치 프레임을 구축해왔다. 복지에 재정을 많이 투입하면 복지병만 유발하고 경제성장이 저해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 논리를 근거로 성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제를 고집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합은 경제 및 산업과 노동시장의 양극화, 고용불안정, 낙수효과의 부재, 사회적 배제와 민생 불안의 심화로 인해 이미 파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원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는 산업과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불공정성을 극복하려는 민주정부의 조정시장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를 넘어서는 보편적·적극적 복지체제의 통합적 구조물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규제, 누진적·연대적 조세, 적극적 재정 등의 정책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유능하고 책임성 강한 민주정부(복지국가)를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체제를 고수하며 "복지의 확충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기존의 '반 복지' 선진화 담론은 잘못된 것이다. 경제와 복지는 대립적 이분법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통합체이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복지국가 중에서 경제와 복지가 '상충하는' 대립적 이분법인 나라는 없다. 경제와 복지는 늘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나라에서는 복지도 함께 발전했다. 북유럽을 위시하여 서유럽 복지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들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는 조정시장경제와 보편적 복지를 유기적 통합체로 잘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선별적 복지의 미래, 미국을 보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민주당 여성지역위원장과 여성시의원들이 서울시의 주민투표에 대해 부자아이 가난하이 편 가르는 나쁜 투표라고 주장하며 주민투표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민주당 여성지역위원장과 여성시의원들이 서울시의 주민투표에 대해 부자아이 가난하이 편 가르는 나쁜 투표라고 주장하며 주민투표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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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경제와 복지가 상충하는 측면이 크게 존재한다. 경제는 신자유주의 성장체제를 견지하고, 복지는 선별적 복지체제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시장탈락자와 빈자들에게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에 재원을 많이 투입할수록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간주된다. 미국은 세금을 내는 계층과 복지혜택을 받는 계층이 뚜렷이 구분된다. 복지수혜와 재원부담의 분리현상이 특징인데, 이러한 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낮고 만성적 재정적자에 노출된다. 경제영역의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인해 시장에서 탈락하거나 주변화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므로 선별적 복지수요는 폭증하는 데 비해, 중상층의 조세저항으로 인해 복지를 위한 재원조달에는 한계가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미국이 1965년 의료보호제도(Medicaid)를 도입하였을 당시에는 보호 대상자가 전체인구의 약 5%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시장에서 탈락한 인구와 노령 등으로 근로능력이 없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현재 전체 인구의 약 14%가 의료보호 혜택을 받고 있다. 공적 노인의료보험(Medicare)의 혜택을 받는 65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한 보통의 미국인들은 각자 알아서 시장에서 민간의료보험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의료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문제는 선별적 의료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 의료보호 대상자들의 의료서비스 질이 형편없이 저열하다는 것과 함께 15%에 달하는 약 5천만 명의 미국인들은 아예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선별적 복지제도에 기인한 중상층의 조세저항과 정부재정의 제약으로 인해 의료보호 대상자를 확대하거나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GDP의 16%를 국민의료비로 쓰고 있다. 유럽 선진국의 9-10%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다. 반면, 미국인의 건강수준과 평균수명은 주요국가들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결국, 미국의 시장주의 의료제도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의료제도의 성과도 유럽 복지국가들에 비해 매우 저열하다. 그러므로 시장주의에 근거한 미국식의 선별적 의료복지가 아니라 유럽 복지국가 방식의 보편적 의료복지가 정답이다. 전체적으로 돈도 적게 들고, 온 국민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복지비용의 주요 부담자들이 보편적 복지의 수혜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복지 확충을 위한 세금을 기꺼이 내게 되고,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이것이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나타난 민심은 보편적 무상급식의 실시와 함께 보편적 복지가 우리의 당면과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우리는 복지와 경제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후 신속하게 정치사회적 의제로 띄워야 할 전략적 당면과제가 중요해졌다. 그것은 바로 생애주기에 따른 보편적 '사회서비스'의 제도화이다. 출산과 의료, 보육과 교육, 노인요양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사회서비스는 복지의 보편적 확장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강화함으로써 경제성장의 동력을 확보함과 아울러 양질의 정규직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여 고용의 해결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당장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의제를 정치사회적으로 전면화하자. '건강보험 하나로'는 우리네 삶의 공공성 영역을 확장하는 길이며, 동시에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와 함께 정치사회적 명분을 획득할 것이므로 우리나라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있어 확실한 전략적 승부수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상이님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복지국가 국민운동 공동본부장입니다.



태그:#주민투표, #오세훈,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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