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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나는 나와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공부도 잘하고 리더쉽도 있어서 반장을 했고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엄마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부모를 잃게 되었습니다. 소공녀처럼 남부러울 게 없는 최미나였지만 다락방으로 내쫓긴 동화 속 주인공같이 최미나는 동생 셋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최미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한다는 회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최미나는 소공녀와 같아졌습니다 잘 살던 집에서 친척들이 얻어준 지하 단칸방으로 옮겨 갔고 학교 서무실에서 잡일을 하고 어떨 때는 1학년 반에 들어가 자습지도도 선생님 대신 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최미나의 예를 들며 "너희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는 했습니다.

 

나는 그래도 학생이었습니다. 나대신 돈을 버는 언니도 있었고 엄마도 오빠도 있는 최미나보다 훨씬 나은 학생에 속했습니다. 최미나는 이제 학생이 아닙니다. 언젠가 복도에서 마주친 최미나의 품에 잔뜩 안겨 있는 서류뭉치들이 보였습니다. 최미나와 나는 별 말 없이 서로 어색한 미소를 주고 받았습니다. 서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소공녀
 

그런데도 나는 나만 힘들다고 속으로 아우성치며 더욱 내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습니다. 이런 마음을 아는 지 휴가를 다녀 간 오빠에게서 편지가 한통 날아왔습니다.

 

'사랑하는 학현에게

영어세계를 들추다 우연히 엄마에게 용돈을 구하는 너의 편지를 보고 불현 듯 그리운 식구와 너의 귀여운 모습이 떠올라 소식 전한다.

매번 너를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좀더 너의 재능을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 모르겠으나-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말이야. 아니다. 위의 말은 정정하자. 재능이라고 하지 말고 능력으로. 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는 하늘이 내심이다. 너무 자신의 능력을 믿지 마라. 오만함과 경솔이 나오기 쉽지. 하늘이 주신 재능이 없어도 좋다. 네가 글 읽기를 좋아하고 쓰기를 좋아하는 것이 어릴때부터 쓴 일기 탓이라고 치더라도, 너 자신에게 하늘이 내리신 재능이 없다하더라도 노력해라. 너 자신 게을리 하면서 높은 정신 세계에 도달 할 수는 없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어도 내 안타까운 마음은 여전하다. 나의 뜻이 혹시 너의 마음을 언짢게 하지나 않을까 하고. 하지만 너에게는 나와 가현이에게 없는 발랄함과 강한 개성을 느낀다. 너의 적은 지성이 생활에 짜증을 내게 하는 것 같다.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머리에 고통을 줘라. 한때는 괴로울지 모르나 하루하루 고등학교, 대학 사회에 나와서도 그 보람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좁은 안목으로 살지 말고 남을 증오하지 말고 누군가 말했듯이 남에게는 관용하고 자신에게는 냉혹해라.

많은 책을 읽기 바란다. 오빠는 시를 이해 못한다. 오빠는 장님이다. 바보다. 귀머거리다.

수박 겉핡기 식의 사고는 팽개쳐 버려라. 너에게 하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나에게 요구하는 바다.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너의 생각대로 이끌어가기 바란다.

거짓말을 하지 말며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어머니에게 순종해라. 사람의 한평생 길지는 않다. 지나고 나면 모두  티끌과 같애. 순결한 몸과 마음. -오빠가-'

 

오빠는 나의 답답한 마음을 읽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나는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 생활에서

오는 가난 때문인지 도데체 그 무엇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 답답하게 목을 조이듯이 나를 조여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엄마에게 반항을 했는지 오빠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란 글귀와 '엄마에게 순종해라'란 글에 밑줄까지 그어 놓았습니다.  

 

모두들 연합고사를 앞두고 공부들을 한다고 늦은 밤까지 교실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최미나는 연합고사를 볼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자퇴를 하고 서무실에서 일을 돕는 어린 사회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성적은 70여 명이 조금 더 되는 학생들 중에서 12등 정도를 하고 있었고 내 성적이 자꾸 떨어지자 언니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학현이 너 정말 이럴래?"

"......"

 

나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공부에 집중을 하려고 했지만 책상 위에 책을 펴둔채 나 역시 엄마처럼 멍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까지 내게 부담을 주었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는데 이학현 같은 경우는 잘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하자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 보았고 그 후로 성적을 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선생님의 말에 더욱 부담을 느낀 나는 책만 펴놓았을 뿐 부담감을 이겨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결국 장학금은 반장을 하고 있는 우리반 1등 옥점이가 타게 되었습나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장학금은 공부 잘하는 아이가 타는 것이다. 기왕이면 일등을 한 옥점이를 추천했다."

 

아이들이 모두 박수를 쳤고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나는 나를 이겨내지 못한 자책감에 빠져 더욱 허우적대며 버둥거렸습니다.

 

그래도 연합고사 성적은 잘 나온 편이었고 나는 원하던 고등학교로 추첨 배정을 받았습니다. 최미나는 여전히 오류중학교 서무실에서 일을 했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녀의 소식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최미나가 검정고시를 쳐서 야간 대학에 입학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미나는 소공녀와 같았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다듬어 가며 대학까지 들어갔고 어린 동생들을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끝까지 보살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최미나를 생각하면 부끄러워 집니다.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집니다. 지금쯤 최미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소공녀처럼 다락방에서 탈출해 기숙사 최고의 학생이 된 '세라'처럼 잘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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