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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하게 지내던 그때의 일기를 꺼내어 잠시 훑어 봅니다. 세상을 비관하고 나를 비관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격려하는 글도 보입니다. 

'모두들 나의 말은 반신반의 믿지 못한다. 번번히 약속을 파기한 탓이다. 오늘 미연의 태도는 가슴아프다. 나를 무참하게 만들었다. 체력을 이기지 못해 질질 끌려 다니는 나를 그녀는...착한 마음의 소유자 그녀. 그러나 나는 오늘 섭섭하다. 나는 그렇게도 너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가. 나도 너처럼 마음껏 산으로 달음박질쳐 오르고 싶다.

심호흡을 크게 해보고 호연지기도 해보고 싶은 것을. 그러나 나는 역시나 신체의 실패를, 아직도 다리의 불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마음만 뛰고 기고 나를 뿐. 동네만 한바퀴 돌고와도 나는 며칠을 고생하며 지내는 것을.

요즘 들어 건강을 잃은 비애를 친구들을 통해 종종 느낀다. 한번 잃은 건강을 쉽게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애처럼 서서히.

목표없이 하루 하루를 그저 소일한다는 것도 크나 큰 고통이다. 무의욕, 권태, 초조, 불안...

옹졸한 마음의 집합체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나의 모습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양심을 앓아 본적이 있던가. 무덤덤하게 생이 나를 이끄는대로 왔을 뿐이다. 단 한번도 내 생에 도전을 해 본 적도, 노력도 해 본 적도 없지 않느냐. 그저 안일하게만 도사릴 줄 알았던 것이다. 아무런 비전도 없다. 내게는. 괴로움과 사막을 걷는 것과 같은 기분. 붙잡고 설만한 꿈이 없다.

마음과 의지가 약해졌을 때 자기 암시에 자주 걸리는 법.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멈추지 말자. 항상 긍정적으로 밝게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자. 관용으로 나쁜 버릇을 고쳐나가자.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음을 알자. 진신을 외면했을 때 우리는 사탄이라 하던가. 사탄은 아름답고 겉으로는 선한 말을 즐겨하지만 가식의 탈을 쓴 선과 진실을 배제한 것이 사탄이 아닌가. 무엇이든 하는 척 하는 것은 척일 따름. 사람들에게 보일려고 하는 행동은 모두 헛된 광대놀음에 불과하다.

 푸른하늘 나는 은날개 빛 새처럼
 푸른하늘 나는 은날개 빛 새처럼
ⓒ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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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비가 소담스럽게 내리는 가운데 보라색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눈길을 끈다. 향기가 코 끝에 묻어서 가는 곳마다 꽃의 향기가 배어나온다. 나는 이렇게 사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 쯤은 안다. 페쇄적이고 몽상적인 생활. 실제로 경험과 실천이 없는 젊음은 젊음이 아닌 것이다. 육십 먹은 노파보다 못하다면 못하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포기한 자신부터 시작하는 일이냐? 사뭇 오그라들기만 할 뿐. 점점 작게 오그라든다. 개미가 나를 잡아 먹으려 들 정도로 나는 작다. 작은 게 싫다. 크고 싶다.'

나는 '크고 싶다'고 일기에 적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커야 할 지는 모르는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눅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와야 했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회사를 퇴근한 언니 품에 한 가득 책이 안겨 있었습니다.

"언니 무슨 책을 그렇게 많이 사들고 와?"
"나 늦었지만 야간대학이라도 들어갈려고. 학현이 너도 다시 공부하면 안되겠니?

그렇잖아도 오빠는 '등록금은 염려말고 너는 다시 대학에 들어가기 바란다. 오빠랑 언니는 야간대학에 다녀도 되지만 너는 일반대학에서 너의 꿈을 맘껏 펼치기를 오빠는 기대하고 있다'고 편지를 보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심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음도 무료하고 시간도 안가고 해서 하루는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쓰던 물건을 정리하다가 상장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분단에서 수분단으로 올라갔을 때 받은 '우수상장'이었습니다. 오로지 나를 몸종처럼 부리던 미순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방학동안 교과서를 줄줄 외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지금 가분단 학생이야. 노력하면 수분단으로 올라갈 수 있어'하고 마음에서 억지로 희망의 메시지를 나 스스로에게 보냈습니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등의 책을 사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지다가 다시 실망하고 또 다시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를 반복했습니다. 이제 내 껍질을 벗고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신체는 말을 듣지 않았지만 마음은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 다시 하자. 가분단에서 다시 수분단으로 올라 가자.' 며 나는 재수를 할 결심을 했고 오래 전에 처박아 두었던 고등학교 때 교과서를 새롭게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정말 몇 년 동안 벌레보듯 무서워하던 교과서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나를 '주눅'이라는 세계 속에 가두어 두었던 괴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괴물을 한번 이겨 볼 참이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엄마에게 "나 요양차 일년동안 시골에 가 있다고 말해줘"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가분단에서 수분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5학년 때처럼 공부라는 잠수정을 탔습니다.

나의 십대는 자기 학대를 하며 지낸 유리파편처럼 내게는 날카롭고 위태로운 시기였습니다. 주원이가 언젠가 보냈던 편지에서처럼 이제 세상과 맞부딪힐 준비가 된 것입니다.  

나는 이제 어려서부터 십대때까지 겪었던 나의 가난과 정신적 학대를 딛고 일어서야 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청소년기는 끝나갔으며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푸른하늘을 나는 은날개 빛 새를 새롭게 꿈꾸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그동안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방송작가 장다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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