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아이들은 해맑게 운동장을 뛰어놀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하거나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 운동장 입구 쪽에는 관광버스 3대가 시동을 걸어 둔 채로 있었고 훈련을 위해 선발된 70여명의 아이들은 탑승을 준비하고 있었다.

 

허리춤에 하나씩 달고 있는 방독면을 빼면 영락없이 소풍가는 모습이었다. 어른들의 분위기도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훈련 통제관의 모습에서도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7월 13일, 방사능 방재 합동훈련(12일부터 양일간)이 진행되고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산초등학교의 오전 10시 45분 풍경이다.

 

나산초등학교는 후쿠시마 같은 사고 시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이 집결하여 피난을 떠나는 곳이다. 이날 방사능 방재 합동훈련은 후쿠시마 같은 사고를 상정한 훈련이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상황인데, 분위기는 나들이 직전이네

 

 방재훈련에 참가중인 어린이들. 허리에 방독면을 하나씩 차고 있지만 이미 이지역은 방사능에 오염이 된 상황이다.

내가 나산초등학교에 도착한 10시 45분 전후는 양남면 일대가 방사능으로 오염된 상황이었다. 훈련 매뉴얼에 따르면 오전 10시 25분에 적색비상 발령이 내려졌고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었다. 매뉴얼은 오전 10시45분에 주민 대피 및 소개를 지시하고 있었다.

 

생사가 오고 가는 중대한 비상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산초등학교에는 전혀 긴장감이 흐르지 않았다. 야유회 떠나기 직전의 모습만이 연출되었다. 특히, 방재훈련 참가자들은 방재복을 착용하지 않았고 방독면도 허리춤에 차고 있을 뿐이었다. 훈련상황임을 감안해도 최소한 훈련 통제관들은 실전과 같은 복장으로 훈련에 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피난민을 실은 관광버스가 경주 황성공원 실내체육관(피난민 구호소)으로 떠난 뒤 월성원전 인근 마을을 둘러보았다. 경주시가 배포한 방재훈련 매뉴얼에 따르면 원전 반경 5km 내 모든 주민들에게는 12시까지 옥내대피 명령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몇몇 가정집을 방문하여 방사능 방재 훈련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주민들은 모두 훈련 소식을 잘 모르고 있었다. 이미 지난 6월 반상회 등을 통해 주민계도에 나섰다고 시 측은 알렸고, 훈련 안내 자료에도

10분간 비상 사이렌을 울린다고 적혀있는데, 주민들은 한결같이 "민방위 훈련과 같은 사이렌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실제 이 마을 면사무소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민 방송은 없었고 대로에서 사이렌이 부착된 차량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실제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를 상정한 방재훈련임에도 불구하고 훈련은 너무나 조용하게 훈련이 진행되었다. 심지어 관광버스가 피난민을 싣고 경주시내로 갔다는 상황을 전해들은 박아무개 주민은 "경주로 와 갑니꺼? 가까운 울산으로 가야지. 울산으로 가면 20분만 가도 멀리 도망가지만 경주로 가면 길도 험하고 1시간이나 걸리는데…"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피난을 왜 경주로 갑니꺼, 가까운 울산으로 가야지"

 

 월성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죽전마을에서 바라본 핵발전소. 이 마을 사람들은 방재훈련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처럼 방사능 방재훈련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후쿠시마 이후 국민들의 원전 안전의식이 높아지고 이를 반영하듯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 법안까지 국회를 통과했으나 방재훈련은 여전히 과거를 답습하고 있었다.

 

경주시가 이번 훈련의 목표 중 하나로 꼽은 '방사능 방재훈련 메뉴얼의 실효성을 검증하고 도출되는 문제점 등을 보완'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을 정도였다. 주최 측은 자료에서 '원전 주변 5㎞지역 약 6000명 주민에 대해서는 취명훈련을 통해 옥내 대피 조치가 내려지는' 훈련이라고 설명했는데, 몇몇 주민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훈련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유있어 보였기 때문.

지난 4월 후쿠시마를 직접 방문하여 원전 피난민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의 가장 큰 불만이 제대로 된 방재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후쿠시마 피난민들은 평소 방재훈련을 받지 못한 나머지 허둥지둥 빈 손으로 고향을 떠나와야만 했다.

 

그리고 고향땅은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들은 우리에게 전 주민이 참여하는 체계적인 방재훈련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었다.

 

 피난민 구호소로 지정된 경주시내의 실내체육관. 실질적인 훈련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훈련이 필요한 곳은 원전 인근 마을이다.

월성원전 인근의 주민 인터뷰를 마치고 경주시내에 마련된 피난민 구호소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황성공원 실내체육관은 훈련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피난민 구호소의 취재는 사실상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큰 문제점이 보였다. 실내체육관 주변이 너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던 것.

 

해병대 장갑차, 방사능 측정장비, 방재물품, 울산, 포항, 대구에서 파견된 의료진, 곳곳에 걸린 대형 현수막과 애드벌룬 등등 엄청난 물량과 사람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 방사능 방재훈련의 중심은 바로 피난민 구호소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월성원전 인근 마을에서의 피난훈련은 그냥 맛보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후쿠시마와 같은 핵참사가 벌어지면 무엇보다 원전 인근에서의 신속한 피난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방재훈련은 피난 훈련은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피난 온 사람들이 생활할 구호소를 운영하는 데만 모든 힘을 기울인 빗나간 훈련이었다.

 

좀 더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방재훈련 하려면...

 

 방사능 측정 지원을 나온 해병대 장갑차. 강갑차에 방사능 측정 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이곳에 어울리는 장비는 아닌 듯하다. 장갑차를 비롯해 많은 장비들과 인력들이 피난민 구호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내가 느낀 문제점을 몇 가지만 더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피난에 관광버스를 이용한 것도 큰 문제다. 실제로 사고가 나면 시내지역에 있는 관광버스가 원전주변의 어촌마을까지 올 수 있겠는가? 관공서 차량 또는 인근의 시내버스, 기업체 차량들이 재난차량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하고 재난 발생시 신속히 동원되어야 한다. 이번 방재훈련에서 이런 시스템이 점검되어야 했다.

 

월성원전 반경 5km 이내 주민들에게 옥내대피 명령이 내려졌는데, 목조건물에 대피해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건강, 미관, 경제적 이유로 목조건물이 많이 지어지고 있다. 그러나 원전 사고 시에는 꼭 콘크리트 건물로 대피를 해야 한다. 목조건물을 방사선을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전 인근 주민들에게는 방재복 등 보호장구와 함께 개인 피폭선량계가 꼭 지급되어야 한다. 원전 사고 시 피폭량이 모니터 되어야 적절한 구호조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재훈련 매뉴얼에도 문제가 많았다. 적색비상 발령이 나서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 되고, 원자로 격리기능이 상실된 후에 주민들을 대피시킨 것은 큰 잘못으로 보인다. 지진이 나고 원자로의 냉각재 누설율이 증가할 때 이미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실제로 후쿠시마 사고 시 인근 주민들에 대한 소개는 원전이 폭발하기 전에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끝으로 매뉴얼에 따르면 공중파 방송을 통한 재난 전파가 빠져 있었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NHK의 피난 종용 방송을 듣고 피난길에 올랐다고 한다. 방사능 사고는 오감으로 감지할 수가 없다. 후쿠시마처럼 폭발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폭발 후 피난을 떠나면 이미 늦다.

 

실제로 후쿠시마의 경우 일반인이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가 전혀 없을 때 피난 명령이 떨어졌고 주민들은 반신반의 했으나 NHK의 적극적인 피난 종용으로 인근 주민들은 피난길에 올랐으며 그리고 얼마 후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이날 경주에서 진행된 방사능 방재 합동훈련은 한국의 원전안전 매뉴얼을 새롭게 정비할 과제를 남겼다고 본다. 일본 후쿠시마 핵참사에서 다시 한 번 교훈을 찾아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상홍 기자는 경주환경운동연합 소속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