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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우는 나와 같은 학년이었는데 기타도 잘 치고 하모니카도 잘 불고 그림도 잘 그리고 못하는 것이 없는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머리에서 발끝가지 길다란 몸매에 청바지와 남색 남방을 걸쳐 입은 모습은 아이가 아니라 내 눈에는 청소년처럼 보여 더욱 철우가 멋진 아이로 보였기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철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우는 동네 친구 이상으로 나를 보지 않았습니다.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 6학년 때 시작된 것입니다.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거리가 멀어 노량진 초등학교에서 오류 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고 철우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며 옆 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우는 미술숙제도 내 대신 해줬고 기타도 쳐주고는 했지만 나는 마음으로 철우가 나를 좋아한다는 기미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철우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내일 학교 갈 때 청색 남방 입고 가면 안되니?"

"왜?"

"그냥."

 

나는 그 아이의 청색 남방 입은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고 철우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에 부탁을 한 것인데 나의 기대는 느낌 그대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철우는 그 다음 날 청색 남방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나는 나 혼자 철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현이란 아이의 집에서 철우를 비롯해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철우네 옆집 혁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현이네 집으로 울면서 뛰어들어와 몸을 오그리며 구석으로 피신을 왔습니다. 혁이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아들을 홀딱 벗겨서 혁띠로 아이를 때리고는 했습니다. 나는 철우 때문인지 홀딱 벗은 혁이 때문인지 온 몸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러웠습니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철우가 자기 남방을 벗어 그 아이의 몸을 가려 주었습니다. 그런 철우의 행동이 내게는 더욱 더 멋지게 보였습니다.

 

 

한 날은 철우가 내게 한가지 제안을 하듯 말했습니다.

 

"내 생일 날 니 친구들 세명하고 내 친구들 세명하고 우리집에서 놀자."

"정말?"

 

나는 기쁨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철우가 자기 생일 날 나와 친구들까지 초대를 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철우네 집에 모여 들었고 한가지씩 선물을 가지고 와서 서로 교환도 하고 짝이 되어 놀기로 했습니다. 나는 철우와 짝이 되기를 바랐는데 하필이면 제일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와 짝이 되었습니다.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고 철우랑 그 짝은 기타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다른 아이는 오르간을 쳤습니다. 나는 아무런 장기가 없어 결국 비양거리는 놀림을 받으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래라도 할려고 했지만 부를 줄도 모르는 노래를 철우 앞에서 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물 교환 때 철우는 여자 인형을 잡게 되었고 나는 돌로 만든 곰인형을 잡게 되었습니다.

 

생일 파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가자 나는 은근히 철우가 저 인형을 내게 줄지도 모른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여자인형따위는 남자아이한테 필요하지 않으니까 나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지만 이번에도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습니다.

 

"넌 안가? 나 숙제 해야되는데."

"지금 갈려구. 동화책 한 권 빌려가도 돼?"

"그렇게 해."

 

철우는 내 가슴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짝사랑의 상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형편이 어려워 과외같은 것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같은 산동네라도 철우네 집 형편은 좋은 편이라 철우는 과외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우산을 들고 가게에 엄마 심부름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철우를 보았습니다. 과외수업을 함께 받고 있는 내 친구와 다정하게 우산 한 개를 같이쓰고 흡사 연인같은 모습으로 걷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둘은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내 친구는 수줍게 철우는 쑥스러운 듯 웃고 있는 걸 보게 되자 나는 그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우산으로 나를 가렸습니다.

 

내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철우는 나 말고 내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철우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러나 짝사랑은 것은 이미 어린 나이에 경험했고 상처를 받았으므로 그 후로 나는 짝사랑 같은 것은 절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짝사랑, #최초의 거짓말, #연재동화,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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