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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아이를 본 건 언제나 좁은 마루 끝에 힘없이 걸터 앉아 있는 모습이 전부였습니다. 내 나이 보다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소년이었지요. 팔 다리는 얇은 작대기가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랐고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그 아이는 선례네 집 방 한칸을 빌려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병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 아이가 어떤 병을 앓고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어른들 말에 의하면 어린 나이에 유전성 당뇨병을 앓고 있었고 합병증도 많았다고 합니다. 다만 마루 끝에 나와 앉아 있는 모습이 전부였는데 하루는 그 애가 포도를 허겁지겁 먹는 것이 무척 신기해 보였습니다. 당뇨병이라 당분이 많은 것은 먹지 못한다는 말을 어른들한테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에 비록 내 나이가 어렸지만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저렇게 허겁지겁 먹을까' 하는 어른스러운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그 날은 참으로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나무도 움직이지 않고 햇볕이 뜨거워서 그랬는지 동네에는 사람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거의 멈춘 듯이 조용하기만 한 그날, 할머니가 그 아이 대신 좁은 마루 끝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할머니 왜 우세요?"

"우리 손자가 죽었다."

 

내 귀에는 죽었다는 말이 생소할 정도로 할머니의 음성은 그날의 분위기만큼 조용하고 울음소리도 토해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저 들어가 봐도 돼요?"

"들어와서 뭐 하게?"

"그냥요."

 

할머니는 나를 방으로 들여 보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미 얇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할머니 손자 얼굴 좀 봐도 돼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왜 죽은 그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었는지 지금도 알수가 없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허락을 하고 흰 천을 그 아이의 얼굴이 보이도록 겉어 주었습니다. 속 눈섶이 반달 모양으로 까맣고 얼굴은 더 하얗게 보였고 무척 평온해 보였습니다.

 

"할머니 자는 것 같아요. 안 죽은 거 아니에요?"

"아니다 죽었다. 고맙다 이렇게 들여다 봐줘서."

 

뭐가 고맙다는 것인지 지금은 알 것 같지만 그때는 물랐습니다. 아마도 아무도 들여다 보지도 관심도 없던 죽은 그 아이를 첫 번 째 보러 온 사람이 겨우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이였지만 문상을 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지금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3일장도 치르지 않고 다음 날 화장을 해버렸다고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어른이 아닌 아이의 무덤은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내 기억 속에 그 소년은 햇빛 속에 앉아 있다가 햇빛에 녹아 없어진 것처럼 조용하게 죽었습니다.

 

 

두 번째 죽음은 창이 아버지란 사람이었는데 우리집 맨 끝방에 살았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학교도 대학까지 나왔고 부잣집 아들인데 술집 여자하고 눈이 맞아 아이가 생겨 산동네 우리집을 얻어 동거를 한다고 했습니다.

 

창이 아버지도 병을 앓고 있어 창이 엄마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꾸려 나갔고 가끔 누나만이 연락을 하고 나머지 가족들하고는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하고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잣집에서 도저히 술집 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창이 아버지는 자기 아이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여자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집하고는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창이 아버지의 병명은 간암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몸은 말랐지만 배는 임산부만큼 컸는데 사람들이 복수가 차서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창이 아버지가 문고리에 목을 매단 것입니다. 다행히 일찍 들어 온 창이 엄마에게 발견되어 자살은 미수로 끝났습니다. 동네 사람 몇몇이 방 안을 들어가보고 나도 그 방을 기웃거렸습니다.

 

"똥을 쌌으니 죽지는 않을 겁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

"그래. 똥을 싸면 죽지 않는다는 말 맞아요."

 

나는 동네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똥을 싸면 죽지 않는다구?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마 신진대사가 되었으니 결코 죽음에 까지 이르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이 지나 창이 아버지가 평상에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앉아 있는 창이 아버지 옆으로 가서 나는 앉았습니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같지 않게 평온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창이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학현이 너 솔베이지의 노래 아니?"

"아니요. 모르는데요."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이 오면...'

 

창이 아버지가 솔베이지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는 외국노래였고 한번 들었을 뿐인데 그 노래가 내 머리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창이 아버지는 결국 문고리에 다시 목을 매어 자살을 했습니다. 이제는 똥도 싸지 않았는가 봅니다.

 

창이 아버지의 누나가 찾아와 우리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문상객들을 받고 동네 사람들에게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초상을 치뤘고 창이 아버지는 또 이렇게 우리집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나는 '솔베이지의 노래'만 나오면 창이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솔베이지의 노래, #최초의 거짓말, #연재동화,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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