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로 엄마노릇 10년차다. 하지만 엄마노릇은 갈수록 어렵다. 요즘 세상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과연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있는지 늘 고민한다. 동병상련, 이 고민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엄마들이다. 여러사람에게 귀를 열어봐도 자녀 얘기에는 역시 엄마만한 전문가가 없다. 단, 엄마들은 미완성 전문가다. 열정과 마인드 면에선 누구보다 전문가이지만,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점에선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올해 10년차 엄마인 나는, 좀 더 마음을 열고 '보통' 엄마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유별나지는 않지만 조금은 특별한 엄마들의 자녀 교육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기자 말>

준비되어있는 취재원을 만나는 것도 기쁜 일이다. 기자가 도착하기전, 미리 차를 끓이고 과자도 준비했다. 인터뷰하기전, 내 기사를 검색해서 읽어보았다는 말에 황춘임씨의 꼼꼼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준비되어있는 취재원을 만나는 것도 기쁜 일이다. 기자가 도착하기전, 미리 차를 끓이고 과자도 준비했다. 인터뷰하기전, 내 기사를 검색해서 읽어보았다는 말에 황춘임씨의 꼼꼼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전주 인후동에 사는 황춘임(52)씨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두 아들을 서울대 법대와 카이스트에 보냈다. 두 아들을 명문대에 보낸 비법(?)이 궁금했고, 요즘 대학생을 둔 부모로서의 심경도 궁금했다. 굉장히 엄하고 카리스마가 강한 분일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황춘임씨는 소박하고 다정했다. 기자를 위해 미리 커피를 내려놓고 쿠키도 준비해두었다. 내가 작성한 기사도 이미 읽어보았다. 이런 취재원을 만나면 기쁘면서도 긴장된다. 

자녀를 명문대 보낸 부모들을 볼때는 묘한 선입견이 작용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곧이 들리지가 않는다. '지들이 알아서 다 잘했다'는 말도 하나의 공훈처럼 들린다. 학원 한번 안 보내고, 과외한번 안 하고, 대학에 보냈다는 말도 준비된 멘트처럼 들린다. 그렇다. 황춘임씨 말대로 '결과가 좋으니 무슨 말을 해도 다 좋게 들리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인터뷰가 주저되고 염려되었던 점도 그렇게 '식상한 멘트'로 비칠까봐서였다.

질문 많은 아이 vs 호기심 많은 부모

하지만 장담컨대, 분명 황춘임씨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기자를 맞이하기전, 춘임씨는 조간신문을 읽고있었다. 춘임씨는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전주시민대학에서 독서지도자과정을 가르치고있다. 서재를 겸한 거실 한쪽 면에는 책들과 서류, 파일, 자료들이 가득했다. 최근에는 '디베이트'과정을 수료했단다. 디베이트 코치과정도 이수했고, 최근에는 심사위원자격으로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단다.

황춘임씨는 두 아들을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보냈다. 만약, 자신이 다른 부모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남들에 비해 더 참고 기다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슨 문제든 아이들에게 물어서 답을 구했다.
 황춘임씨는 두 아들을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보냈다. 만약, 자신이 다른 부모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남들에 비해 더 참고 기다려주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슨 문제든 아이들에게 물어서 답을 구했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원래 책을 좋아하셨나요?"
"책은 좋아했지만 책읽기는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아요. 뚜렷이 기억나는 책이 없는 걸 보면."

"그런데 지금은 책을 늘 가까이하고 계시네요."
"큰아이가 책을 무척 좋아했어요. 백일되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면 정말 뚫어지게 책을 봤어요. 아이가 책에 집중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책을 많이 읽어주었죠."

"아드님이 원래 책을 좋아하셨나봐요? 아니면 책을 좋아하도록 만든 어떤 기술이라도 있었나요?"
"원래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책만 읽는다고, 한 아이의 엄마가 저희 집에 따지러오기도 했죠. '당신 아들 비정상'이라구요. 그 말듣고 저도 화가나더라구요. 그뒤부터 제발 책좀 그만 읽고 나가 놀라고 윽박질렀죠."
"와우, 정말 행복한 고민이네요."

두 아들은 질문 대장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해는 왜 서쪽으로 지느냐, 겨울에는 물이 왜 어느냐… 등. 그럴 때마다 춘임씨는 자세히 설명해줬지만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춘임씨는 그것을 '위기의식'이라 표현했다. 위기를 벗어나기위해서는 함께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해답 찾으러 설거지 중간에 내팽개쳤던 엄마

"아이가 호기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저한테 질문을 했죠. 어느 때는 설거지하고 있는데 와서 물어보는 거예요. 저도 잘 모르는 내용이다 싶으면 함께 찾아보자며 책을 뒤적거렸죠."

"설거지 중간에 그만두고요?"
"네. 궁금한데 설거지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해답찾을때까지 궁리하는 거예요."

"그건 순전히 엄마의 책임감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
"아뇨. 저도 궁금하니까요. 궁금하니까 함께 찾아보는 거죠. "

아이가 질문을 했는데 내가 잘 모르는 질문일 경우, '잠깐만' '아빠한테 물어봐' 나중에 알려 줄게'며 미루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집안일에 쫒기는 엄마로선, 설거지 중간에 고무장갑을 벗고 해답을 찾기 위해 공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궁금하면 그때 대답해줘야 한다. 아이는 '지금' 알고 싶으니까. 아이는 현재를 사는 존재라는 것, 선배 엄마로부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웠다.

큰 아들은 유난히 질문이 많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 황춘임씨는 위기의식을 느꼈고, 아들의 질문에 답하기위해서 황춘임씨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녀가 부모를 공부하게 만든 것이다.
 큰 아들은 유난히 질문이 많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 황춘임씨는 위기의식을 느꼈고, 아들의 질문에 답하기위해서 황춘임씨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녀가 부모를 공부하게 만든 것이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두 아들 최종민(25 서울대 법대 재학)과 최종수(21, 카이스트 물리학과 재학)군은 어린시절부터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호기심도 왕성했다. 학교에서 무슨 대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종수군이 초등학생시절, 학교에서 '통계대회' 참여 신청자를 받을 때였다. 통계대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무작정 참여했다. 성적이 안 좋을 거라는 것은 미리 예상한 결과였다.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어도 '통계'를 알게 되었다. 황춘임씨는 자신의 자녀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라고 말한다.

"학교 다닐 때는 줄곧 1등만 맡았겠네요."
"그런데 이상한게… 그렇게 똑똑하고 아는 게 많은 데 1등을 못하는 거예요.(웃음) 애들한테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론 애가 탔죠. 시험보기 전날에도 책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뭐라고 하세요?"
"처음에는 저도 윽박질렀죠. 그랬더니 나중에 둘째가 뭐라고하는줄 아세요? 엄마들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대요, 그렇게 야단친다고 자녀들이 공부하는 줄 안다면 오산이래요. 방에 들어가서 한 시간 동안 벽만 째려봤다고 하더군요."

윽박지르는 게 좋지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누군 처음부터 맘먹고 윽박지르나? 얘기하다 보면 소리가 커진다. 춘임씨는 부모자녀간에도 보이지 않게 밀고 당기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인사이만큼이나.

"아이가 시험 전날까지 책을 보면 그냥 내버려둬요. 그러다 제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죠. '애야, 내일 시험을 본다니 공부라는 걸 좀 해야지 않겠니?' 그러면 아들이 '네, 이제 해야죠'라면서 공부하더라구요."

"시험 전날, 책을 보면 다행이네요. 티비나 만화책 보고 있으면 복장 터지죠. 그러면 좋은 소리가 절대 안 나오는데요."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윽박지르면 애들은 절대 공부 안 하더라구요. 엄마 마음을 들키지 않게 슬그머니, 밀고 당기면서 대화하는 기술이 필요해요."

'엄마가 어떻게 얘기해야 네 마음이 상하지 않겠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렇다면 이런 식의 말투는 어떨까'… 등 춘임씨는 두 아들에게 늘 물어보고 대화한다. 해답은 늘 아이들 대답에 있다. 춘임씨는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가 좋아야 공부도 잘 한다고 했다.

명문대 보내면 고민 없을 줄 알았는데...

명문대에 자녀를 보낸 부모라고 고민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공교롭게 춘임씨의 두 아들이 다니는 대학 모두 올 한해 '핫'한 대학이 되어버렸다. 명문대 보내고 나면 가슴앓이는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먼저 카이스트에 다니는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 상반기, 카이스트 소식에 가슴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네. 그렇죠. 자살을 한 아이중에 아들 친구가 있었어요. "

"카이스트 등록금이 어느 정도 되나요?"
"기본이 170만 원이구요, 학점이 0.1점 떨어질 때마다 68만 원 가산금이 붙죠. 그러니까 학점이 1점 떨어지면 680만 원이니까 170만 원과 합치면 거의 1천만 원 가까운 금액을 내야하죠. 징벌적 등록금이죠. 처음에 저희는 카이스트는 등록금이 없는 줄 알았어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있던 데요."

"아드님도 마음 고생이 심하셨겠네요."
"어느날 아들이 와서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우리는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어린 애들이라구요. 생각해보니 그 말이 참 맞더라구요. 그런데 우린 너무나 우리 아이들에게 가혹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잖아요."

사춘기시절, 수험생 시절을 그렇게 대했듯 춘임씨는 두 아들의 일에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비결인 지도 모르지만 춘임씨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뿐 그렇다고 엄마들에게 아이를 관리하지 않는게 최선이라고 충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단다. 하지만 지나친 간섭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춘임씨도 가끔은 속이 탈 때가 있다.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큰소리가 나오려는 순간, 꾹 참는다. 다른 부모가 아홉 번 참을 때, 춘임씨는 한 번 더, 참는다. 만약 자신이 다른 부모와 차이점이라는 게 있다면 한 번 더 참고 지켜봐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황춘임씨의 메모.
 황춘임씨의 메모.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서울대 법인화 문제. 큰 아들은 현재 서울대 법대 4년에 재학중이다. 등록금 부담은 둘째보다 덜하지만 생활비 등 제반 비용이 부담되어서 최근 원룸에서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서울대 법인화와 등록금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춘임씨가 입을 뗐다.

"대학을 법인화하게 되면 결국 신자유주의로 간다는 의미겠죠. 학생들은 지나칠 정도로 경쟁을 하고 있어요. 그렇잖아도 이런 경쟁위주 분위기에서 더 경쟁을 부추기는게 과연 옳은 걸까요?"

"요즘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떠세요?"
"서민가정에서 대학보내기가 너무 힘듭니다. 고액 등록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새로운 '빈익빈 부익부'시스템을 낳기 때문이죠. 대학 등록금 벌려고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학업 성적떨어지죠. 당연히 졸업 후 취업하기 힘들구요. 이런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예요."

"등록금을 못대주는 부모도 고충이 심하죠."
"예전에는 부모의 능력에 따라 중고등학교 성적이 좌우됐는데 요즘에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취업까지 결정하는 시대가 돼버렸어요. 빛나는 희망이 아니라 좌절감과 빚더미로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이 있는 사회, 정말 슬픕니다."

엄마들이여, 슈퍼맘이 되지 마세요

황춘임씨에게 고민이 있다면 바로 요즘 교육환경이다. 비록 자신의 자녀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요즘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다. 가장 걱정되는 대상은 초등학생이다. 초등학생들이 대학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어린 아이들이 미래에 꿈을 저당잡힌 채 현재를 희생하면서 살아가고 있단다. '지금'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들을 너무나 많이 포기한 채 살아가는 '애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쓰럽단다.

황춘임씨는 현재 학생들에게 독서논술을 가르치고있다. 최근에는 디베이트코치과정을 수료했다. 황춘임씨는 나이들어서도 배우는 것이 신선하고 경이롭다고 했다.
 황춘임씨는 현재 학생들에게 독서논술을 가르치고있다. 최근에는 디베이트코치과정을 수료했다. 황춘임씨는 나이들어서도 배우는 것이 신선하고 경이롭다고 했다.
ⓒ 안소민

관련사진보기


"저는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얼마전 어느 어린이 음악회에 갔을 때의 얘긴데요. 아이들만 달랑 공연장에 들여보내고 엄마들은 삼삼오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더군요. 애들은 공연자체보다, 그 감상을 엄마와 나눌 때 더 행복하거든요. '엄마는 이랬는데 너는 어땠니…' 이렇게 물어보면서 대화를 이끌어나간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죠. 공연뿐 아니라 독서도 마찬가지예요. 꼭 독후감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눈으로 보이는 독후활동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공연, 독서, 문화활동을 통한 아이와 좋은 관계맺기니까요."

황춘임씨가 요즘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모든 일에 아빠들을 적극 참여시키라는 것이다. 자신의 독서모임 중 한 회원의 남편이 어느 날 난데없이 부인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너무 외롭다'는 것. 아내인 자신이 모든 일을 다하는데 뭐가 외롭냐고 물었더니, 그러니까 외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춘임씨는 요즘 엄마들에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다 챙겨주는 '슈퍼맘'이 되지 말라고.

황춘임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정한 슈퍼맘은 따로 있다. 아이와 밀고 당기기를 잘 하는 엄마, 끝까지 기다려주는 엄마, 아이 이야기를 잘 참고 들어주는 엄마이다. 진정, 부모가 되는 길은 끝이 보이지않는 수련의 과정이다.


태그:#엄마, #엄마교육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