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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을을 느끼러 나왔다가 늘 다니던 길이 느닷없이 큰 산성처럼 우뚝 선 흙더미에 가로막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 돌아가야하나요?
▲ 헉! 길이 막혔어요 모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을을 느끼러 나왔다가 늘 다니던 길이 느닷없이 큰 산성처럼 우뚝 선 흙더미에 가로막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 돌아가야하나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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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걸 어째, 길이 없어졌다."
"아니, 뭐 이래? 전에 왔을 땐, 이 길로 해서 낙정까지 갔잖아."
"이 길이 아닌가? 아닌데 맞는데, 틀림없이 이 길이 맞아. 4대강 때문에 길이 막히고 말았네."
"그럼 우짜노? 다시 돌아가야 되잖아."
"할 수 없지. 에고…."

길이 막혔다... 산성처럼 우뚝 선 흙더미 때문에

늘 다니던 길이 없어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난 17일, 참말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나왔어요. 요즘 다른 일 때문에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가을이 벌써 우리 곁에 와서 한창 무르익고 있는데도 미처 가을을 느낄 짬이 없었지요. 그야말로 오랜만에 큰 맘 먹고 나와서 룰루랄라 신나게 달렸습니다.

경북 구미에서 우리가 자주 다니던 선산 도개면을 지나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까지 가려고 마음먹었지요. 모처럼 나와 보니,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참으로 예쁩니다. 늘 얘기했지만, 우리나라 시골 풍경은 철을 따라 가는 곳마다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슴이 벅찰 만큼 예쁜 가을을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면서 즐겁게 달렸답니다.

한창입니다. 우리가 미처 가을을 느끼기도 앞서 들판은 온통 금빛 물결로 일렁이고 어느새 가을걷이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시골길가에는 나락을 거둬 말리고 있었습니다.
▲ 들판에는 어느새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우리가 미처 가을을 느끼기도 앞서 들판은 온통 금빛 물결로 일렁이고 어느새 가을걷이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시골길가에는 나락을 거둬 말리고 있었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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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나들이 갈 때, 시골마을 풍경을 보는 건 우리만의 남다른 즐거움입니다. 하나라도 놓치기 안타까워 철을 따라 바뀌는 풍경을 사진기에 담아둡니다. 이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 아시나요?
▲ 풍성한 들판을 찍으며...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 갈 때, 시골마을 풍경을 보는 건 우리만의 남다른 즐거움입니다. 하나라도 놓치기 안타까워 철을 따라 바뀌는 풍경을 사진기에 담아둡니다. 이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 아시나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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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사라집니다. 길 한쪽엔 온통 흙더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다녀본 곳 가운데에 왜관부터 구미, 선산, 의성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곁에는 온통 이렇게 아름답지 못한 풍경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풍성한 들판이 자꾸만 사라집니다. 길 한쪽엔 온통 흙더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다녀본 곳 가운데에 왜관부터 구미, 선산, 의성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곁에는 온통 이렇게 아름답지 못한 풍경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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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찻길을 뒤로 하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논길 사이로 갔습니다. 선산에서 의성 낙정리까지 가는 마을길은 지난날 우리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자주 지나다니던 곳이랍니다. 한참 동안 신나게 달려왔는데, 그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어졌습니다. 길이 있어야 할 곳에는 커다란 산성처럼 봉곳이 솟아오른 크고 높은 흙더미들만 쌓여 있었어요. 바로 4대강 살리기 사업 때문에 낙동강에서 퍼낸 '준설토'를 온 천지에 쌓아둔 것이랍니다.

마을길을 지나오면서 이맘 때면 늘 보았던 금빛 출렁이는 논은 온데간데없고, 길옆으로 흙더미를 쌓아 놓은 것만 보고 왔지만, 그렇다고 길까지 없애서 막았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요. 한동안 멍한 채로 서서 우리 앞을 가로막은 큰 산성을 바라봤습니다. 그야말로 이게 바로 '명박산성'이네요. 이 길 모퉁이만 돌면 닿을 수 있는 길을 코앞에다 두고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는 내내 '4대강살리기' 공사 때문에 쉴 새 없이 오가는 덤프트럭을 피해 다니느라고 초조하기도 했고, 길 가에 키 작은 풀들조차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흙먼지에 덮여있어 안쓰러운 마음을 안고 왔답니다. 게다가 도개면에 들어섰을 때엔, 대구광역시가 구미 땅에다가 일을 펼치고 있는 '취수원'을 절대로 세울 수 없다며 온 마을 곳곳에 주민들의 한숨이 적힌 펼침막을 보면서 왔지요.

나라에서 하는 어떤 큰일을 두고 모두가 다 찬성하고 좋아할 수는 없다지만, 거의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반대하는 일을 애써서 하려 하고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정책도 참 안타까웠답니다.

지난해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풍경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익숙한데도 언제나처럼 영 마음이 개운치는 않습니다.
▲ 4대강 살리기 지난해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풍경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익숙한데도 언제나처럼 영 마음이 개운치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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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온통 큰 삽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언제나 맑고 힘차게 흐르던 강물은 빛깔마저 뿌옇습니다.
▲ 4대강살리기 낙동강은 온통 큰 삽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언제나 맑고 힘차게 흐르던 강물은 빛깔마저 뿌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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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뉴스에서 자주 듣던 말인데, 실제로 보면, 참으로 알맞은 비유이다. 라고 생각됩니다.
▲ 삽질공화국? 언젠가부터 뉴스에서 자주 듣던 말인데, 실제로 보면, 참으로 알맞은 비유이다. 라고 생각됩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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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나중에는 쌀도 모자라서 난리가 나지 않을까?

"오늘 아침 뉴스에서 올해 쌀 수확량이 10%나 줄었다고 하던데, 이러다가 내년에는 진짜로 쌀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칠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우리가 다녀본 곳만 해도 벌써 그게 얼마야? 저기 왜관에서부터 구미, 선산, 그리고 여기까지 낙동강 옆에는 저렇게 온통 흙더미들로 채워 있으니, 그 넓은 땅에서 나던 곡식들은 뭘로 감당하겠어."
"에고, 그렇게 되면 진짜 큰일이다. 아무리 우리나라의 쌀 소비가 줄었다지만, 이 넓은 땅을 다 저래 만들어 놨으니, 그리고 어디 낙동강뿐이겠어? 다른 곳에도 마찬가지일 거 아냐?"

얼마 앞서 채솟값이 너무나 크게 올라 한바탕 난리(?)를 치렀지요? '기다 아니다' 말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4대강 살리기 사업' 때문에 강 둘레에 있던 그 많은 논과 들이 모조리 강에서 퍼낸 흙더미로 채워졌으니, 푸른 채소와 풍성한 곡식이 자라야 할 땅이 없어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랍니다.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풍성한 시골 들판을 사진에 담으면서, 보기만 해도 뿌듯하고 내가 마치 농사꾼이라도 된 듯이 마음이 넉넉해지곤 했는데, 이젠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답니다. 강 옆에 있는 땅은 모조리 산성처럼 우뚝 우뚝 서 있는 흙더미들한테 내어준 지 오래 되었지요.

대구 사람들 먹을 물을 대줄 취수원을 여기 구미에다가 세운다고요? 마을 사람들 한숨 섞인 소리가 마을 곳곳마다 펼침막으로 서 있습니다.
▲ 구미시 도개면 마을 들머리 대구 사람들 먹을 물을 대줄 취수원을 여기 구미에다가 세운다고요? 마을 사람들 한숨 섞인 소리가 마을 곳곳마다 펼침막으로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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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어디 숨이라도 쉬겠어요? 푸른 빛으로 싱싱하게 자라야 할 풀들은 숨도 쉴 수 없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때문에 아파하는 또 다른 목숨들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작은 풀들도 숨을 쉬어야 살 수 있습니다.
▲ 4대강 살리기 때문에 풀들이 아파요! 이래서 어디 숨이라도 쉬겠어요? 푸른 빛으로 싱싱하게 자라야 할 풀들은 숨도 쉴 수 없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때문에 아파하는 또 다른 목숨들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작은 풀들도 숨을 쉬어야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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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낙동강 둘레에는 이 큰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구미시 숭선대교입니다. 이날도 이 큰 트럭들 때문에 자전거를 탄 우리는 바짝 쫄아야했습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이지만, 그거 아세요? 덤프트럭 모는 기사님들, 이 큰 차만으로도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같이 작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이 차만 봐도 겁이 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위협을 하고 가시는지요. '비켜!' 하고 소리치듯 큰 소리로 경적 좀 울리지 마세요. 이날도 두 번이나 그런 소리를 들었답니다.
▲ 덤프트럭 지금 낙동강 둘레에는 이 큰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구미시 숭선대교입니다. 이날도 이 큰 트럭들 때문에 자전거를 탄 우리는 바짝 쫄아야했습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이지만, 그거 아세요? 덤프트럭 모는 기사님들, 이 큰 차만으로도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같이 작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이 차만 봐도 겁이 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위협을 하고 가시는지요. '비켜!' 하고 소리치듯 큰 소리로 경적 좀 울리지 마세요. 이날도 두 번이나 그런 소리를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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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살리기 사업 제 32공구 낙단보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고려시대 전기 것으로 보이는 마애보살좌상이 나왔다고요?
▲ 낙단보 낙동강 살리기 사업 제 32공구 낙단보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고려시대 전기 것으로 보이는 마애보살좌상이 나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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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제 거기서 고려시대 마애보살좌상이 나왔다고?

가을을 맘껏 느끼러 나갔다가 씁쓸한 마음을 안고 돌아온 다음날(18일), 다녀온 이야기를 담아 기사를 쓰려고 사진을 다듬고 있었어요. 손전화기에서 울리는 트위터 알림 소리에 열었더니, 아니 이게 웬일이래요?

누군가가 올려준 기사 링크를 따라가니, 우리가 어제 다녀온 바로 그곳 '낙단보' 공사 지역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마애보살좌상'이 나왔다고 하네요. 지난 14일에 처음 발견되었다는데, 그 사진을 보니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또렷하게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네요. 어찌된 일일까요? 아무튼 나라에서 하는 일이고, 또 크게 마음 쓰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이런저런 현장(?)들을 많이 봐왔어도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이 나랏일이 조금 더 멀리 보고 두루두루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일이었으면 하네요.

모처럼 다녀온 자전거 나들이길, 오가는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속이 그리 편하지는 않네요. 앞으로도 이런 안타깝고 씁쓸한 풍경을 계속 봐야 할까요? 글쎄요. 저는 적어도 지난해처럼 늘 우리 두 바퀴가 가는 곳에 언제나 힘차게 흘러가는 낙동강과 푸르고 풍성한 논과 들을 보며 아름다운 풍경에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태그:#4대강살리기, #대운하, #낙동강32공구, #마애보살좌상,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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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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