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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중앙에 있는 무대에서의 마이크 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황진이'를 부르는 자갈치 아지매의 목소리가 방문객들을 움직이게 했다. 바로 부산 자갈치 축제였던 것이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이 축제는 올해로 19회 째가 됐다. 부산 자갈치축제는 10월 14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렸다.

 

자갈치 아지매가 노래를 부른 것은 '자갈치 아지매 한마당'에서 였는데, 우승자에게 소정의 상품을 제공하는 익숙한 행사였다. 이어진 다음 무대는 의외로 자갈치 아저씨의 것이었다. 우스꽝스런 앞치마를 두르고 나온 그는 무대를 구경하던 노인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 듯한 클론의 '난'을 부르기 시작했다.
 
반응 없이 혼자서 열심히 부르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무대 사회자는 곧 그에게 '혼자서 자뻑을 한다'며 익살스러운 진행으로 그를 무대 밖으로 보냈다. 젊은 층이 눈에 많이 띄지는 않았지만, 유난히 파랗던 하늘과 바다를 껴안은 무대의 관객들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그 때였다.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것을 본 관객들은 무대가 아닌 무대 옆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자갈치 축제가 특별히 마련한 대형 누리마루호였다. 이 배는 19세기 중엽의 네덜란드 범선을 똑같이 재현한 크루즈 유람선이다. 부산 시민들에게도 평소에 보기 힘든 대형 유람선이라 그랬는지 누리마루 호를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설렘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 날 누리마루 호에 승선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였다. 인기 속에 승선 접수는 일찌감치 마감되었고, 대부분은 안타까움으로 그 특별히 큰 유람선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렇게 축제가 한창이던 중앙을 벗어 나와 시장의 오른쪽 자갈치 시장의 도매시장 건물을 지나던 때였다. 곧 프로페셔널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산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거리공연의 가수였는데, 아쉽게도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이 거리의 음악가는 공연 수익금을 독거 노인분들을 위해 쓰겠다며 1장당 만 원이었던 CD를 팔았는데, 목적이 목적이다보니 그의 노래는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들렸다. 그의 노래를 몇 곡 듣고 팔리지 않는 CD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비교적 한산했던 곳을 떠나 다시 자갈치 아지매들의 공연이 있는 무대로 향했다.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온갖 체험활동을 위한 코너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고기야 놀자'라는 현수막을 걸은 활어 잡기 체험 코너였다. 할아버지 몇 분께서 활어 잡기를 실패하시고 체험장을 나가시자, 곧 외국인 세명이 활어를 잡겠다며 물로 들어갔다.
 
역시 그 곳에도 있던 사회자는 외국인들이 온다며 주위에 소리질렀고, 사회자의 의도대로 비교적 한산했던 체험장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어 카운트다운을 하는 사회자가 분위기를 돋구었고, 비로소 '고기야 놀자'는 활기를 되찾아갔다. 이 행사에서 고기를 맨손으로 잡은 체험자는 바로 옆에서 잡은 활어를 시식할 수 있었다.
 
 
체험장을 나와 중앙 무대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휴식을 취하러 자갈치 시장을 나오려던 참에 아픈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던 각설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갖가지 유머를 섞어가며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노래를 선사하였다. "이 거지가 무당팔자, 기생팔자, 팔자가 더러워서 그렇다"며 노래를 부른 그는 박수를 이끌며 그가 말한 '종합 예술'에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가장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에 맞았던 그는 지치지도 않는지 필자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더 많아진 관객 속에 서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꽤나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던 자갈치 축제의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했던 곳도 있었다. 자갈치 시장의 맨 왼쪽 구석에 있었던 건어물 시장이었는데, 그 곳에서 건어물 상회를 운영하던 상인은 "이 곳도 자갈치 시장인데 거리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축제를 한다고 해도 이 구석에서는 그다지 영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교적 자갈치 중앙에 위치했던 도매시장 건물의 상인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여기는 축제 특수란 그다지 없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도매시장의 구석에는 '부산시 수협의 일방적 횡포 재래시장 상인 다 죽인다'라는 문구의 현수막까지 걸려있다. 축제와 다르게 살벌하기까지한 분위기의 그곳은 축제와 함께 번영하지 못했던 도매시장 상인들의 아픔을 담아낸 듯 하였다.

 

이렇게 씁쓸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돌아 온 저녁 무렵의 자갈치 축제에서는 독거 노인들을 위한 CD를 팔던 앞의 '거리의 음악가'가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모습을 감추기 직전 일행과 함께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던 방문객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아직 CD는 많이 팔지 못했지만, 흥겨운 듯 몸을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는 거리공연의 음악가 또한 행복해 보였다. 그의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박수를 보냈고, 그렇게 자갈치 축제는 또 다른 하루를 기약하며 그날 일정을 마치고 있었다. 흥겨웠던 순간과 상인들의 아쉬움을 담은 채.


태그:#자갈치축제, #부산, #지역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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