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 청취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 청취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 라디오21


진지한 표정으로 관람중인 청취자들 진지하게 <작은 연못>을 관람하고 잇다.

▲ 진지한 표정으로 관람중인 청취자들 진지하게 <작은 연못>을 관람하고 잇다. ⓒ 라디오 21


인터넷 종합방송 매체 라디오 21이 영화관을 대관해 청취자들과 함께 보는 시간으로 마련한 <작은 연못> 영화 번개 열기는 뜨거웠다.

라디오21이 극장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작은 연못>을 청취자들과 함께 볼 영화로 결정한 것은 출연 배우며 라디오21의 창립멤버이면서 주주이자 이사인 문성근씨가 기꺼이 번개자리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사나운 날씨에도 상영관을 꽉 메운 관객들은 미동도 없이 화면을 주시했다. 때때로 나직이 한숨을 내쉬거나 살짝 눈물을 닦아 내는 모습까지 라디오 21 카메라 렌즈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작은 연못>은 미궁의 사건으로 남았던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 무차별 학살사건'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자는 모두 사살하라."

명령에 따라 생각없이 총격을 가하던 병사는 쌍안경으로 젖먹이 어린아이와 노인, 만삭의 임산부 등 무차별 사격을 당하는 상대가 그저 순박하기만 한 시골 주민의 피난 행렬인 것을 알고 잠시 갈등한다.

"그들은 무고한 시민이 틀림없습니다. 우리에게 무고한 시민에게 계속 총격을 가하라는 겁니까?"

무선교신을 통한  항변은 아무런 무게감을 지니지 못한 채 전원 사살의 명령이 일방적으로 반복된다. 그쯤에서 진정 양심이 살아있는 병사였다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명령에 불복하더라도 무고한 양민에게 지속적인 총격을 가하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았을까? 겨우 나흘간 한 마을 주민이 모두 몰살당해 겨우 10여명이 살아남았다.

전쟁을 피해 가마봉으로 피신했던 노근리 주민들은 '도락구(트럭)에 실어 남쪽으로 피난시켜준다'는 미군의 거짓말에 속아 가마봉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남쪽으로 피난하려던 그들을 기다린 것은 도락구가 아니라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자는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미군들이 퍼부은 공습과 무차별 기관총 사격이었다. 순진한 민중들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미군이 왜 쏴! 빨갱이가 쏘겄지"라며  영문도 모른 채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소대장은 미친놈(madman)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발포하라. 모두 쏴 죽여라(kill'em all). 저는 총을 겨누고 있던 사람들이 군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거기에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목표물이 뭐든 상관없다.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맹인이든 불구자든 미친 사람이든 상관없다. 모두에게 총을 쐈습니다." -제 7기병연대 참전군인 조지 얼리의 증언

"다리 밑은 모래와 자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맨손으로 구멍을 팠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들을 바리케이드처럼 쌓아 그 뒤에 숨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울었습니다.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아이가 있는 곳을 향해 사격이 가해져 또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자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개울물에 넣어 질식 시켰습니다." - '노근리 사건' 생존자 양해찬씨 증언

1999년 9월 9일 AP통신의 최상훈 기자, 멘도자 기자 등의 "노근리 학살사건은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진실이 알려질 수 없는 사건이므로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현장취재, 가해자들과의 인터뷰 등 탐사보도를 통해 진상규명이 되기 시작했다. 미군 기병연대가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김"이라는 지시에 의해 노근리 주민들을 살상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이 문서와 교신 기록으로 드러난 것이다.

2001년 1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이 사건에 유감(regret)을 표했지만 미국 정부는 아직도 노근리 학살에 대한 법적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 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고, 충청북도는 노근리 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신원을 위해 2008년 역사공원 건립을 시작했다.

시체를 총알받이로 총격의 사각지대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증언

철로위 폭격에서 엄마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 엄마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가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다.

▲ 철로위 폭격에서 엄마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 엄마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가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다. ⓒ 라디오21



<작은 연못> 출연 배우 문성근씨에 따르면 우는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물에 질식사 시킨 아버지, "가,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세상에 말해"라며 등을 떠미는 연인을 사지에 남겨두고 맨 몸에 진흙을 바르고 어둠을 틈타 도망쳐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 증언에 토대한 사실의 재현이다.

다행히 총격의 사각지대로 몸을 피한 십여 명은 시체를 바리케이트처럼 쌓아 시체를 총알받이삼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시체를 벽처럼 쌓아 시체에 총알이 박힐 때마다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던 생존자들을 생각해 이 장면만큼은 재현할 수 없어 빼기로 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생존자들을 어렵게 설득하는 작업, 4년간의 현장답사라는 노력으로 제작된 영화 작업이 넘어야 산들은 참으로 많았다. 배경 무대를 되살리기 위해 그래픽으로 일일이 지붕 작업   등을 다시 해야 했고 그 작업은 자원봉사로 이루어졌다.

투자자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돈벌이가 안 된다고  투자를 하지 않아, 강신일, 이대연, 고 박광정 등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관객 100명이 한 필름을 마련해 각 상영관에 거는 방식으로 개봉하는 전에 없는 유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관객과의 대화 중인 문성근씨 <작은 연못> 관람이 끝난 후 문성근씨가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관객과의 대화 중인 문성근씨 <작은 연못> 관람이 끝난 후 문성근씨가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라디오 21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영화적 구성면에서 본다면 도대체 왜 그렇게 끔찍한 학살이 일어나야 했는지 극적인 갈등 구조가 전혀 보이지 않아 밋밋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많다. 거기에 대해 문성근씨는 이렇게 답했다.

"많은 분들이 '극적 갈등 구조가 없어 영화가 너무 밋밋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바로 갈등이 없는 그것이 바로 갈등이며 비극이다. 실제로 노근리 마을 사람들은 그저 미군이 시키는 대로 따라 가다보니 어느새 마을 주민 모두가 죽어갔다. 아무런 이유도 없고 영문도 모른 채 '미군이 총을 쏜 게  아닐 거야'라면서 죽어 간 것이다. 빨치산 프락치가 섞여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저 소문일 뿐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미군의 학살 기록은 비밀에 부쳐진 채 남아있었고 교신을 했던 병사의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락별과 손병휘씨 뒷풀이 자리에서 락별을 소개하는 손병휘씨

▲ 락별과 손병휘씨 뒷풀이 자리에서 락별을 소개하는 손병휘씨 ⓒ 라디오 21


번개에 참석했던 이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뜨거운 열정이다. 아르메니아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전문이'라는 아이디의 여성은 이렇게 고마움을 전했다.

"노근리 사건에 대해 솔직히 잘 몰랐다. 돌아가 인터넷으로 자세히 찾아보겠다. 모르던 역사를 알게 돼 8월 둘째 주면 돌아가야 하는데 고국에 휴가 나와 가장 보람된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꼭 봐야 할 좋은 영화를 봐서 에너지를 가득 충전한 기분이다. 돌아가 다시 휴가 나올 때 까지 많은 힘이 돼 줄 것 같다. 좋은 시간 만들어 준 라디오 21에 감사한다."

질문을 하고 있는 유시춘씨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이 노근리 전쟁 피해자 보상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 질문을 하고 있는 유시춘씨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이 노근리 전쟁 피해자 보상 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 라디오21


유시춘(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씨는 "노근리 희생 주민들의 전후보상 실현을 위해 국제전쟁보상위원회에 피해 보상을 청구할 생각은 없는가?"하고 물었고 문성근씨는 "노근리 학살에 대한 법적 책임 묻기 위해 이미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다. 다방면으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전쟁 범죄를 인정하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아 절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임계리 주민들이 몰살당한 '노근리 학살 사건'은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던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일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실재했던 비극적 전쟁 범죄 사건이기에 반드시 기억해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우리의 역사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들의 것이기에.

문성근씨와 손병휘씨 영화 시작전 의자에서  쉬고 있는 문성근씨와 손병휘씨

▲ 문성근씨와 손병휘씨 영화 시작전 의자에서 쉬고 있는 문성근씨와 손병휘씨 ⓒ 라디오 21


8월 7일 종합 인터넷 방송 라디오 21tv가  기획한  문성근과 함께 하는 <작은연못>은 아트 선재센터에서 상영되었으며 김병준 전 참여정부 부총리 부부, 임수경, 유시춘, 노혜경, 손병휘,이윤정, 이현주, 정철카피, 락별 등 진행자를 비롯한 200여 명의 청취자들이 함께 했다.

라디오 21tv 의 양경숙 편성본부장은 '청취자들의 문화적 욕구가 뜨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정기적으로 기획해 트위터, 페이스 북을 통해 청취하는 청취자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라디오 21에도 송고했습니다.
작은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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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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