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린 나날, 어머니는 비닐봉지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았습니다. 1970∼80년대에 어린 나날을 보내면서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서 이웃 어머니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비닐봉지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고 떠올립니다. 요즈음은 너무 흔하다 못해 넘치고 쌓이는 비닐봉지이지만, 지난날 어머니들은 봉지 하나 알뜰히 챙겨 요모조모 잘 쓰셨습니다.

어머니들이 그러모으는 비닐봉지란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올 때에 받는 비닐봉지로 그치지 않습니다. 라면을 끓여 먹고 남는 비닐봉지라든지, 아이들한테 사 준 과자를 담은 비닐봉지라든지, 식빵을 담은 비닐봉지라든지 잘 헹구고 곱게 접어서 크기에 따라 차곡차곡 갈무리했습니다.

비닐봉지가 넘쳐서 버려야 하는 적은 드물었다고 떠오릅니다. 주둥이만 살살 뜯으면 물이 새지 않는 튼튼한 봉지 감이 되는 과자봉지요 라면봉지이기에, 이런 봉지에 찬거리를 담기도 하고 나물을 담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비닐봉지 못지않게 넘치는 플라스틱통에 찬거리와 나물을 담아서 나누지만, 지난날에는 으레 이런 비닐봉지에 담아서 나누었습니다.

비닐봉지는 빈 병에 참기름이나 간장을 담고 뚜껑을 막을 때에 잘 쓰이기도 합니다. 봉지로 뚜껑을 막고 고무줄로 휘휘 감으면 걱정이 없습니다. 쓰레기봉투가 따로 나오지 않던 때이기도 해서, 가게에서 주는 비닐봉지는 집집마다 쓰레기봉투 노릇을 합니다. 어디에서 비닐봉투가 남거나 나뒹굴고 있으면 어머니는 으레 얌전히 접어서 고이 챙겨 놓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살림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어머니가 비닐봉지를 구김살없이 잘 펴서 갈무리하면, 저는 옆에서 함께 비닐봉지를 구김살이 지지 않도록 펴 놓곤 했습니다. 이 버릇은 오늘날까지 오래오래 이어집니다. 가게에 들를 때에 비닐봉지를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어쩔 수 없이 비닐봉지를 받아야 할 때가 늘 있고, 생협에서 물건을 장만할지라도 곡식이나 먹을거리를 담는 봉투는 모조리 비닐봉투입니다.

초코파이가 100원일 때뿐 아니라 50원일 때에도 있었는데, 이런 지난 발자국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굳이 이런 일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한테는 떠올릴 일이 많으니까요. 초코파이는 1991년 것이고, 가나 밀크리치는 1989년 것입니다.
 초코파이가 100원일 때뿐 아니라 50원일 때에도 있었는데, 이런 지난 발자국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굳이 이런 일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한테는 떠올릴 일이 많으니까요. 초코파이는 1991년 것이고, 가나 밀크리치는 1989년 것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비닐봉투를 알뜰히 펴고 접어서 찬장에 건사하는 버릇을 물려받는 가운데, 나중에는 모든 과자붙이 껍데기를 그러모으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건사할 마음은 없었으나, 국민학교 1∼2학년 무렵이 아닌가 싶은데, 한 해가 멀다 하고 물건값이 껑충껑충 뛰니까, 이렇게 뛰는 물건값이 참 끔찍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이렇게 껑충껑충 뛰는 물건값을 아무도 떠올리지 못하겠다 싶어, 제 깜냥껏 과자 껍데기를 모으면 어떻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자 껍데기를 그러모은다고 한다면 제가 이 껍데기를 둘 수 있는 곳은 집안입니다. 형하고 함께 쓰는 방구석입니다. 책상서랍에 이 과자 껍데기를 그러모으고 있으면 어머니는 말씀합니다. "개미 꼬인다. 버려." 책상서랍은 안 되겠구나 싶어 책 사이에 꽂아 놓습니다. 한동안 어머니는 당신 아이가 과자 껍데기를 어디에 갈무리해 놓는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방 청소를 하면서 '어딘가 다르게 뚱뚱해진 책'을 알아봅니다. 왜 책이 뚱뚱해졌는가 하고 펼치면, 책 사이사이에 과자 껍데기가 잘 펴진 채 꽂혀 있습니다. 이때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책을 탈탈 털어서 책마다 건사해 놓았던 과자 껍데기를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갖다 버리고, 쓰레기통이 다 차면 동네마다 있는 큼직한 쓰레기구덩이에 휙휙 집어던집니다.

이렇게 책 사이사이 건사해 놓던 과자 껍데기가 종잡을 수 없이 사라지면 과자 껍데기 모으는 버릇을 버릴 만하지만, 저는 과자 껍데기 모으는 버릇을 버리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버리면 버릴수록 '예전 과자 껍데기'가 몹씨 안타깝습니다. 어머니한테는 '아이 녀석이 집을 쓰레기 구덩이로 만들 생각인가' 싶어 근심스럽지만, 아이로서는 '이런 과자 껍데기 하나일지라도 내가 살아가는 자취를 담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니까요.

150원짜리 밀크캬라멜 껍데기.
 150원짜리 밀크캬라멜 껍데기.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어머니는 날마다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쓸고 닦으면서 살림을 꾸립니다. 아들내미는 집안 치우기에 게으르면서 과자 껍데기를 자꾸만 모읍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초콜릿 껍데기 100장 남짓 꽂혀 있던 책이며 껌종이 수백 장이 꽂혀 있던 책을 통째로 내다 버립니다. 당신 아이가 쓰레기 구덩이를 뒤져 찾을까 싶어(이렇게 되찾은 적이 여러 차례 있으니), 아주 멀리멀리 애써 들고 가서 버리셨습니다. 아이는 울고 불고 방방 뛰지만 되찾을 길이 없이 버려진 책과 과자 껍데기는 도로 찾을 수 없습니다. 없는 돈을 털어 갖가지 초콜릿을 하나씩 해마다 사 먹으며 그러모은 껍데기는 아주 사라져 버리고, 이렇게 하루아침에 '모으기' 한 물건이 사라지니 다시 모을 꿈을 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렇게 아이 물건을 버리고 나서는 두 번 다시 당신 아이 물건을 버리지 않습니다.

1991년 명절날, 작은아버지가 큰집인 우리 집에 오면서 초코파이 큰 상자를 가지고 옵니다. 이 초코파이를 하나하나 뜯어 먹다가 생각합니다. '여태껏 모은 과자 껍데기는 어쩔 수 없어. 그러나 이 초코파이 껍데기라도 모아 놓으면 어떨까? 이제 이 초코파이도 한두 해만 있으면 100원이 아닌 200원이나 300원으로 오를 수 있는데, 먼 앞날에 새로 태어날 아이들은 초코파이가 100원을 하던 때가 있는 줄 생각조차 못하겠지?'

1988년 여름에 '200원짜리 롯데 가나 밀크리치 쵸코렡'을 하나 사 먹으며 껍데기를 남깁니다. 1991년 봄에 '300원짜리 롯데 가나 쵸코렡'을 하나 사 먹으며 껍데기를 하나 더 남깁니다. 1989년 봄에 '150원짜리 오리온 밀크캬라멜'을 한 통 사 먹으며 껍데기를 하나 남기는데, 이 껍데기에는 1원짜리 5원짜리 10원짜리 쇠돈하고 인천 버스 쇠표 몇 가지를 건사해 놓습니다.

캬라멜 껍데기에는 낡은 쇠돈을 넣어 놓고 있습니다. 한창 올림픽 분위기를 달구고 하던 무렵에 나온 캬라멜 통이라서 옆에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같은 글월까지 적어 놓고 있었어요.
 캬라멜 껍데기에는 낡은 쇠돈을 넣어 놓고 있습니다. 한창 올림픽 분위기를 달구고 하던 무렵에 나온 캬라멜 통이라서 옆에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같은 글월까지 적어 놓고 있었어요.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요즈음도 길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사 먹어야 할 때라든지, 무슨 모임자리에서 주전부리로 과자 부스러기를 줄 때에 껍데기를 살살 뜯어 책 사이에 책갈피 노릇을 하고자 꽂아 놓습니다. 집에 책이 많고 책갈피 써야 할 종이조각이 많이 있어야 하니, 아이 엄마는 딱히 무어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종이조각이나 비닐 부스러기가 너무 많으면 저 스스로 버리려고 합니다. 모으기가 나쁘지 않고, 모으기를 하며 새삼스러운 뜻을 남길 수 있지만, 이제는 과자 껍데기 아니고도 건사할 물건이 참 많고, 우리 아이 물건만 해도 나날이 상자더미로 늘어나거든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태그:#내가 살던 인천, #인천이야기, #초콜릿, #캬라멜, #최종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