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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에 숨은 과학>(봄나무, 2010)

 ├ 글 : 정창훈, 그림 : 한성민

 └ 책값 : 1만 원

 

 

자전거 한 대에는 숱한 과학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과학 이야기를 좀 더 헤아리거나 살필 수 있으면 자전거를 한결 즐거우며 사랑스레 즐길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자동차 한 대에도 숱한 과학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자동차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이와 같은 과학 이야기를 더욱 돌아보거나 보듬을 수 있으면 자동차를 한껏 즐겁고 신나게 즐길 수 있을 테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가 쓰는 모든 물건에는 과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과학 이야기 하나 깃들지 않은 물건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들이 이러한 대목을 살피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대목을 애써 살피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러저러한 물건을 쓸 수 있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많이 파는 책 가운데 '과학 그림동화'와 '과학 글동화'가 꽤 많습니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읽을 무언가를 건넨다(교양)는 뜻에다가 아이들한테 무언가 가르칠 수 있다(학습)는 뜻을 더한 책입니다. 우리 삶 어디를 보더라도 과학이 깃들어 있으니 굳이 '과학 무엇'이라 내세우지 않아도 되건만, 이처럼 '과학 무엇'을 내세워야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주머니를 엽니다. 아이한테 교양과 학습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싶어 이러한 책을 선뜻 장만합니다.

 

<자전거에 숨은 과학>이라는 책은 책이름부터 아예 '자전거와 과학'이라는 틀을 내세웁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한테 이러한 책을 선물로 내민다면 아이들로서는 자전거를 한결 더 아끼거나 살필 수 있어 무척 좋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이를테면 "자전거 전국 여행"이랄지 "자전거 세계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일 때에도 아이들 눈길을 금세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전거를 다루는 손"이라든지 "자전거에 담은 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들 눈길은 얼마나 쏠릴 수 있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이러한 이름을 얼마나 눈여겨 볼까요.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미야오 가쿠 그림) 13권 20쪽을 보면, 자전거집 딸내미가 제 동무한테 "자전거는 기계라, 마음 따윈 갖고 있지 않아. 하지만 만약 마음이 있다면 너한테 이렇게 말했을 거야. 매일 타 줘서 고맙다고. 더러워져도, 흠집이 나도. 아마 자전거에게는 그게 가장 기쁜 일 아닐까?" 하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참말로 자전거는 기계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놓고 자전거에 무슨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생각날개를 펼쳐서 '자전거한테 마음이 있다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할까?' 하고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에 깃든 과학을 말한다 할 때이든, 자전거에 숨은 과학을 보여준다 할 때이든, 우리는 자전거와 얽힌 과학이 우리 삶과 넋에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함께 돌아볼 수 있어요.

 

.. 자전거 핸들도 자동차 핸들처럼 축에 붙어 있어. 물론 자전거 핸들은 둥근 원이 아니라 막대 모양이지. 어쨌든 자전거 핸들도 자동차 핸들과 마찬가지로 축바퀴의 원리를 이용한 도구야 ..  (44쪽)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자전거를 글감으로 삼은 책 <자전거에 숨은 과학>은 자전거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전거에 깃든 과학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전거 책이 아닌 과학 책입니다. 자전거 이야기책이 아닌 과학 이야기책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지식이나 학문으로는 거의 모르거나 생각조차 않으나, 몸으로는 다 알거나 깨달은 이야기를 과학으로 풀어낸 책 <자전거에 숨은 과학>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전거를 사랑하려는 사람보다는 과학을 사랑하려는 사람한테 걸맞거나 어울립니다. 자전거를 즐겁게 타려는 사람보다는 과학을 즐기고 싶은 아이한테 알맞거나 들어맞습니다.

 

..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려면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해. 하지만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에는 여러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잖아. 바퀴와 지면 사이의 마찰력, 바퀴의 축에서 생기는 마찰력, 공기의 저항력 같은 힘들 말이야. 이런 힘들은 모두 자전거가 달리는 걸 방해하고 있어. 그래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가 저절로 멈추는 거야. 자전거 바퀴 축에 윤활유를 치는 이유는 마찰력을 줄이려는 거야. 그럼 자전거가 더 잘 달리지 ..  (110∼111쪽)

 

사람들이 자전거를 장만할 때에 '자전거 설명서'를 챙기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모든 자전거에는 다른 물건하고 똑같이 '제품 설명서'가 들어 있습니다. 손전화 한 대를 사도 두툼한 설명서가 딸립니다. 사진기를 사도 사진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밝힌 설명서가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장만하는 사람치고 자전거에 딸린 설명서를 챙겨 읽는다든지 꼼꼼히 살핀다든지 하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거의 아무도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면서 '설명서에 다 나온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묻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전거를 이야기하는 책'에 깃든 적잖은 이야기라든지 '자전거를 손질하는 정보를 다룬 책'에 깃든 웬만한 이야기는 모조리 자전거 설명서에 들어 있습니다. 자전거 설명서만 잘 읽으면 자전거를 어떻게 배워서 타야 하는가부터, 자전거를 올바르게 타는 매무새에다가, 자전거가 망가졌을 때 고치는 법까지 찬찬히 익힐 수 있습니다.

 

마땅한 소리인데, 자전거에 깃든 과학 이야기 또한 자전거 설명서에 낱낱이 적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전거 설명서는 '과학'을 내세우지 않으나, 자전거가 구르는 법이나 멈추는 법이나 미끄러지는 법 모두 '과학'하고 잇닿아 있거든요.

 

.. 앞 브레이크는 제동력이 좋지만, 회전력이 생기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 또 뒤 브레이크는 회전력이 생기지 않지만, 제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쉽지. 자전거의 속도를 낮출 때는 이 두 브레이크의 성질을 잘 이용해야 해 …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으면 자전거가 움직이기 시작해. 자전거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되면 먼저 뒤 브레이크를 잡아. 그래야 자전거가 흔들리지 않거든. 뒤 브레이크를 급하게 잡으면 자전거가 미끄러져. 관성의 법칙에 따라 몸과 자전거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이지 ..  (114쪽)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이든, 도시 아파트숲에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이든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보호장구를 알뜰히 챙기라고 이야기합니다. 보호장구를 하지 않은 어버이를 보면 나무라는 분도 제법 있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로서는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으면 퍽 아슬아슬하다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탈 때에 반드시 보호장구를 하도록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날을 거슬러 생각하면, 지난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어느 누구도 헬멧이나 보호장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에는 도시 골목길도 시멘트가 깔리지 않은 흙길이 꽤 많았습니다. 아니, 도시 골목길에 시멘트가 깔린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흙길에서는 달리다가 넘어져도 무릎이 크게 벗겨지는 일이 드뭅니다. 으레 긁힌 생채기만 납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질 때에도 비슷합니다. 풀숲이 우거진 자리에 넘어질 때하고 시멘트 전봇대나 쇠붙이 자동차를 들이받을 때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이제는 법으로 못박았을 뿐 아니라 길바닥에도 큼직한 글씨로 새겨 놓는데, 학교 둘레에서는 30킬로미터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앞 길에서 자동차를 30킬로미티 밑으로 해서 달리는 자동차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 마음이 이렇습니다. 골목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 한강에 있는 자전거길을 달릴 때에 이곳 한강 자전거길이 '몇 킬로미터 넘는 빠르기'로 달리지 않도록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전거길에서 자전거한테 달리도록 하는 '가장 높은 빠르기'는 20킬로미터입니다. 20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면 서로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이 빠르기를 넘지 않도록 못박습니다. 그렇지만, 서울 한강 자전거길에서 20킬로미터 밑으로 달리려 하는 자전거꾼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또한, 자전거길에서 20킬로미터 밑으로 달릴 때에 자전거끼리 부딪히면 서로 얼마나 다치는지, 또 10킬로미터나 15킬로미터, 또는 7킬로미터로 달리다가 넘어져서 길바닥에 엎어지면 얼마나 다치는가를 제대로 아는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헬멧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꼭 착용해야 하는 보호 장구예요. 헬멧을 쓰면 자전거 사고가 났을 때 머리 손상의 85퍼센트, 그리고 뇌 손상의 90퍼센트를 막을 수 있다고 해요. 헬멧 안쪽의 완충재나 바깥쪽의 플라스틱은 깨지면서 충격을 흡수해요. 따라서 완충재나 플라스틱에 금이 가 있으면 완충 기능이 떨어져요 ..  (141쪽)

 

자전거에 숨어 있다는 과학을 말하는 <자전거에 숨은 과학>은 책 끝자리에 아이들보고 헬멧을 반드시 쓰라고 이야기합니다. 틀림없이 헬멧을 썼을 때에는 안 썼을 때보다 한결 낫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들 자전거는 20킬로미터를 넘는 일이 드뭅니다. 아니, 아이들 자전거는 10킬로미터를 살짝 넘는 빠르기입니다. 서울이든 시골이든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만한 자리를 어른들은 마련해 놓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겨우 자전거를 타겠다 싶은 골목이나 빈터에는 어른들이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자동차를 내달릴 뿐 아니라 아무 데나 차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이들은 사람들이 걷는 거님길로 자전거를 자주 다니는데, 사람들이 걷는 거님길에는 얼마나 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아무렇게나 서 있는지요. 또, 가게마다 얼마나 많은 짐과 물건을 거님길에 쌓아 놓고 있는지요. 게다가, 거님길에는 얼마나 많은 전봇대와 배전반과 맨홀 따위가 있으며, 턱은 얼마나 높은지요.

 

참말, 우리 터전을 돌아본다면, 우리들은 자전거 한 대를 놓고 과학을 말하기 앞서 자전거에 얽히거나 깃들어야 할 만한 따스하고 너른 마음을 이야기할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한다든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든지 하는 이야기책은 곧잘 나오지만, 정작 자전거를 내 몸으로 여기듯이 사랑하는 이야기책이라든지 자전거를 내 삶으로 곰삭이는 이야기책은 아직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제 막 자전거를 좋아하려고 하는 아이들한테마저 더 많은 지식과 더 새로운 정보를 집어넣어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든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 13권 70∼71쪽을 보면, 자전거집 딸내미가 "이 푸조(자전거)는 20년도 더 된 프랑스제 평범한 대중 자전거. 부품 따윈 전부 고철들이야. 그래도, 그래도! 내겐 이 세상에 이걸 대신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더! 소중한 것에 구형이나 가격 따윈 상관없다고!" 하고 외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말마디처럼 우리들이 타는 자전거는 이 자전거 한 대와 얽힌 이야기와 삶이 소담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이 자전거 한 대에 얽힌 과학 또한 돌아볼 만하고 생각할 만한 대목임에는 틀림없을 테지만, 자전거에 얽힌 과학을 아이들하고 나누기 앞서 자전거를 즐기는 마음과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전거를 아끼는 마음을 먼저 밝히고 나누며 이야기할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자전거에 숨은 과학>이라는 책을 덮으면서 무엇보다 이 대목이 아쉽습니다. 자전거에 숨은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얼마든지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과 돌보는 마음과 아끼는 마음을 펼칠 수 있는데, 이러한 마음자리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책 끝자리에 넣은 헬멧 이야기는 '헬멧 완충 기능'만 다룰 뿐, 어떠한 길에서 어떠한 빠르기로 달리다가 어떻게 부딪힐 때에 '완충하는 기능'인지를 제대로 과학답게 다루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산을 타는 자전거나 갖은 재주를 부리는 자전거를 탈 수 있으나, 여느 아이들한테는 여느 자리에서 타는 '생활자전거'입니다. 이 책 <자전거에 숨은 과학>에서도 여느 아이들이 여느 자리에서 타는 생활자전거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도록 이끄는 생활과학 이야기에 눈길을 맞추고 마음길을 모두어 놓았으면 한결 알차고 아름다우며 신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른한테든 아이한테든 학문하는 과학이 아닌 살아가는 과학일 때에 뜻이 있습니다. 지식이 넘치는 과학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과학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자전거에 숨은 과학

정창훈 지음, 한성민 그림, 봄나무(2010)


태그:#자전거, #책읽기, #삶읽기, #어린이책, #과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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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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