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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60번의 도전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할머니의 소식이 언론의 일면을 장식했습니다. 영광의 주인공은 차사순(69·전북 완주군 소양면) 할머니십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해외에서도 응원이 쇄도했고, 급기야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지난 3일부터 '차가 필요한 이웃에게 차를 선물하자'는 주제로 차 할머니에게 자동차를 선물하려 준비중이라는 훈훈한 소식입니다.

차 할머니는 2005년 4월13일 첫 필기시험을 본 뒤 계속 낙방했고, 드디어 지난해 11월 4일 전북운전면허시험장에서 950번째 2종 보통 필기시험에 도전해 커트라인인 60점으로 합격했습니다. 이후 9회의 기능 시험에서 낙방한 끝에 10번째 기능 시험에서 합격한 후 영광의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차 할머니가 필기시험에 합격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돈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인지대만 500만 원이 넘었고, 시험장과 운전학원 등을 오가는 교통비 등까지 합하면 2000만 원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안타까운 것은 적지 않은 64세의 연세에 시작했기 때문에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겠죠.

'면허'의 사전적 정의가 '특정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행정기관이 허가하는 일'인데, 차 할머니는 행정기관으로부터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허가받기 위해 5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이죠.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면허 운전행위, 정말 부당한가?

특정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행정기관이 허가하는 일을 말하는 '면허'는 국가로부터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받는다.
 특정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행정기관이 허가하는 일을 말하는 '면허'는 국가로부터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받는다.
ⓒ 대한침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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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가정'이라는 전제 하에 5년간 면허 취득에 노력해야 했던 할머니의 금쪽같은 시간을 아껴보도록 하겠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비록 면허 취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인연이 있었던 'F1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에게 도로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슈마허에게 사사받은 특훈 효과 덕분인지 얼마 후 할머니는 단기간의 교육으로도 전북 완주에서 손꼽히는 레이서로 거듭나게 됩니다.

할머니는 좋은 취지로 면허가 없고 운전할 줄 모르는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이 배운 훌륭한 운전 기술을 전수시켜 주고, 머지않아 할머니에게 도로연수를 받은 마을사람들 모두가 훌륭한 드라이버가 됩니다. 또한 뜻한 바 있어 장애아동들을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봉사활동도 하시는 등 운전에 의욕적이십니다. 이 역시 '소설'에 불과하니 지나친 태클은 잠시 놓아두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와 같이 봉사활동중인 마을사람들이 여느 때와 같이 장애아동들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다 불운하게도 교통단속에 걸려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라는 교통경찰의 요구를 받습니다. 운전 실력은 출중한 할머니와 주민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운전면허증'이 없었습니다.

과연 이 경우 교통단속에 걸린 할머니와 마을 주민들의 운전행위를 용인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금지해야 하는 것일까요?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레이서 실력을 갖춘 할머니에게 어이없이 시골 장터에 가실 때에도 운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니까요. 억울한 할머니는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도 운전을 할 수 있게 해달라며 도로교통법 제43조(무면허운전 등의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문을 두드립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무면허자의 운전행위를 금지한 도로교통법은 헌재 9명 중 4명의 합헌결정으로 '무면허 운전=불법'으로 남고 맙니다. 위헌결정을 내릴 정족수 6명에 불과 1명이 부족해 가까스로 합헌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차 할머니와 마을 주민들은 "사실상 위헌 결정과 같다, 앞으로 법과 제도가 바뀔 때까지 운전을 통한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했고, 운수업의 한 단체에서는 "합헌 결정은 당연하다, 국민 건강과 생명 보호를 위해 무면허 운전행위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환자의 자기결정권 해쳐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9일 "무면허 침·뜸술 금지한 의료법 '합헌'"이란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9일 "무면허 침·뜸술 금지한 의료법 '합헌'"이란 결정을 내렸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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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며칠 전 헌재에서 합헌으로 결정난 어떤 판결이 생각나신다면 매일 뉴스를 주의 깊게 보는 시사적인 사람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차 할머니로 대표되는 집단은 '뜸사랑'으로 대표되는 '무면허 침술단체'이고, 운수업의 한 단체는 '대한한의사협회'입니다. 그리고 '운전'이란 단어를 '의료'로 바꾸면 지난달 29일 헌재가 내린 판결의 내용이 됩니다.

헌재는 "의료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검증받은 사람이 의료행위를 맡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하다"며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의료행위를 전면 금지한 건 매우 중대한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합한 조치"라며 의료행위를 할 개인의 자유보다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 보장이라는 가치에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견을 제시한 5명의 재판관은 국민의 생명권 보호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누구한테 어떤 치료를 받을지 선택할 자유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장 강경한 반대의견을 제시한 김종대 재판관은 "몸에 생긴 질병을 치료할지 말지, 치료한다면 어떻게 치료할지 등을 결정할 권리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취재 중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예방의학과 아무개 교수는 사견임을 전제로 대체의학의 허용을 주장했습니다. 이 교수는 "어떤 치료를 받느냐의 권리는 전적으로 환자에게 있다"면서도 "그러나 무면허 의료인에게 치료를 받아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환자 자신이 져야 한다"고 역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혼란에 대해서도 "특정 대체의학이 허용된다면 시장에서 자체적인 자정·정화작용이 나타날 것이고 결국 시장에서 수용이 되거나 퇴출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구당 김남수
 구당 김남수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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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대한침구학회 회장(경희대 한방병원 침구과)은 이러한 의견에 대해 "매우 위험한 논리이며,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라면서 "의료행위라는 것은 생명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인 경우를 막기 위해 국가고시를 보고, 의료법으로도 규제를 받는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합니다. 

이재동 교수는 "이를 뽑는 행위나 점을 빼는 행위 등과 같이 큰 부작용이 없게 보이는 의료행위도 의료법의 규제를 받고 의료인들이 시술하는데, 이는 환자에 따라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만 번의 케이스 중 하나라도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당사자에게는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의료행위를 의료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현대 의학적으로 치료 행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치료의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법에서 정하는 의료인이 존재하는 한 의료행위는 법에서 정하는 의료인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헌재 판결의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침뜸요법, 진짜 부작용 없나?

한편 위헌에 표를 던진 과반수를 넘는 5명의 재판관은 "침술 같이 부작용이 낮은 시술도 의료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국민의 의료행위 결정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대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구당 김남수 옹은 5명의 재판관 의견을 지지하듯 "침뜸이 사람을 죽였다거나 불구자로 만들었거나, 환자의 돈을 착취했다면 모르겠지만 침뜸에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 입증됐고 시술 1회에 5만 원을 받아도 병원에 비해 비싼 금액이 아니다"며 "헌재의 결정은 옳은 선택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의계에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입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소현세자의 경우는 침 맞은 지 3일 만에 사망했고, 현종은 복통을 치료하기 위해 뜸을 뜨는 등의 치료를 했지만 호전되지 않고 사망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2007년 발생한 불법 사혈요법으로 인한 사망사건, 2009년에 발생한 무면허 쑥뜸방 10대 소녀 사망 사건 등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해 귀중한 목숨을 잃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례입니다. 한편 잘못된 침을 놓아 기흉, 혈흉 등이 생기는 부작용과 긴장성 기흉 등에 의한 사망의 위험성도 잘 알려진 침의 부작용 중 하나입니다.

침뜸을 시술받고 난 이후 사망하는 사고들도 발생하고 있고, 침의 경우 한의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38%에 육박하는 등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침뜸을 시술받고 난 이후 사망하는 사고들도 발생하고 있고, 침의 경우 한의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38%에 육박하는 등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 대한침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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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 김남수 옹은 "침뜸에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 입증됐고 시술 1회에 5만 원을 받아도 병원에 비해 비싼 금액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이번 헌재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구당 김남수 옹은 "침뜸에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 입증됐고 시술 1회에 5만 원을 받아도 병원에 비해 비싼 금액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이번 헌재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대한침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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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뜸에 대한 의료사고는 한의원 현장에서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부터 2007년 8월까지 '한의사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사고 건수는 모두 628건인데, 이 가운데 침구시술은 238건으로 37.9%를 차지했고, 약물 20.5%(129건), 핫팩·뜸·추나요법이 19.7%(124건) 순이었던 것으로 볼 때 침뜸의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인 것입니다.

이재동 교수는 "건강한 사람이 뜰 수 있는 '보건구'(주 : 질병 예방차원에서 뜨는 건강 뜸으로 한의계에서는 김남수옹의 '무극보양뜸'을 일제시대 '국민보건구'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라 하더라도 남녀, 체질 등에 따라 뜸을 뜨는 자리가 다르다"면서 "개인의 체질과 병의 정확한 진단이 제대로 담보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질병을 키우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대한한의사협회도 "충분한 교육과 실습을 통해 국가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의료인 면허는 국민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라며 "치료는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이뤄질 수 있으나 이러한 배경 없이 맹목적으로 불법적으로 시술되는 불법 무면허 한방의료행위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 돌아가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한 여러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있다, 앞으로는 관심을 가지고 외국의 자료와 우리나라에서의 충분한 검토를 할 것"이라면서도 "구당의 경우 국가에서 인정하는 침사의 면허가 있기 때문에 해당 의료행위를 허용할 것이지만, 사설 자격증을 받은 (뜸사랑)회원들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 규제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주는 것은 쉽지만, 다시 그것을 빼앗는 것은 어렵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법의 경우에도 허용하는 것은 쉽지만 허용 한 것을 다시 규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의료 행위의 전문성과 환자의 선택권 사이에서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이제 판단은 입법부에 계류된 여러 종류의 '유사의료 허용 법안'의 통과 유무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태그:#구당 김남수, #헌법재판소, #한의사협회, #뜸사랑, #무면허 의료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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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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