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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이맘 때 봉하마을에 갔으니 꼬박 1년 만입니다. 운구차가 들어오던 날 마을 초입에서 그를 기다리며 많은 생각과 다짐을 했는데, 돌이켜보면 지킨 것보다 지키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당시에는 서거가 5월이니 돌아가시면서도 올해 지방선거를 도와주시려 했구나 생각했는데요. 막상 선거일에 닥쳐보니 북풍으로 노무현 서거 1주년을 돌아보는 분위기가 되지 않는데다 지방선거의 핵심이라 할 정책 대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난감하였습니다. 이러다 사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안, 무상급식 문제 등의 핵심 이슈를 놓쳐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도 추스릴 겸 봉하마을에 다녀오게 된 겁니다.

 

제가 사는 창원에서 봉하마을은 멀지 않아 차로는 30~40분이면 닿을 거리인데요. 일요일 오전 2시 반경에 출발해 봉하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대략 한 50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일요일 오후라 사람들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가보니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는 들어가는 차량, 나가는 차량들로 만원이었지요. 줄지어 들어가는 차량들로 거북이 걸음을 했지만 날씨도 맑고 주변 풍광도 좋아 느긋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더 뿌듯하고 힘이 났습니다. 선거 전에 가길 참 잘했다 싶었습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마을에 들어서자 역시나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서거 이후 새로 지은 건물로 보이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작은 건물이 방문객을 처음 맞네요. 건물 앞에는 생전 사진들과 서거 후 그려진 추모 만화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시물들 한 켠에 "6월 2일 우리집은 꼭 투표를 하겠습니다!"라는 작은 현수막에 적힌 글이 마음을 다잡게 합니다.

 

내부에도 생전 사진들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켠에서는 영상물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갔을 것입니다. 빼곡이 남겨놓은 많은 메시지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네요.

 

조금 더 걸어가면 노무현생가가 나오고 맞은 편에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이 있습니다. 여기도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어요. 야외에 전시된 사진, 기사 등을 보고 걸어가다보면 내부로 이어지는데 이곳 역시 사진,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화장된 유골이 안장된 묘역에 다달았습니다. 묘역의 박석은 모두 추모의 글로 만들어졌지요. 모두 합쳐 1만 5천여 개라고 합니다. 헌화대를 거쳐 유골이 안장된 너락바위에 가보니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여섯 글자가 단촐하게 새겨져 있었어요. 비석받침에 쓰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를 마음에 새기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묘역 뒤편으로 보이는 봉화산 숲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저도 한번 올라가 보았습니다. 지난번에는 차마 가까이 가보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았는데, 직접 올라보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그날도 이 숲길을 이렇게 오르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절로 숙연해졌지요. 함께 오른 분들도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저기서 뛰어내릴 생각을 다했을까"하는 말씀을 주고 받으셨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그날의 상황을 그분의 입장에서 그려보고 있었던 겁니다. 부엉이바위 아래에는 의미 심장한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단 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파 금세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가 옆기념품 매장에 들러 몇 가지 물품을 구입했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봉하마을에 와서야 산 책, <운명이다>와 주황색 손수건, 작은 포스트잇입니다.

 

손수건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어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하고 가까운 우리에게만 따뜻한 사람이 아닌

넓은 우리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사람은

분노가 있는 사람이지요.

 

사람사는 세상

노 무 현

 

지금이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2009년 5월의 다짐을 다시 꺼내보라고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선거 전 봉하마을에 간 것은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 청년, 아이들 세대를 넘어 많은 이들이 여전히 줄지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분노를 읽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당장이 아닐지언정 언젠가 우리들의 분노가 표출될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http://sonsang.tistory.com에 썼습니다.


태그:#노무현, #봉하마을,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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