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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동기들과 함께 책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 일명 인문학회 '카르마'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책을 읽고 토론 하는 소모임이다. 다른 동아리와 다르게 이 모임은 동아리 방이 없었다. 체계를 갖춘 동아리가 아니고 적은 회원들의 소모임이라 딱히 동아리 방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처음에 인문학부 동기 5명으로 시작한 학회가 3년이 지나자 약 20명이나 되었다. 또 처음 만들 때처럼 인문학부(철학과, 사학과, 윤리과)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국어국문학과, 일본어문학과, 경영학과, 유전공학과 등의 학생들도 모였다. 다른 학과 학생들이 카르마에 가입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동아리 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2009년 학회장을 맡은 친구는 회장 선거 공약으로 안정적인 동아리 방을 꼭 쟁취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거 뭐 사람 많아도 골치 아프네. 아무래도 동아리방 필요 하겠제?"
"당연하지. 동아리 방 없으면 20명이나 되는 회원 어떻게 관리 하게? 1주 한 번 학습 할 때 만 얼굴 봐가지고 동아리 안돌아 간디."
"근데 방은 어떻게 구하노? 중앙동아리, 단과대학 동아리에도 등록을 하지 않아 정식으로 방을 얻어 낼 방법이 없는데."
"니 소식 못 들었나? 인문대에 있던 야간 경영학부가 모두 새로 지은 캠퍼스로 이동 했다는거 말이다. 야간 경영학부 학생회, 동아리 방이 인문대 지하에 있는데 얼마 전에 다 나갔다. 지금 아무도 안 쓰는 텅텅 빈 방이지. 거기 들어가자!"
"그냥 들어가자고? 나중에 학생회나 행정에서 방 빼라 카면 어떻하노?"
"자식 겁도 많아가지고, 점유권이라고 모르냐? 행정이나 학생회에서 관리 하지 않는 공간에 우리가 살다보면 점유권이 생겨서 함부로 나가라 하지 못한다. 그냥 들어가서 살면 되!"

"우리에겐 점유권이 있다. 절대 방 못 뺍니다."

3월 카르마 뒤풀이 모습. 이 방은 처음 무단으로 점거 한 동아리 방이다.
 3월 카르마 뒤풀이 모습. 이 방은 처음 무단으로 점거 한 동아리 방이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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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문학회 카르마는 사고를 쳤다. 2009년 3월 아무도 모르게 지하에 있는 빈 방에 들어가서 쇼파, 의자, 탁자, 책장 등을 넣고 살기 시작했다.

06학번 동기들은 감격에 젖어 있었다. 3년 동안 공간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학습을 했던 것이 방이 생기고 나니 서러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갓 가입한 09학번 새내기들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왜냐하면 처음 동아리 방에 들어갔을 때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다. 깜빡깜빡 거리는 전등과 지저분한 벽, 창문 없는 방, 위험한 못 등 내가 새내기라도 이런 밀실 같은 방에서 놀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지저분했지만 깨끗이 청소해서 살았다.

한 달 가량 그 곳에 생활했는데 어느 날 행정 직원이 찾아왔다. 학교 행정에서 우리가 무단 점거 한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행정직원이 갑자기 찾아와서 당황 했지만 무엇보다 숨어서 지낸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싶어서 대뜸 그 질문부터 했다.

직원 "지하실에 야간 경영학부 나가고 나서 사람 사는 흔적이 없는데. 얼마 전부터 중국집 빈 그릇이 있더 라구요. 혹시나 했는데...."
카르마 아무개 "(방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보다 서로 짜증내기 바빴다.)아씨, XX야 니가 짜장면 시켰지? 담부터 뭐 시켜 먹지마. (행정 직원에게)아저씨 다음부터 뭐 안 시켜먹을께요. 우리 이 방 쓰게 해주세요."
직원 "행정이랑 학생회가 이 공간 어떻게 할지 논의 하고 있는데 이렇게 무단 점거 해버리면 어떻 해요? 지금 당장 방 빼세요!"
학회장 "이 공간을 방치한 학교 행정도 잘못 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방치 한 공간에서 우리가 살고 있으면 자연스레 우리 한테도 점유권이라는게 있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시면 안되죠."

행정직원과 카르마 회원들은 오랜 시간 논쟁을 했지만 점유권에 대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행정과 학생회가 놀고 있는 인문대 지하 공간에 대해 어떻게 할지 결정이 날 때까지 방을 쓰기로 타협을 보았다.

"이왕 쓰는 거 우리 방 옆에 더 큰 방이 있던데 거기로 가자!"

4월~8월까지 거주 했던 궁궐갔던 큰 방. 회원들이 서 있는 공간 말고 그 앞에 운동장 만한 공터가 있다.
 4월~8월까지 거주 했던 궁궐갔던 큰 방. 회원들이 서 있는 공간 말고 그 앞에 운동장 만한 공터가 있다.
ⓒ 그린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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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직원이 왔다 간 이후 카르마 회원들은 또 다른 학교 직원이 눈치 채지 못하게 밥을 시켜 먹어도 빈 그릇을 다른 곳에 갖다 놓거나, 동아리 방 방문을 열어 놓지 않고 꼭 잠궜다.이런 생활을 1주일 정도 하자 회원들이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깝깝 하게 살아야 하나? 우리가 뭐 잘못했다고?"
"맞제? 그 직원 괜히 자기가 인심 쓰는 척 하면서 다른 직원들 한테 다 알렸을 끼다. 그냥 당당하게 쓰자. 대학 건물 어차피 우리 등록금으로 운영하는 건데 우리가 쓰고 싶은데로 써야지."
"그럼 말이야 이런 찌질한 방에 살지 말고 쫓겨 날 때 까지 큰 방에서 살아 볼래? 내가 지하실 주위에 많이 돌아봤는데 우리 방 말고도 남는 방 진짜 많더라. 그 중 현 재 우리방 3배 쯤 되는 방 있는데 거기로 이사 가자."
"좋네. 그냥 당당하게 살다 행정이 나가라 하면 개기자.(버티자 라는 사투리)"

인문학회 카르마 방은 밀실 같은 방에서 3배나 크고 창문도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인문대 학생회에서 공간이 필요한 동아리를 모집합니다."

궁궐 같은 큰방에서 즐겨 했던 낙서놀이. 락앤롤을 좋아하고 68년 혁명을 찬양하는 모 회원의 작품이다.
 궁궐 같은 큰방에서 즐겨 했던 낙서놀이. 락앤롤을 좋아하고 68년 혁명을 찬양하는 모 회원의 작품이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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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 같은 공간에 들어온 인문학회 카르마 회원들은 너무 넓은 공간에 살게 되어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커다란 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휴대용 버너와 냄비/프라이팬을 가져와 밥을 해먹기도 하며 빠르게 적응했다.

큰 방에서 재미있게 동아리 생활을 하고 있는데 6월이 되자 동아리방 신청 공고가 인문대 곳곳에 부착되어 있었다. 이번 기회에 정식적으로 우리 방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회원이 들떠있었다.

"와 인문대 학생회가 동아리방 신청 공고를 냈으면 학교 행정에서 빈 공간을 손 댈 수가 없네. 학생회랑 잘 얘기 하면 우리 동아리방 생길 수도 있겠는 걸."
"맞제? 이제 정말 우리 카르마 간판을 붙일 수 있는 방이 생긴단 말이야?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하지만 정식적으로 방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인문대 지하실 공간을 동아리에게 나눠 준다는 공고를 보고 6개의 동아리가 신청을 했고, 올해 생긴 신생 과 학생회가 방을 요구하였다. 현재 비어 있는 공간은 3개 인데 신청한 동아리/학생회는 7곳이나 되었다.

먼저 신생과 학생회 공간이 배치되었다. 무엇보다 1학기 동안 공간 없이 지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간이 배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쓰던 방을 학생회에게 내주게 되어 회원 모두 섭섭해 했다.

"학생회한테 방을 먼저 주는 건 맞는데 왜 이렇게 아쉽노. 우리가 먹고, 자고 했던 생활했던 곳인데 갑자기 빼앗긴 기분도 들고 말이다. 계속 점유권 주장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되나?"
"그래도 학생회 입장 생각해서 우리 방 내어 주고 정식적으로 새로운 방을 얻자."

방 배치를 제비 뽑기로 결정하다

신생과 학생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공간에 대해 어떻게 할지 방을 신청한 동아리 회장들과 인문대 학생회장이 논의를 하기 위해 평일 오후에 인문대 학생회실로 모였다. 카르마에서는 학회장이 일이 있어 모 회원이 참가하게 되었다.

"동아리 공고를 보고 이렇게 많은 동아리가 신청할 줄 몰랐습니다. 적게 신청했으면 이렇게 논의를 하지 않고 서로 공간만 배치하면 되는데 부득이 하게 이렇게 방 배치 문제로 논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방 배치를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기 모이신 분들이 동의하면 그렇게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동아리 대표자들) 뭐 썩 내키지는 않은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제비뽑기 합시다."

카르마 모 회원은 그 자리에서 제비뽑기로 방 배치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며 학생회장을 설득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대표자들이 찬성하는 바람에 카르마도 뽑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결국 카르마는 방을 얻을 수 있는 종이를 뽑지 못해 공간을 얻지 못했다.

"11월 학생회 선거 전까지 우리와 함께 살자"

9월부터 10월까지 모 동아리와 같이 생활 했던 공간. 1학년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을 읽고 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9월부터 10월까지 모 동아리와 같이 생활 했던 공간. 1학년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을 읽고 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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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던 공간마저 뺏긴 카르마는 위기에 봉착했다. 정식적으로 방을 얻지 못해 이제는 영영 방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다른 동아리 선배가 카르마 학회장에게 찾아와 동아리 공간을 같이 쓰자고 했다.

"어디 갈 때 없으면 우리랑 같이 살자. 너희 워낙 열심히 해서 같이 계속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우리 일정도 있고 해서 그렇게는 안 될 것 같고 11월 학생회 선거 전까지만 같이 살자."
"그때까지라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갈 곳 없이 거리에 천막을 처서라도 살아야 했던 카르마는 아는 선배의 호의로 새로운 공간에 정착했다. 하지만 학생회 선거 기간 전에 방을 빼야 한다는 사실이 학회장을 괴롭혔다. 학회장은 차마 11월에 방을 빼야 한다는 것을 회원들에게 얘기 하지 못했다. 대신 이제 우리 계속 여기 산다고 말하며 회원들을 안심시켰다.

다시 이사, "아 이제 정착 하고 싶어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인문대 세미나실이다. 탁구대를 책상으로 쓰고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인문대 세미나실이다. 탁구대를 책상으로 쓰고 있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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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걱정했던 11월이 되었고 카르마는 또 방을 빼야 했다. 학회장과 몇몇 사람 이외 아무도 방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터라 이번에는 학회 회원 모두 혼란스러웠다.

"학회장아 회원들에게 미안해도 미리 말해주지. 갑자기 이렇게 방을 빼야 되니 머리가 복잡해 죽겄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노? 갈 때 없지 않나."
"그러게요, 이제 갈 때도 없고 카르마 해산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선배?"

갈 곳을 못 찾다 인문대 학생회에 사정을 하여 임시 대피소에 이동하였다. 그곳은 인문대 세미나실 이었다. 인문대 학생회 소속 공간이라 우리가 계속 살지 못하는 그야 말로 임시 대피소 였다.

동아리 방 때문에 여러 번 이사를 하고, 사람들과 다툼이 생기는 일도 겪게 되자 카르마 회원 모두 힘들어했다.

"아 이제 정착 하고 싶어라. 용산 철거민 문제가 우리랑은 뭔 얘긴 줄만 알았는데, 내가 겪고 보니 우리 문제네. 그분들의 고통과 우리의 고통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대학사회에서 철거민 아니겠나?"
"맞아. 철거민의 신세가 이런 거구나라는 걸 간접 체험하는 것 같아."

나를 비롯해 카르마 선배 회원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후배들이 마음 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이걸 통해 카르마 회원 모두 우리가 사는 공동체와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회원모두 언젠가는 안정적으로 생활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하며 학회활동을 계속 잘 해 나갔으면 한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또 어디로 이사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저 사고 쳤어요.> 공모글



태그:#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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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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