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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앞. 회의장 문은 굳게 잠겨있다. 한미FTA 비준동의안 단독상정을 위해 박진 위원장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회의장 문을 걸어잠갔다. 그 문을 지키기 위해 사전질서유지권이 발동됐다. 결국 회의장 진입이 가로막힌 외통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망치로 문고리를 내리쳤다.

 

소위 '깽판국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깽판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은 야당의 반대 속에 표결 없이 일방적으로 가결됐다. 무효화 논란이 있었다. 결국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을 방패삼아 한나라당 단독으로 비준안을 다시 올려 재가결했다. 18대 국회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의 시작이다.

 

지난 23일 '깽판국회'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문고리를 걸어 잠근 박진 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은 '위법', ▲ 따라서 의원과 당직자들의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무죄', 하지만 ▲ 문고리를 부순 문학진, 이정희 의원은 '위법', ▲ 문고리를 부수는 데 조력한 민주당 당직자 6명도 '위법'.

 

결론부터 말하자. 2009년 대한민국에서 국회 회의장 문고리는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위에 있다. 부당한 위원장의 질서유지권에 맞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문고리를 부순 행위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낳은 현실이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21조 정당방위)

 

하나씩 따져보자. 박진 위원장의 부당한 질서유지권으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당했다. 이를 막기 위해, 즉 회의장에 들어가 안건에 대해 심의하고 표결하기 위해 문고리를 부쉈다.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과 '문고리'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당연히 심의·표결권이다. 따라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법 제21조 정당방위에 따라 법원의 판결은 당연히 '무죄'여야 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절묘했다. 모두로부터 환영받았다. 한나라당은 물론, 소속 의원(문학진, 이정희) 의원이 벌금형을 받은 민주당, 민주노동당으로부터도 환영 논평이 줄을 이었다.

 

법원은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한 무죄 이유로 박진 외통위 위원장의 '질서유지권'은 부당하다고 했다. 대신 회의장 문고리를 부순 '공용물건 손상혐의'는 유죄라고 했다. 1심 법원은 "공용물건손상혐의도 박 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유발된 것임을 감안한다"며 고작 형량을 줄이는 데 그쳤다. 또 하나의 정치적 판결이다.

 

"국회가 깽판……. 국회가 저 모양이라 민생법안 처리가 안 되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선거는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2월 26일 모 신문사 초청 강연에서의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의 말이다. '깽판국회'를 야기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문고리', 아니면 '해머'? 법원의 정치적 판결이 도리어 '깽판국회'를 야기하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과한 지적일까?


태그:#한미FTA, #질서유지권, #이정희, #문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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