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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20일 오후 4시 5분]

"남들 위에 서는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보다 언행의 자유가 제한된다."

로마의 초대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이다. 이명박 행정부 제2기 내각으로 추천된 인사들의 불법과 탈법 행각은 끝 간 데 없다. 위장전입과 논문 표절, '다운계약서'를 통한 탈세는 기본이요, 전문성 부재나 병역 기피는 옵션이다. 청와대 사전검토를 거쳐 추천된 각료임에도 불구,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의 불법은 끝간데 없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각료 등 고위공무원 임명권한에 대한 제약이다. 당연히 정부여당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정권교체 후 16대 국회가 열리면서 가장 먼저 추진한 개혁조치로 도입됐다.

인사청문회 도입 당시 국회의 논의과정을 보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인사청문위원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자구를 하나하나 지적하며 수정을 요구한다. 이에 대응하는 민주당측 간사인 천정배 의원의 말에서 여당 의원으로서의 곤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지난주부터 ‘민생포장마차’를 끌고 나선 천정배 의원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지난주부터 ‘민생포장마차’를 끌고 나선 천정배 의원
ⓒ 한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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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가 공직후보자에 대한 자질과 능력에 대해서 자유롭고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저희 당에서도 조금도 이견이 없습니다만 그것이 과거처럼 허위의 폭로, 이런 것이 무차별 허용되어서는 인사청문회 자체도 효율적인 운영이 곤란하고 국민에게도 또 실망을 주는 것이 아니냐하는 그런 관점에서……." (2000년 6월 19일, 국회 운영위원회)
참고로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마지막 장관은 누굴까? 답은 천정배다.

"청문회 자리 같아 4년 전 법무부장관을 했는데 제 청문회를 기억하시는지 사실 그때는 청문회 없었고 청문회가 없는 마지막 장관. 이제사 청문회를 받는 기분입니다." (9월 17일, 천정배 민생포차 생생토크 광주 편)

'병역기피, 탈세, 표절, 투기'에 준비된 청와대

지지율 40%대를 회복하면서 이명박 정부 내각 2기를 새로이 구성 중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밝혀지는 각료 후보자들의 불법행적으로 이들을 인선한 청와대는 얼마나 황망할까?

헌데 이상하다. 당황스러워하지 않는다.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실장의 말이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저희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9월 18일,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의 '입' 박선규 대변인 역시 마찬가지다.

"검증과정에서 위장전입, 탈세사실 등 웬만한 문제들은 다 확인했고,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는 데 결격사유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9월 18일, 청와대 브리핑)

다운계약서, 위장전입, 병역기피에 '준비된' 청와대다. 그래서일까? 당황은커녕 그들 나름의 대안을 내놓는다. 형식은 '법치'다. 내용은?

"재산등록 및 변동사항 공개목록 서식의 작성요령 중 재산등록․신고의무자의 개인정보 및 재산권 보호를 위하여 현행 건물의 지번생략과 동일하게 토지 지번을 생략하고 공개."

행정안전부가 지난 17일 입법예고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 중 일부다. 불법을 합법으로 전환하지는 못하더라도, 불법을 감출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준비된 청와대'의 때맞춰(?) 나온 입법예고가 아닐 수 없다.

인사청문회의 맥, '가진 자들만의 불법' 밝히기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1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마이애미 대학 입학허가신청서를 펼쳐보이며 '병역 의무를 면제받았다'고 기재된 병역사항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1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마이애미 대학 입학허가신청서를 펼쳐보이며 '병역 의무를 면제받았다'고 기재된 병역사항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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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는 헌법 및 국회법 등에 따라 국회의 임명동의나 선출을 요하는 공직후보자 등의 자질과 능력 등을 심사 또는 청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직위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배치하고, 고위공직자 임명의 정당성을 확보하며, 국회의 권력통제기능을 회복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가 바로 인사청문회다(국회사무처, <국회법 선례집>).

그럼에도 현행법상 인사청문회는 힘이 없다. 마치 100m달리기처럼 동의안 접수 후 20일 내에 청문을 마쳐야 한다. 끝이 보이는 레이스라서 '불편한 진실'은 막바지에나 제출되거나 아예 제출되지 않는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평가하더라도 이는 대통령의 임명 강행을 막지 못한다. 심지어는 경과보고서를 채택하기도 전에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기도 한다. 제도 도입 후 9년, 안착 대신 후퇴하는 이명박 정부에서의 인사청문회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명령과 규칙'은 '법률' 위에 존재한다

그렇다. 막강한 인사청문회의 권한은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 내각 2기 후보자들의 불법사실은 하나둘씩 밝혀진다. 그 근간은 '그들만의 합법'이다. 대다수에게는 불법이지만 그들에게만은 '합법'이다.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그들만의 합법'은 현재의 빈약한 청문회에서도 감춰지지 않는 것이다.

어찌됐든 정부는 인사청문회가 싫다. 그래서 '준비된' 정부는 올바른 인사의 추천보다는 힘을 더 빼려 한다. 방법은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요, 개정이유는 "대상 공직자들의 불편 개선과 개인정보/재산권 보호"다. 이러한 시행규칙의 개정은 헌법, 국회법, 인사청문회법을 근거로 한 인사청문회의 무력화로 이어질 것이다. 모법의 하위규정에 불과한 규칙이 모법을 흔들어댄다.

아다시피 공직자윤리법의 목적은 "공직자 및 공직후보자의 재산등록, 등록재산 공개 및 재산형성과정 소명과 공직을 이용한 재산취득의 규제, 공직자의 선물신고 및 주식백지신탁,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등을 규정함으로써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다(동법 제1조)." 명령과 규칙은 헌법과 법률의 하위에 있다. 그럼에도 법치를 가장한 시행규칙 개정으로 인해 법이 무력화될 지경에 처해 있다. 바야흐로 '명령과 규칙'이 '법' 위에 존재하는 꼴이다.

'성문법 국가'가 아니라 '관행 국가'

헌법기관인 장관 후보자들의 변명으로 인해 법체계의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아다시피 대한민국은 성문헌법과 성문법률을 갖춘 '성문법 국가'다. 헌법과 법률을 무력화하는 관습이나 관행은 당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최근 인사청문회에서는 관행은 헌법과 법률 위에 있다. 법률을 통해 처벌되는 행위가 '관행'을 이유로 정당화된다. 후보자들은 '관행'을 이유로 '불법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미안할 뿐'를 연발한다. 최소한 인사청문회에서만큼은 대한민국은 '성문법국가'가 아니다. '관행국가'다.

지난 7월 백용호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에서 다운계약서에 대해 불법임을 판결한 대법원 판례를 들어 매섭게 질의하는 이정희 의원
 지난 7월 백용호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에서 다운계약서에 대해 불법임을 판결한 대법원 판례를 들어 매섭게 질의하는 이정희 의원
ⓒ 한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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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예를 보자. 다운계약서를 통해 매매대금을 허위로 축소신고함으로써 수천만 원대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소명 중 일부다.
"목련타운 소유권 이전등기를 위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부동산 중개업자 및 법무사에 의한 관행적 검인계약서(기준시가)에 의해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불법은 아님)".

아다시피 다운계약서를 통한 탈세는 불법이다. 그 처벌도 대단히 강하다. 조세범처벌법상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포탈세액이나 환급·공제받은 세액의 3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후보자들은 관행을 이유로 법의 테두리를 무너뜨린다. '관행이므로 불법이 아니라 비도덕'이라며 강변하던 공직후보자는 지금 '국세행정의 수장'이다. 낙마하지 않고 임명된 백용호 국세청장의 예로 인해 이제 관행은 헌법과 법률 위에 있다(백용호 인사청문회 당시 이정희 의원의 질의는 단연 백미다). 바야흐로 '관행국가' 대한민국이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 들어 빈번이 적용되는 다중불해산죄, 즉 폭행, 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다중이 집합하여 그를 단속할 권한이 있는 공무원으로부터 3회 이상의 해산명령을 받고 해산하지 아니한 자에 대한 처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인사청문회를 통한 인사 검증은 '미래를 여는 실마리'

미국에서는 올해 2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던 톰 대슐 미 보건부 장관 지명자가 낙마했다. 이유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불법사실과 동일한 세금 탈루다. 이로 인해 '새로운 책임의 시대'를 선언한 오바마 대통령의 제1공약이라 할 수 있는 의료보험 개혁마저도 추동력을 잃게 됐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인천 소재 재건축 아파트 두 채에 대해 `매매예약 가등기' 방식으로 차명 소유,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인천 소재 재건축 아파트 두 채에 대해 `매매예약 가등기' 방식으로 차명 소유,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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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위공직자들에게 더 큰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국무총리나 장관과 같은 헌법기관들은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결정 하나하나는 곧바로 공권력에 의해 집행된다. 권력이 견제되지 않고 소수에 집중되면 부패하게 되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리다. 이에 따라 헌법기관간 수평적인 견제와 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제도 중 하나가 인사에 개입하는 견제장치들이다.(서복경 교수, <국회가 행정ㆍ사법부 인사에 간섭하는 이유는?>)

주권자 시민들은 권력의 상호견제를 통해 시민과 관료와의 균형을 도모했다.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인선토록 함으로써 관료사회를 견제한다. 한편 인사권이라는 '선출된 권력(대통령)'의 막강한 권한 역시 또다른 선출된 권력(의회)을 통해 견제토록 했다. 인사에 있어 추천, 동의, 임명절차를 각기 분리한 것이다. 결국 서로 견제함으로써 시민들의 뜻에 더욱 부합되는 인선을 하도록 인사청문회라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한 것이다.

그렇다. 인사청문회는 결코 '정쟁의 수단'일 수 없다.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고위공직자의 인사기준이 일반 공무원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고위공직자 인선은 미래를 여는 정치, 희망의 정치의 실마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민들은 단 한 번의 선거를 통해 위임한 주권 중의 일부인 인사권에 대해 대통령에게 전권을 주지는 않았다.

과거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헌법기관 후보자들의 불법을 눈감는 것은 결코 주권자 국민의 뜻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태그:#인사청문회, #위장전입, #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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