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7월 28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언론악법 원천무효·민생회복 투쟁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일방 처리된 언론악법 원천 무효"를 외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7월 28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언론악법 원천무효·민생회복 투쟁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일방 처리된 언론악법 원천 무효"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본격 휴가철이다. 너나없이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위해 산으로 바다로 길을 재촉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1주일 렌트비가 최고 5만 달러에 이르는 매사추세츠주의 고급 여름 별장에서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조깅을 하다가 쓰러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미 부인 브루니 여사의 가족별장으로 바캉스를 떠나 21일까지 충분히 쉴 계획이다.

'일벌레'로 통하는 이명박(MB) 대통령도 3일부터 6일까지 3박4일간의 짧은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2~4주 정도인 해외정상들의 휴가를 MB의 짧은 휴가와 비교해 '방학 수준'이라는 일부 언론의 '깜찍한' 기사도 눈에 띈다. 

그러나 휴가일수의 차이는 휴가문화의 상대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3주가 넘는 사르코지의 여름휴가도 한두 달씩 가야 직성이 풀리는 프랑스 국민의 바캉스 문화에 견주면 짧은 편이다. 또 평균 닷새 정도인 한국인의 여름휴가일수에 비춰 MB의 나흘 휴가는 짧은 편이 아니다. 특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휴가 갈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니, '서민 행보'를 표방한 MB에게 3박4일은 적당한 휴가가 아닐까 싶다.

'날치기' 이후... 한나라당 의원은 외유 속으로, 민주당 의원은 땡볕 속으로

국회에서 미디어 3법 날치기 소동을 벌인 정치권도 본격적인 정치방학을 맞이했다. 특히 미디어법 처리라는 승리에 도취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대거 휴가를 떠났다. 국회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한나라당 의원의 40%에 해당하는 70여 명이 이미 외유를 떠났다. 지난 31일 오전 주요당직자회의도 눈에 띄게 참석률이 저조했다.

그 대척점에 미디어법 강행처리 저지에 실패한 민주당 의원들이 있다. 천정배-최문순 의원은 미디어법 저지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이미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고, 다른 의원들은 정세균 대표에게 사퇴서를 일임해 놓은 상태다.

민주당은 언론악법 원천무효-민생회복 투쟁위를 구성해 연일 '국민 속으로 거리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언론악법 원천무효 및 민생회복 투쟁 100일 장정에 돌입한 민주당은 서울을 시작으로 해서 부산 영도에서도 집회를 열었다. 휴가의 피크인 8월초에도 1일 일산, 2일 성남, 3일 안양, 4일 부천, 5일 의정부-동두천으로 연일 땡볕 속 거리집회가 예정돼 있다.

수의 대결에서 패배한 야당이 거리로 나선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한나라당도 사학법 투쟁 당시 연일 대중집회로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흥행(?) 실패가 뻔히 예측되는 여름 휴가철에, 그것도 100일 장정이라는 무모한 투쟁을 시작한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100일 장정의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당에 유리한 국민여론과 불리한 정치환경

KSOI 여론조사 결과 1.
 KSOI 여론조사 결과 1.
ⓒ KSOI

관련사진보기

국민여론은 민주당에 유리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 27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을 대상으로 실시한 ARS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다수(64.4%)가 '사실상의 날치기 통과로 잘못된 일이다'는 의견에 손을 들었다. '야당의 대화거부 등 반대가 계속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의견은 28.0%에 그쳤다. 그간 미디어 관련 법안의 처리에 대해 반대여론이 월등히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고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국민적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같은 조사에서 미디어법 통과 과정에서 재투표와 대리투표 등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미디어법 통과는 무효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공감도가 매우 높았다.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의견은 24.1%에 그친 반면에 '공감이 간다'는 의견은 64.2%였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민주당의 언론악법 원천무효투쟁은 이런 국민여론에 기대고 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 7월 29일 실시한 리얼미터의 휴대전화 정례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23.6%)에서 민주당 지지율(25.6%)이 상승하고 한나라당 지지율(28%)이 하락해 오차범위 내에서 재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KSOI 여론조사 결과 2.
 KSOI 여론조사 결과 2.
ⓒ KSOI

관련사진보기

그렇다고 해서 외부 환경이 민주당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휴가철에 길거리 동원투쟁은 국민의 호응을 얻기 힘들다. 민주당도 인정하다시피 거리홍보 캠페인에 시민 참여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얘기했다시피 미디어법은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이념법안도 민생법안도 아니다.

실제로 국민 상당수는 여당이 왜 미디어법을 그렇게 죽기 살기로 통과시키려고 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민의 상당수는 또한 날치기일망정 이미 통과된 미디어법을 야당이 왜 그렇게 의원직까지 내걸고 원천무효 시키려고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예전 같은 동원투쟁이 아닌 국민소통투쟁으로 방향을 정한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정곡 찌른 '김상택 만평'의 "톱 100개 준비완료"

장외투쟁과 의원직 사퇴에 대한 국민여론도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다.

불교방송-윈지코리아컨설팅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을 대상으로 7월 25~26일 조사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49.7%)이 미디어법에 대해 '매우 문제가 많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그보다 더 많은 응답자(54.8%)가 '국회의원이 장외로 나가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 또 더 많은 응답자(55.1%)는 민주당 의원직 사퇴에 대해서 '강력한 항의는 필요하지만 의원직 사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는 정부여당의 공세와,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조중동 보수언론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정세균 대표의 100일 투쟁'과 '이명박 정부의 100일 홍보'를 대비시킨 지난달 29일자 <중앙일보>의 '김상택 만평'은 미디어법 처리 이후 향후 정국 흐름의 정곡을 찔러 보여준다. "톱 '100개' 준비완료"라는 제목의 이 만평은 이 대통령이 신문을 보며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박형준 홍보기획관에게 "얘 100일간 안 보이는 곳에"라고 지시하자 '정세균 100일 투쟁' 기사가 뒤쪽으로 밀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을 희화한 만평이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100일 장정을 시작한 이후 이 대통령이 중도-서민정책을 표방한 것을 필두로 150만 생계사범 사면, 새 검찰총장 내정, 대학생 학자금 대출상환 등에 이르기까지 MB의 친서민 행보가 연일 신문 1면톱(머리기사)을 장식하고 정세균 100일 투쟁은 내지에서조차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민주당이 쳐놓은 'MB 악법 프레임'을 조중동이 짜놓은 'MB 서민 행보 프레임'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서운한 일이겠지만 뉴스(새로운 것)를 좇는 언론의 속성에 비추어보면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날치기든 강행처리든, 미디어 3법의 통과는 지난 연말연시부터 유지되던 'MB 악법 프레임'의 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반민주 MB 악법' 프레임화에 성공함으로써 여당과 대등한 역학관계를 형성해왔으나 이제는 그 역학구도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 '반민주 MB 악법' 프레임이 해체되면 '거대여당 한나라당'과 '소수야당 민주당'이라는 본래 역학구도의 특성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7월 29일자 김상택 만평
 중앙일보 7월 29일자 김상택 만평
ⓒ 중앙일보

관련사진보기


미디어 3법 통과는 'MB 악법 프레임'의 해체를 의미

거대 여당과 견주어 절대적 열세인 민주당은 시민사회단체 등과 힘을 합쳐 강력한 장외투쟁을 벌이겠지만, 이미 쟁점법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반민주 MB 악법' 프레임을 복원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투 트랙'으로 접근한 것은 정치현실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지로 보인다.

제1야당으로서 결연하게 미디어법 원천무효투쟁을 벌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의원직 총사퇴와 같은 극단적 전술로 미디어법에 '올인'(다 걸기)을 하는 것은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난관을 초래할 수 있다. 또 말이 100일 장정이지 100일 동안 거리투쟁만 벌이는 것은 전술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MB 언론장악=민주주의 후퇴'라는 거리홍보전을 펼치고 법률적으로는 재투표 및 대리투표로 인한 원천무효투쟁을 벌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유연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힘(의원)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지원 의원의 '일당백 선전'으로 강한 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바 있다.

민주당은 사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연패한 이후 그동안 소수야당으로서 반대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온 측면이 있다. 어떤 사안이 생길 때마다 판을 벌여 당내에 구성한 각종 투쟁위원회만도 10여 개가 넘을 정도지만, 마무리를 제대로 짓는 투쟁위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10월 재선거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vs 비한나라당 대결구도'가 복원될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과의 정책연대와 선거연합을 통한 외연확대도 한 방안이다. 제1야당으로서 거대 정부여당의 힘을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정당으로서 집권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 및 민생회복 투쟁 100일 장정'은 정세균 대표의 지도력과 민주당의 재집권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이다. 미디어법 입법전쟁에서 승리한 거대여당은 지금 여유 있게 외유와 휴가를 즐기고 있고, 패배한 소수야당은 땡볕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지만 최후에 웃는 자가 누구일지는 100일 장정이 끝나봐야 안다.


태그:#민주당, #언론악법, #100일 장정, #미디어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