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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청와대 인사보좌관으로 내정된 정찬용 광주 YMCA 사무총장이 인수위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늘 입버릇처럼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중 그의 인사는 어쩌면 망사(亡事)에 가까웠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적지 않은 개혁성향의 인물을 발탁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기용해 혹평을 받곤 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오늘 대통령직속 인사보좌관에 정찬용(53) 광주 YMCA 사무총장을 내정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일단 '첫단추'는 잘 꿰었다는 느낌이다. 노 당선자의 오랜 지인인 문재인 변호사의 민정수석 내정, 박주현 변호사의 국민참여수석 내정에 이은 산뜻한 발탁인사다.

노무현 정부에서 신설되는 인사보좌관은 인사제도 개선과 정무직 인사 기초자료 조사 등 주로 공적이고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 마련에 활동의 초점을 두게 되는 중요한 자리다. 그 동안에는 이른바 '존안자료'라고 해서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독점했던 업무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5년간 노무현식 인사를 좌우하는 핵심 포스트이다.

이번 인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 자리에는 부산 학생운동 조직사건인 '부림사건'으로 노당선자와 인연을 맺어 줄곧 동지적 관계를 가져온 이호철씨가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와 함께 짝을 이뤄 인사와 사정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점쳐졌다. 그래서 이른바 '부산그룹'이 인사와 사정라인을 독점하는 데 따른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전남 영암 출신인 정찬용씨를 내정함으로써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더욱이 정씨는 전남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남 거창에 내려가 거기서 17년간 교육·농민·시민운동을 하면서 지역화합에 앞장서온 실천적인 지식인이다.

정씨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시절인 지난 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한 차례 투옥된 전력이 있으며 정계에선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와 김근태(민주당)·이부영(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거창에서 17년을 보낸 정씨는 지난 90년대 초부터 광주 YMCA(기독청년회)에서 일했다. "남의 동네에서 그만큼 봉사했으면 되었으니 이젠 고향에 와서 봉사해달라"는 광주 시민사회 원로들의 부름을 받고서부터이다.

그의 발탁 배경은 이날 오전 신계륜 당선자 인사특보가 밝힌 인사 배경에서 잘 드러난다.

"당선자는 평소 그가 가지고 있던 개혁성과 도덕성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오랜 시민단체 활동으로 인한 상징성을 감안했다."

이번 인사는 노무현 당선자가 직접 참여하는 '지방분권 국정토론회'(1월27일~2월12일)의 한 결과물로 나타났다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노당선자가 국정토론회 형식의 지방순회 보고를 지방에서 잇따라 개최하는 것은 지방분권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현장에서 찾고 발굴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사는 지역 현장에서 시민사회의 생생한 여론을 듣고 그 지역 현장에서 인재를 발굴하는 '노무현식 현장 투어'의 결과물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지난 1월28일 광주에서 국정토론회를 마치고 한 호텔에서 김수복·박형선·정향자·정찬용씨 등 광주 시민사회 현장지도자들을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지난 대선기간에 선거법 위반을 무릅쓰고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광고를 <한겨레> 신문에 실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정향자씨는 광주에서 오랫동안 가톨릭 여성노동운동을 해왔으며 기업인인 박씨는 음으로 양으로 노당선자를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는 노무현 당선자는 "여러분이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믿고 쓰겠습니다, 추천해주십시오"라고 청했고, 이들은 광주 시민사회의 여론을 수렴해 '만장일치'로 정씨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의 동네'에서 17년, 고향에서 10년을 봉사한 정찬용 내정자는 앞으로 5년간 '지방' 아닌 '중앙'에서 국가를 위해 봉사할 소명을 받았다. 그의 어깨에는 이제 지방은 초야(草野)가 아니고 인재의 보고(寶庫)라는 노무현식 인사 발상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무거운 짐이 짊어져 있다.

덧붙이는 글 | * '톺아보기'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는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인 '톺다' 또는 '톺아보다'에서 니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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