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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아버지 산소에서(당시 63세).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데, 이날따라 어머니는 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면서 형제들과 점심을 먹는 나를 불렀다. 뒤 배경은 금강. 하굿둑 공사로 지금은 담수호가 되었다.
 35년 전 아버지 산소에서(당시 63세).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떠오르는데, 이날따라 어머니는 사진 한 장 찍어야겠다면서 형제들과 점심을 먹는 나를 불렀다. 뒤 배경은 금강. 하굿둑 공사로 지금은 담수호가 되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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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물체는 대부분 자기 특유의 냄새를 지닌 것 같다. 살아 숨쉬는 동물이나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나 굴러다니는 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붙여 마음으로 냄새를 느낄 수 있도록 하니까 말이다.   

사는 곳이 시골이라서 시내에 나가려고 버스를 타면 밭에 거름으로 뿌려놓은 인분 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데, 역겨우면서도 옛 추억들이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향수를 많이 뿌린 손님이 옆에 앉아 코를 아프게 할 때도 있다.

문제는 생활에 활력을 넣어주는 좋은 냄새가 많음에도 '냄새' 얘기를 꺼내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암울한 시대를 반세기 넘게 살아오며 불신이 커지고 정이 메말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인정이 넘치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꿔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반된 체취

내장산 단풍놀이 갔다가 촬영한 사진(1964년). 두 분은 서커스나 영화구경도 항상 함께 다녔는데, 부부싸움이나 욕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
 내장산 단풍놀이 갔다가 촬영한 사진(1964년). 두 분은 서커스나 영화구경도 항상 함께 다녔는데, 부부싸움이나 욕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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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0년대 중반부터 결혼하던 80년대 초까지 가게가 딸린 셋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효심으로 잘해 드리려고 하기보다는, 어머니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말동무도 되어주는 등, 내가 아쉬워서 함께 지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인천에 사는 둘째 누님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모시고 가고, 시민문화회관에서 흥부전을 공연하면 함께 관람하고, 친구들과 놀러 가신다고 하면 비용도 드리면서 친구처럼 재미있게 살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 몸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저승사자처럼 무섭고 엄했던 아버지는 향수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넉넉한 노인 냄새를 풍겼다. 아침 햇살 아래에서 신문을 읽을 때나 담배를 피울 때도 곁으로 바짝 다가가고 싶을 정도로 체취가 좋았다. 

그런데 아버지처럼 매일 양치질을 하고, 건강 관리도 잘하시는 어머니는 그게 아니었다. 코흘리개 시절에 용돈도 주고 아버지가 말리는 참고서도 잘 사주셨는데 근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내가 너무 신경이 예민한 것 아닌가도 생각해봤지만, 병원에 다녀온 어머니 설명을 듣고는 포기해버렸다.   

순서로 따져도 어머니보다 12년이나 위인 아버지에게서 역겨운 노인 냄새가 나야지, 동네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집에 오는 손님마다 칭찬할 정도로 음식 손맛이 뛰어났던 어머니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혼생활은 부부의 성관계가 좌우한다고 믿던 20대 후반 어느 날, 잠자리에서 막 잠들려는 어머니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니, 결혼혀서 늙으믄 무슨 재미로 산대요?"
"부부는 나이를 먹으믄 정으로 사는거여. 그러니께 쓰잘디 없이 싸댕기지만 말고 결혼헐 시악씨 깜이나 알어봐···."

당시에는 '나이를 먹으면 정으로 산다'는 어머니 대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아갈수록 부부싸움 횟수가 쌓이는 만큼 미움도 늘어날 것이고, 매력적인 몸매와 예쁜 얼굴도 주름으로 흉하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근디 나는 아무리 음식을 잘허고 서비스가 좋은 영화배우 각시라도 마흔 살이 넘으믄 함께 살기가 어려울 것 같어서 고민이랑게, 늙으믄 엄니처럼 몸에서 냄새도 날 것이고···."

"야야, 부부는 나이를 먹을시락 정이 깊어져서 냄새도 정으로 덮어주고 흉도 정으로 덮어줌서 사는 거싱게 걱정 말어. 술만 마시믄 고샅 담박질 허는 정복이 아자씨네도 예순이 되드락 쌈을 험서도 잘만 살고 있잖여···."

마흔이 넘으면 늙은이로 취급하던 시절이라서, 생각이 짧고 단순했던 20대 후반 젊은이였으니 미래가 걱정되어 어머니에게 토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세 치 혀가 사람잡는다'는 속담이 떠오르면서 '늙으믄 엄니처럼 몸에서 냄새도 날 것이고' 대목이 죄송한 마음과 함께 후회가 된다.  

큰외숙모와 어머니

불국사에서 어머니(좌)와 큰외숙모(우). 어머니 친목 모임에서는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1976년에는 어머니가 큰외숙모를 오시라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느 엄니 덕에 별천지를 귀경댕겨왔다!”며 기뻐하던 큰외숙모 표정이 눈에 선하다.
 불국사에서 어머니(좌)와 큰외숙모(우). 어머니 친목 모임에서는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1976년에는 어머니가 큰외숙모를 오시라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느 엄니 덕에 별천지를 귀경댕겨왔다!”며 기뻐하던 큰외숙모 표정이 눈에 선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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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늙으면 몸에서 노인 냄새가 난다고들 한다. 그런데 모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리랑' 담배를 즐겨 피우던 아버지도 그렇고, 아흔이 넘도록 장죽을 물고 사셨던 큰외숙모에게서도 조선양반가의 안방마님을 떠올리게 하는 그윽한 향이 풍겼기 때문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외지인의 발길이 뜸해 낙도였던 부안 계화도가 외가였는데 어쩌다 방문하면 사촌형과 형수들 모두가 반가워했다. 특히 큰외숙모는 집에서 부모에게 느껴보지 못한 애틋한 사랑과 정을 베풀어주셨다.

바닷가라서 개흙에 볏짚을 잘게 썰어 반죽해서 만든 벽이었고, 화장실도 시멘트 탱크에 여러 개의 나무판자를 가로질러놓아 7-8명이 함께 대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냄새는 그리 싫지 않았다. 특히 온종일 장죽을 물고 사는 큰외숙모는 사장님 사모님에게서도 느끼지 못하는 매력과 고소한 흙냄새를 풍겼다.

어른이 돼서도 심심할 때는 외가를 찾았는데, 집이 비어 있어서 장독 뒷담 텃밭으로 가면 장죽을 물고 일하던 외숙모가 벌떡 일어나 "오메! 우리 장군깜 왔는가!"라며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맞아주셨다. '내가 큰외숙모에게 칭찬받는 맛으로 외가에 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루는 어머니에게 "큰외숙모는 섬에서 보리밥만 드시고 장죽에 '풍년초'를 가슴에 품고 살어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냄새가 풍긴다니까요!"라고 했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느 큰외숙모는 집안 어른이고 여걸이다!"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아픈 상처를 예리한 칼로 찌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 앞에서는 냄새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어머니이기 전에 한 남성을 사랑할 줄도 알고, 질투도 할 줄 알고, 수줍음도 타고, 가슴에 순정(純情)도 간직한 여성이었다는 것은 서른이 넘어 지인들과 양로원 노인들을 위로하러 다니면서야 깨우쳤다. 그 후로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어머니 앞에서 냄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30여 년 전에 잠자리에서 했던 얘기는 두고두고 가슴을 옥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함부로 내뱉었던 말들이 시나브로 떠오르면서 어리석은 물음일줄 알면서도 '내가 냄새 얘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고 죄지은 심정으로 자문해본다. 지금은 추억의 향기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역겨운 냄새를 그리워하면서.

덧붙이는 글 | ‘냄새나는 글’ 응모글



태그:#어머니, #아버지, #큰외숙모,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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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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