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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장 안에는 공연장이 있다. 개막식이 열린 23일부터 마지막 날인 5월 20일까지 갖가지 수많은 행사와 기획 공연들이 공연장 무대에서 펼쳐진다. 전국 각지의 예술단과 대학들이 참여하고, 외국 공연 팀들도 있다.

수많은 기획 공연들 가운데는 '문학의 자리'도 있었다. 이미 치른 행사이기에 과거완료형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좀 아쉽기도 하다. 어쨌든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공연장의 수많은 기획 공연들 가운데 문학의 자리도 있었다는 사실에서 다행스러움과 위안을 느낀다.

진태구 태안군수를 대신하여 서범석 부군수가 축사를 했다.
▲ 서범석 태안군 부군수 진태구 태안군수를 대신하여 서범석 부군수가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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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에서 시행한 일이다. 한국문인협회 사무처와 한국문인협회 태안지부가 긴밀한 유기성 안에서 문학에 대한 사명감으로 성사시킨 일이다. 처음 기획을 세우고 꽃박람회 조직위원회와 접촉을 시도할 때는 난점이 많았다.

박람회장 안의 공연장을 이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기에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문인들은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장식하는 수많은 행사들 가운데 문학의 자리, 시의 자리도 있어야 함을 강력하게 말했다. 문인들은 좀더 당당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당연히 당당했다.

한국문인협회는 지난해 1월 7일 태안 기름제거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수십 명의 문인들이 단체로 와서 만리포에서 모래 속에 스며든 기름 색출 작업을 했다. 그리고 돌아간 문인들은 기름제거 봉사체험을 가지고 글들을 썼다. 시와 수필들을 모아 문협에서 발간하는 <계절문학> 봄호에 '특집'을 꾸몄다.   

한국문인협회 소속 문인들은 2008년 1월 7일 만리포 해변에서 기름 제거작업을 벌였다. 작업 전에 찍은 사진인데, 일부는 이미 해변 작업장으로 나아갔다.
▲ 문인들의 자원봉사 한국문인협회 소속 문인들은 2008년 1월 7일 만리포 해변에서 기름 제거작업을 벌였다. 작업 전에 찍은 사진인데, 일부는 이미 해변 작업장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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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봉사로 그치지 않고, '기름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한 체험들을 가지고, 깊은 고뇌와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안고 생생하면서도 주옥같은 글들을 썼으니, 그들 모두 어느 면으로는 겹으로 태안과 인연을 맺은 셈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문인협회 외로, 다른 단체들의 자원봉사에도 참여한 이들이 여럿이다.

문인들은 기름제거 자원봉사 체험들을 승화시킨 글들, <계절문학> 2008년 봄호의 '특집'에 수록된 글들을 가지고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돕는 '문학의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활자화되어 눈으로만 보았고 볼 수 있는 글들을 자신의 육성으로 더욱 절절히 표현하고자 했다. 문학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수난의 태안을 사랑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방법론이었다.

'기름과의 전쟁' 당시 태안 해변을 찾은 한국문협 이사장 김연균 시인과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 옆에 서 있는 이는 충남문인협회장 이극래 시인.
▲ 방제복 차림의 김연균 한국문협 이사장 '기름과의 전쟁' 당시 태안 해변을 찾은 한국문협 이사장 김연균 시인과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 옆에 서 있는 이는 충남문인협회장 이극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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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기획 주관하는 곳이 태안군이 아닌 충청남도이기 때문에 태안의 문인들은 그 문학행사를 유치하는 일에 어떤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조직위원회와 태안군이 문학과 문인들을 홀대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주어서 그런 대로 보기 좋게 문학의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한국문인협회는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협회, 한국연극협회, 조선일보의 후원으로 '책 읽기 문화 캠페인 <책, 함께 읽자!>'라는 '시 낭송·산문 낭독' 행사를 지속적으로 벌여오고 있는데, 그 행사 한 번을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기간에 박람회장 안에서 가진 것은 더욱 의의 있는 일이었다.

조직위원회에서 문인협회에 배당한 날은 26일(일요일)이었고, 오후 1시 30분부터 3시까지라고 했다. 곧바로 마술공연이 이어지기 때문에 시간을 꼭 지켜달라는 주문이었다. 서울에서는 40여 명의 문인들이 참가했는데,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또 고속도로에서부터 차량이 밀릴 것을 예상하여 오전 7시 이전에 출발을 하도록 했다.

그래도 꽤 많은 이들이 객석을 부분적으로나마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도 변학수 시인(한국문협 태안지부장, 옆에 서 있는 이)이 기뻐하며 보람을 느꼈다.
▲ 조촐하면서도 풍성한 자리 그래도 꽤 많은 이들이 객석을 부분적으로나마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도 변학수 시인(한국문협 태안지부장, 옆에 서 있는 이)이 기뻐하며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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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서울 문인들은 11시쯤 현장에 도착하여 한 시간 정도 꽃 관람을 하고, 공연장 바로 옆의 식당에서 여유 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홍성과 서산의 문인들도 12시 이전에 도착을 했는데, 태안의 문인들은 좀더 고생을 했다. 10시쯤 출발했는데, 12시 45분에 겨우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30분 정도 걸리는 길이 세 시간 가까이나 걸린 것이었다.

결국 크게 결례를 한 셈이었다. 태안의 문인들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외지 문인들을 맞이하고 안내를 해드려야 하는데, 그 모든 일을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만 했으니…. 그래도 아무런 차질 없이 모든 일이 잘 진행된 것은 한국문인협회 태안지부장인 변학수 시인이 미리 현장 실무 책임자들과 음식점 주인에까지 완벽하게 갈무리를 잘해 놓은 덕이었다.

(부지런히 능수 능란하게 일 처리를 하는 40대 후반의 변학수 시인을 보면서, 내가 고장에서 인재 양성을 잘했다는, 후임자를 잘 앉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고장의 이런저런 행사에 단골 봉사를 하는 태안의 국악인들은 한국문협의 안면도 행사에도 기꺼이 참여하여 행사를 빛내 주었다.
▲ 태안 국악인들의 창 고장의 이런저런 행사에 단골 봉사를 하는 태안의 국악인들은 한국문협의 안면도 행사에도 기꺼이 참여하여 행사를 빛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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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에서는 문협지부(태안문학회) 회원들 뿐 아니라, '뻘빛시낭송회' 회원들과 국악협회 회원들이 다수 참가했다. 태안의 시 낭송가 3명이 시 낭송에 참여하고, 국악 팀(3명)이 중간 중간에 창을 해서 한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또 서울에서 온 시인이며 무용가인 박정이 교수는 미당의 시 <학(鶴)>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춤을 선보였고, 태안의 시 낭송가 조은숙씨는 예쁜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함을 보여 주었다.   

시인이며 무용가인 박정이 교수는 사회자 장충렬씨가 낭송하는 미당의 시 '학'에 맞추어 한국무용 '학'을 선보였다.
▲ 시낭송과 어우러지는 춤 시인이며 무용가인 박정이 교수는 사회자 장충렬씨가 낭송하는 미당의 시 '학'에 맞추어 한국무용 '학'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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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다소 춥기는 했다. 공연장 지붕 아래 그늘에 앉아 있다가 햇볕 속으로 몸을 빼는 이들도 많았다. 이동하는 이들의 발걸음과 공중을 선회하는 헬리콥터의 소음이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문인들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고, 열심히 시 낭송을 하고, 산문의 중요 대목을 낭독했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잠깐씩, 더러는 오래 자리에 앉아서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현장에 100권씩 갖다놓은 <태안문학>과 <소설충청>은 금세 동이 났다. 가지고 가다가 쓰레기통에 넣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안면도 꽃박람회장에서 얻은 문학지들을 각별한 감회를 안고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행사는 서울에서 온 여성 시인이며 시 낭송가인 장충렬씨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연균 시인과 서범석 태안군 부군수와 문협 태안 지부장 변학수 시인이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도합 20여 명의 문인들이 시 낭송과 수필 낭독에 참여하여 1시간 30분을 짜임새 있고 알뜰하게 채색했다. 필자는 준비해간 자작시를 버리고 맨 마지막으로 애송시 한 편을 암송으로 낭송했는데, 마지막을 장식한 것을 더욱 기쁘게 생각한다.

태안 '뻘빛시낭송회'에 참여하는 조은숙(원북농협 상무)씨가 유일하게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시에 대해 갖는 애정과 외경심의 실체를 보여 주었다.
▲ 태안의 여성 시 낭송가 태안 '뻘빛시낭송회'에 참여하는 조은숙(원북농협 상무)씨가 유일하게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시에 대해 갖는 애정과 외경심의 실체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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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말했지만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에는 갖가지 수많은 기획 공연들 가운데 문학의 자리, 시의 자리도 만들어졌다. '기름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초 수십 명의 문인들이 태안 바다에 와서 한국문인협회의 이름으로 기름 제거작업을 하고, 그 자원봉사 체험에서 우러나온 글들을 문학지에 발표했다. 그리고 그 글들을 가지고 와서 꽃박람회의 한 자리, 귀중한 한때를 수놓아주었다.

비록 채워진 자리보다 빈자리가 훨씬 더 많았지만, 문학 행사의 가치가 참가자나 청중의 숫자로만 매겨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소수가 중심일 수도 있는 법이다. 그 소수로부터 발원하는 노력이 오늘과 내일의 큰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의 한 곳에 문학의 자리, 시의 자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태안 땅에서 사는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큰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           

한국문협 김연균 이사장은 인사말을 한 데 이어 자작시 '기름 망아지'를 낭송했다.
▲ 이사장의 시낭송 한국문협 김연균 이사장은 인사말을 한 데 이어 자작시 '기름 망아지'를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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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꽃박람회, #한국문인협회, #기름제거, #자원봉사, #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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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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